[이명박 전 비서] 김유찬 기자회견문 및 일문일답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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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프리존뉴스 http://www.freezonenews.com 에 있는 기사임. 김유찬 기자회견문 및 일문일답 전문 김의중 기자 기자, 2007-02-16 오후 8:57:42 국회에서 정인봉 변호사께서 기자회견 하시고 어제 오늘 양일간에 걸쳐 저와 관련된 얘기가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개별적으로 많은 기자분이 전화 주시길래 제가 다 감당할 수 있는 입장이 못돼서 사업하는 입장이라 한 자리에 모여 궁금하신것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 간단하게 의견 교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해서 마련했다. 최근 불거진 이명박 시장에 대한 후보검증에 대해 정인봉 변호사가 당에 제출한 X파일 관련,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당사자로서 무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는 현재 우리 국가운명을 가를 최고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국가대사를 앞두고 있다,. 해방 이후에 돌이켜 보건데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여러 분의 대통령을 경험하였다. 혹자는 국민적인 신망 받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그러지 못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 어느 자리보다 역사적 정치적 중요성을 가진 자리다. 대통령의 판단과 말 한마디에 국가의 존재가 달려있다. 현재 우리는 제2의 도약이냐, 좌절이냐 하는 심각한 기로에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하루 살기가 힘겨운 시간 보내고 있지만, 국가지도자와 정치인은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면 조국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 저는 지난 학창 시절 어렵게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했다. 저는 현재 상암동 137층 초고층 빌딩 건립을 주사업 목적으로 하는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큰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자격을 갖추어진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이 경제를 살찌우고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96년 기자회견 이후에 참으로 힘든 시간 보내왔다. 한국인의 보수적인 정서는 자신이 모시던 상사에 대한 것을 알리는 것을 배반자로 낙인을 찍기에 나는 낙인찍혀 살아왔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당시 실체적 진실 덮은 채 함께 한 이들의 연민과 정 때문에 당시 사건을 서둘러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간 시간이 나는대로 사건을 정리해서 책자 형태로 곧 출간 한다. 이름하여 ‘이명박 리포트’다. 내용에는 제가 정치판에서 듣고 느끼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이명박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특정인을 폄하하거나 신랄할 목적으로 저술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역사를 짊어지고 나갈 대표를 바르게 뽑아야 모두가 잘 살수 있다는 절결한 심정에서 바른 역사 기록의 사관 입장에서 기록했다. 손해나 이익 받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반사 이익을 뿐이다. 그 책 내용의 후폭풍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진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정인봉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는 당시 사건의 형식적 측면만을 다룬 것인양 보인다. 항간에는 별 내용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조금만 관심 가지면 폄하할 내용은 아니다. 이명박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분이다. 다만 대통령 자리는 현대건설 회장 자리와 같을 수 없다. 능력과 더불어 일반인 보다는 훨씬 높은 도덕성과 자질이 요구되는 자리다. 