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인은 무엇으로 국가에 충성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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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통수권자의 이중적 잣대 “5년 전 서해에서 대한민국 해군장병 6명이 전사하고 고속정 1척이 침몰하는 대 전투가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들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았고 정부는 해군의 잘못만 질타했다. 햇볕정책이 낳은 산물의 결과였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군인들이 푸대접 받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인 것 같다. 나는 생각해 봤다. 그들을 위해서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남기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소설 서해교전 에필로그 중 : 금년 6월 출간 예정)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군복을 입고 병역의 의무를 가진다. 국가는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청춘들의 안전을 지켜줄 책임이 있으며 그것은 의무수행자가 국가에 가지는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군인이란 신분은 유사시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사람이자, 필연적으로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의 문제이다. 다만 그 이후의 처리에 대해서 국가가 어떻게 처리했는가하는 문제는 국가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문제이자 군인이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 1999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적진에 추락한 미군 스텔스기의 조종사는 항공모함까지 동원한 미국 측의 구출 작전에 의해 극적으로 생환했다. 복귀 후 조종사는 인터뷰에서 장시간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생존 의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에 품은 성조기와 구출 작전을 위해 노력하는 조국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단 한 명의 생존자, 단 한 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밀림이나 적진 깊숙이 뛰어드는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 헌신을 마다 않고 숭고한 대의를 지켜 내도록 하는 원동력은 돌아올 때까지 자신들을 결코 잊지 않는 조국이 있다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고 윤 장호 하사의 영결식을 보면서 몇 해 전 서해교전의 상황이 떠 올라 비통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더구나 이번 사태에서 보도한 기사들에서는 베트남전 이후로 처음 나온 전사자란 말들로 2002년 서해교전의 의로운 전사자들을 의미 없는 죽음으로 굳이 폄하하려는 모습들은 안타깝기조차 하다. 또한 서해교전 당시 전사자들을 굳이 전사자라 호칭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북한을 군사적인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인지 정부의 대북관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어찌보면 북한눈치보기의 극단적인 한 단면 인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멀리 타국에서 산화한 윤 