최고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지도자의 품격이 떨어진다.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된고 만다. 지난 대선에서 매우 감성적 기류에 의해 대통령 선택한 결과 국민 대부분이 잘 안다. 책 내용은 간과하기 쉬운 유력한 대권 호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 그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소회를 밝힌 것이다. 선택은 국민여러분의 몫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책에서 밝힐 내용은? -딩시 사건을 잘 기록한 책자가 교정 단계에 있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씩 명절을 전후해 자세하게 살펴보고 약 2월말에서 3월초에 단행본 형태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 내용을 말씀드린다. 새로운 내용 있나? -나가시면서 저한테 명함 하나씩 주고 가면 쓰게 될 목차와 내용에 대해서는 이메일로 송부해 드리겠다. 내용은 아직 방대한 양이라 다 드리기는 어렵다. 목차만 드리겠다. 정 변호사가 밝힌거는? -아주 피상적인 부분이다. 출국 전후 과정도 있나? -그렇다. 당시 이명박 의원께서 적극 개입해서 한 내용을 아주 소상하게 적었다. 사업자가 정치적 책 내는 이유? -제가 그동안 96년 회견 이후 참 어려운 시간 보냈다, 모든 것을 다 털고 2003년 초부터 상암동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다만 상암동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당시 이명박 시장이 아주 깊숙하게 이 사업하는 것을 개입하셨다. 당시 여러 차례 경로를 통해 이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사감을 배제하고 국가와 사회와 경제에 득이되는 방향으로 해주십사 하고 말씀 드린바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사업은 재대로 일정대로 진행되지 아니하였고, 개인적으로도 30여억원에 달하는 불가피한 과실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내가 진행하는 사업은 대단히 정치적 결정이 될 수도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이 사업과 연관해 제 소회를 밝힌다. 서울시장 자리를 이용해 사업 부당하게 방해했다는 얘긴가? -몇가지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바 있다. 상암동 F1F2 지역에 입찰 방식 통해 진행했다. 그런데 시가 당시 13억달러에 달하는 투자의향서도 제출하고, 당시 수의계약 또는 지명입찰로 지정한다는 실무자들의 이야기까지 진행되다가 국제입찰로 하게되면서 굉장히 어려워졌다. 사업관련해서 개인적 원한 관계인가? -개인적인 사감으로 이런 책을 쓰거나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 이명박이 대통령감으로 부적절하다고 보는가? -그는 아니다. 만약 이명박이 대통령 된다면? -예단은 조심스럽다. 지난번 이 사건 나고 나서 98년에 제2회 민선지방선거에 구청장으로 출마하게 된다. 세간의 유옥을 마니 받았었고, 공인의 길을 걸어거고자 하는 저로서는 여러 의혹과 여러 가지 어려운 감래를 해야했고, 하기 쉽지 않았다. 그 때 6월4일 지방선거 직전인 6월3일, 이명박 당시 전 의원을 제가 사과차 방문하게 된다. 사과차 방문한 자리에서 조차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표현을 이야기 하더라. 어떤 표현인가? -욕 정도가 아니라 제 3자 화법을 통해 살해위협까지 했다. 그때 저는 이분과는 같이 갈 수 없구나. 사과하러 간 자리에까지 잔인하게 대하는가. 생각했다. 시장 퇴임 이후에도 김유찬씨 사업에 개입하고 있는가? -알수 없다. 다만 유력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있어서 정치 구조상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총선 때 일 좀 얘기해달라. 1500+@가 있다는데? -사람이 돈 문제 얽히게 되면 많이 지저분해 진다. 당시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절한 상황이 있었다. 1년여 이상을 정말 헌신적으로 당시 캠프에서 기획, 유세단장, 기획담당 비서관 등 여러 일을 맡고 있었다. 1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모셨다. 그러나 1년 동안 모시면서 느낀 결론은 큰 나무가 되어야 그늘이 큰 법인데, 그 분 밑에 머물만한 그늘이 없더라. 그래서 제가 당시 이재창 민주당 연천 지역구 의원의 보좌관으로 스스로 이력서를 내서 가게 된다. 당시 이재창 의원에게 선택되었다. 보좌관으로 선택되어서 일을 하게 된다. 일주일 정도 지난 이후에 갑자기 이재창 의원이 나를 부르더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이명박을 만났어요. 그런데 .. 보좌관이 정치하려고 하며 안되요’라고 하더라. 마음 조금 찝집했지만 그동안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이재창이 나를 부르고 동아건설에서 리비아 배수로 공사를 나가게 된다. 나한테 부탁하더라. 일주일 자리 빌 것 같으니 질의서를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다녀오셔서 저를 부르시고 ‘그만 두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라. 영문도 모르고.. 추정컨대 자기(이명박)가 키우지 못할 참모를 남의 사무실에 스스로 발로 걸어간 참모에게 덕담은 못할망정 뭐라고 못쓸 말씀을 하셨길래 저를 그렇게 하셨는지 아직도 의문스럽다. 그것이 당시에 많은 저에게 갈등을 초래했고, 저로선 억장이 무너지는 그런 일이었다. 책 내용 중 큰 사실은 뭔가? -개인에게 주어진 세간의 숫한 의혹과 여러 가지 잘못된 오해사항에 대해서 그것을 백일하에 알리고자 그 책을 쓰게 되었다. 정치적 사건이라고 하는건 회오리처럼 일어났다가 지나고 나면 흐지부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이 준 사회적 충격과 여파는 적지 않다. 특히 한 가장으로서 아비의 한 여인의 지아비로서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마치 부당한 거래를 해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둥 도피를 했다는둥 의혹을 받았다. 정말 이것은 해명이 되어야 되겠다 해서 전 과정을 기록해서 책으로 내게 되었다. 그 과정에 이명박 시장이 조직적으로 개입한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당시 편지 쓴 경위는? -당시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약 3일간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일했던 참모들, 당시 캠프에선 제가 제일 막내였다. 저로 인해 같이 함께 일했던 참모들과 동료들이 마음고생 몸고생 심했다. 우연찮게 그분들 중 한 분하고 통화했다. 울먹이는 소리로 꼭 좀 만나달라고 하더라. 저도 사람인지라 당시 이 의원에 대한 적개심을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주변 참모들은 고생만 한 사람들이다. 그분들과 제가 무슨 사감이 있겠나. 그분들을 어렵사리 만나게 된다. 만나서 그분들의 차량에서 대전에서 모 호텔로 제가 가게된다. 그 호텔에서 서로 그동안 이 문제로 인해 불거졌던 부분도 오해도 풀고 그런 자리를 가졌다. 당시 함께했던 강모 부장이 ‘김 비서관, 이쯤에라도 문제를 접자.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봐주라’고 하더라. 제가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그래, 형님. 나 이정도면 됐어. 이명박은 그렇게 아랫사람 대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족한다’고 답변했다. 강 부장 요청에 의해 당시 기자회견을 부인하는 편지를 쓰게된다. 내 자필로 쓰게 된다. 다 쓰고 나니까 강 부장이 그것을 읽어보더니 ‘야 이거 봐줄라고 하는 거니까 좀 재대로 확실하게 봐줘라’라고 하길래 제가 이렇게 말했다. ‘형님 그렇다고 진실을 덮을수는 없지 않냐.’결국은 다음날 이명박 의원 측에 의해 반강제 반타의에 의해서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가 썼던 편지에 집요하리만치 이 의원에게 불리한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청받는다. 이미 이 의원에 대한 적의를 접었었고, 그리고 함께 하던 참모들의 간곡한 요청도 있어 사실과 다른 기자회견 부인 편지를 남기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명박 의원의 진실성을 믿었다. 그것을 자신의 책임을 면탈할 목적으로 이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런데 내 출국 이후에 곧바로 편지를 흔들면서 본인은 선거법을 준수했으나.. 이것 제가 부인편지를 쓴 것을 보면서 자랑스레 제가 ‘부인하고 나갔다’라고 거짓말읗을 하게 된다.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다. 당시 법정상황은? -당시 이명박 부정선거 사건 있고 나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동안 법정에 같이 서게 된다, 7~8 회 정도 내가 스고 옆자리에 이명박 의원, 구속됐던 두 참모진이 섰다. 오라줄에 꽁꽁묶여서 수의를 입고 오는 동료들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덮자. 이명박이 문제가 될만한 진술을 법정에서 모두 부인하는 허위진술을 하게 된다. 물론 허위진술을 주기적으로 이명박 측으로부터 교사받는다. 이질문에는 이렇게 답변하고, 이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라고 당시 이명박 측에 의해 법정진술을 위증하도록 교사받게 된다. 저는 그 내용을 근거로 해서 부끄럽게도 법정을 모독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당시 재판관, 그리고 관련되어 있던 인사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아울러서 그로인해 발생한 모든 책임에 대해서는 제가 회피하지 않겠다. 이 내용들은 지금 처음으로 밝히는 것이다. 다른 내용은? -초창기에 책 구성에 대해 많은 고민 했다. 당시 95년 96년 사건을 일기체 형식으로 치밀하게 구성했지만, 교정을 보던 몇 분의 이야기가 너무 밋밋하다. 또는 개인적이다라는 지적을 받게 된다. 이에 제가 전면 재구성을 진행해서 현재 이명박 전 시장과 관련된 많은 내용들을 가필하게 된다. 이명박으로부터 피눈물 나는 대우 받았거나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대거 실렸다. 책을 쓴다는 얘기가 아는 분들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이 시장 측에서 알고 반응 보인건 없나? -직간접적인 반응은 있었는데 일체 말하지 않았다. 가필은 어떻게? -10년동안 주변인들과 얘기 나누고, 그 사람중에는 명참모들의 오늘날의 비참한 현실상이 모두 담겨있다. 추진중인 사업은 어느 단계까지? 어려운 점은? -동 사업은 이명박 시장 임기 내에 의욕적으로 추진되다가 아마도 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는지, 그 사업이 이유없이 2년동안 장기체류하다가 결국 오세훈 지금 시장에게 넘어간다. 작년 시행사 간담회가 열렸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통해 재용역조사를 하고 있고, 3월말에 결과가 나온다. 돈 받은거 있었나? -있었다. 억단위다. 1억2천500정도 된다. 출국할 때 거래비용은 그 비용이 아니고, 거래한 적도 없고, 다만 당시 출국 과정에서 대전 모 호텔에서 덮기로 하고 나가달라고 하고 제가 그 당시 ‘형님 제가 어려운 형편인거 아시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출국담당 했던 모 비서관이 ‘출국 비용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 공항에서 9천불씩 담긴 봉투 두 개를 받은게 전부다. 법정 위증? -그 댓가로 주기적으로 1억2천500상당의 금액을 저에게 제시하고 위증 교사했다. 몇차례인가? -매번 교사할 때마다니가 2년 동안 공판이 열리기 2~3일전에 지급되었다. 전액 현금으로 받았다. 받을 때마다 저는 양심을 판 댓가로 받았다라는 자괴감 때문에 얼마나 울지 모른다. 위증했다면 발혀진 것은 뭐고 숨겨진 게 뭔가? -당시 서울지방법원,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증인 또는 피고인에 대한 여러 가지 심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명박은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을 저에게 강요하고, 그 댓가를 지불한거다. 의견진술은 뭔가? -대개 법정에서 변호사가 질문하는 과정이 의뢰인에게 유리한 입장의 여러 가지 질문 하게 되는데 당시에 질문은 그런 ‘이명박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출국하기 전에 이명박 만났나? -수시로 이광철 당시 비서관이 이명박과 교신했다. 그 이후에 이명박 만난적 있나? -사과하러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1억2천500만원은 한국 들어와서 재판받을 때마다 그랬다. 얼마씩 해서 1억2천500인가? -법정 진술이 있기 전에 한달 간격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2년 법정 왔다갔다 하면서 젼혀 취직 못해서 그것을 교묘히 취약점이 뭐라는 것을 잘 안 이명박이 길들이기 차원에서 한 번에 150~200만원씩 정도 주더라. 출국은 어떻게? -‘김비서관 뒤는 걱정하지 마라. 이명박 의원 잘 알자나’ 그러면서 저를 출국 시켰다. 그래서 뒤를 봐줬나? -정착비는 전혀 받지 않았다. 9천달러 두 봉지는 누구에게 받았나? -이명박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K모 보좌관과 J모 부장 통해 받았다. 정인봉 변호사도 아는 부분인가? -아마 정변호사께서 숫자를 잘못 기억하는거 같다, 1천500이 아니라 1만8천불이다. 정 변호사와 만난적 있나? -종로 선거 과정에서 한 두 번 인연이 되었었고, 얼마 전 기자회견 처음 하셨을 때 10년만에 저에게 연락와서 ‘정 선배님 왠일이냐 10년만이다’ 했더니, ‘김 대표 식사나 한 번 하지’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했더니, ‘식사나 한 번 해’라고 해서 처음 기자회견 하실 때 이 자리에 둘이 앉아서 얘기했다. 당시 종로 부정선거에 대한 심경을 묻길래 자세히 말씀못드렸고, ‘일단의 상황을 정리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고만 말했다. 식사만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법정내용 더 있나? -당시 재판에서 내 최후진술 과정에서 이명박이 보인 태도는 매우 졸렬하고 수장답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자기로 인해 옥고를 치른 2명의 참모들을 감싸주기는커녕 본인은 완벽하리만치 선거법 잘 준수했는데, 밑에 사람에게 과를 돌리는 것을 보고 저는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것은 한 지역구의 어른이시고, 그를 모시는 분들에게는 수장인데, 전장에 나간 수장이 장졸들에게 본인이 과를 취하는 것이 장수의 도리다.” 라고 했다. 본인의 진술 말고 물증있나? -K모 보좌관이 진실에 기초해 있다. 현금으로만 거래했기 때문에 물증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 K모 보좌관은 뭐하나? -노무현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많이 실정이 거듭되니까 그 반사이익을 받아서 현재 이명박 시장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그는 경제 신화의 주역으로 화려한 정치인으로 컴백한다. 그를 모셨던 현재 참모들은 대부분 평균 이하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부분 인생 낙오자가 되어 있거나, 그를 모셨던 것을 천후 한으로 지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온국민 먹여살리는 자리다. 가장 가까운 참모들의 안위하나 걱정하지 못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겠나. 그 참모들은 지금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K모 보좌관은 10년동안 우수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가게 셔터문 열어주는 인생 살고 있다. 근래에 한번 만났더니 반백이 다 되셨고, 저를 만나고 꺼이꺼이 우시더라. 그분의 친구분은 이계안 현대 사장 출신과 동기다. 현대를 들어갈 때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다.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이 전 시장이 그렇게 살게 만들었다는 것이냐? -정치에는 보스가 있고, 장졸들이 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보스라면 자기를 따르면 장졸들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다. 정치 신의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먼저 최소생활 하도록 보살피는 것이 도리다. 그것도 못하면 그는 이미 보스가 아니다. 이명박 측에서 박근혜 사람들과 만나는걸 봤다고 하던데, 박 전 대표 캠프 사람 만났나? -사실무근이다. 이 책자나 저의 입장이 특정 정치세력에게 이용당하는 건 강력 경계한다. 다만 저의 진술이나 출판활동에 있어 특정 인물이 이익 보면 반사이익일 뿐이다. 관련자들이 공소시효 지났나? -형법상 지났다. 정치는 정야라 바른 것이다.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다. 최근에 수많은 정치인들이 야합과 합종연횡을 원칙도 없이 하는 것은 기본도 없는 것이다. 저는 이 책자에 부끄러운 과거도 솔직하게 담았다. 한 연약한 인간으로서 한국 정치사회 회오리를 일으켰었고, 수없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번복하는 과정에서 우유부단함과 미약함을 발견했다. 저는 향후 기회가 된다면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에 가고 싶다. 만약 이 사건으로 인해 저 또한 국민적 판단과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겸허히 받겠다. 정치 한다는 말인가? -꿈을 갖고 있다. DMC사업 제대로 됐으면 책이 안나왔을 것은 아닌가? -아니다. 역사적 실체를 기록한거다. 작게는 명예회복을 위해 크게는 한 나라의 바른 지도자를 뽑기 위해서. 정치는 언제쯤? -국민이 선택해주면 죽일 수 있다는 이명박 전 시장의 정확한 맨트는 무엇이었나? -이명박이 직접했다. 당시 이명박에게 영등포 구청장 선거 직전에 과거 털고 나가겠다는 심정으로 사과할겸 인간적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서초동 영포빌딩을 찾게된다. 이명박 집무실. 그 자리에서 들어오자마자 잡아 먹을듯한 얼굴을 하면서 저에게 ‘왜 왔어 이새끼야. 내가 너를 목에다가 돌을 달아서 인천 앞바다에 죽이자는 얘기 까지 나온걸 내가 말렸어’라는 표현으로 저에게 적의를 표현했다. 저는 그당시 분명한 협박이라고 느꼈다. 살해협박 느꼈다. 이명박 전 시장과 일한 기간은? -95년 2월부터 96년 6월20일까지다. IBC 사업하게 된 배경은? -약 2조원이 소요되는 큰 대형사업이다. 95년 이명박 모시면서 국정감사 수행해 나갈 기회 있었고, 당시 정부에서는 호남,고속철도 사업등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정부의 재원 한계로 인해 많은 부분이 국제.민간 자본 유치하는 것으로 돌고 있더라. 나도 기회가 된다면 대형 국책사업이나 민간 개발사업에 손 대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차제에 2002년 말에 우연찮게 미국에 대규모 부동산 개발회사인 NAR 이라고 하는 회사의 한국 지사장을 맡게 된다. 잘 아시다시피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이 지을라고 한게 부산, 잠실 최고층이다. 20년 넘게 표류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 대형 사업 하기에는 여러 규제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사업은 서울시가 이른바 랜드마크 사업으로 진행하기 위해 서울시가 하는 사업이다. 여기에는 약 70~80%의 외자 조달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봐서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국제선 타게된다. 연간 1억8천만원이라는 비용을 개인적으로 들여 가면서 외자유치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소신을 갖고 열심히 뛰었다. 사업자금 조달 과정에서 여러 주변의 친지,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고, 현재까지 그 도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협박받은 날은 언제? -98년 6월7일 오후다. 책에 이명박 재산문제도 있나? -다루고 있다. 여자문제는? -다루고 있다. 재산 문제에 관해선? -그런 의혹 될만한 사건 있었다. 당시 비서관 할 때 감사관 실에서 호출이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가보니까 수북이 쌓인 재산관련 서류가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서류가 있었다. 감사관이 이명박관련된 공직자 재산철입이다. ‘이 재산은 왜 등록 안하냐’고 소명을 요구하더라. 당시 저는 이명박 의원과 이광철 당시 비서관에게 사실을 말했고, 그 다음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탈락됐던 재산은 결국 문제되지 않고 유야무야 끝났다. 다만 감사관실로부터 호출받고 재산 누락 지적 받았다. 주로 부동산으로 되어 있었다. 주로 아파트나 땅으로 추정된다. 지금 기억이 정확치 않다. 다만 현재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이명박이 재산에 대해 많은 의혹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의혹을 본인이 적극 해명하기도 하고 했지만, 당시 이명박 의원에게 저희 참모들이 종로선거 끝나고 나서 재산형성에 대한 의혹이 짙으니, 만약에 대통령 의향 있다면 절반 정도는 사회로 환원하라고 건의한 적 있다. 그 건의받고 나서 굉장히 노여워 하더라. 자서전과 관련한 이 전 시장 측의 회유 없었나? -해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회유는 없었다. 여자 문제는 어떤것인가? -법률적으로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에게 의뢰해 검토중에 있고 추후 책자를 통해서 밝히겠다. 에리카 킴 등 확인된 사실만 말씀드리겠다. 숨겨진 자식얘기도 있나? -책자에 검증된 내용만 담을 거다. 지나온 세월은 대단히 부끄럽고 많은 어려움을 끼칠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도덕성 얘기하면서 그런분이 정치 할 수 있겠냐고 하는데, 고백한 부분들도 본인의 도덕성과 관련됐는데 그러면서도 정치 하겠다는 건 뭐냐? -희망만 갖고 되는건 아니지만 희망까지 접고 싶진 않다. 돈 전달한 부분 소송위험 있지 않나? -추후에 기회가 되면 다 입증 될거다. 함께 했던 많은 참모들이 정말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이명박이 넓은 마음 갖고 그동안 자신 위해 고생했던 참모들에게 위로 자리 한번 마련하셨다면 그분들은 내가 진술해 달라고 했을 때 안했을 거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런 자리 한번 없었다. 이광철, 강상용도 같은 생각인가? -이광철은 현재 미주 지역에 머물면서 횬재 이명박의 대선 미주인터넷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상용 부장은 모 기획사 대표를 맡고 있는데 대단히 출중한데도 대단히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이 시장 약점 잡아 사업 추진할 하는거 아니냐? -아니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2조원이 넘는다.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대단히 효과적이다. 그런 마음가짐 갖고 사업 진행한 것인지 이 시장과 딜을 하기 위해 이 사업 한거 아니다. 김의중 기자 (zerg@freezonenews.com) 2007-02-16 오후 8:52:13 © 프리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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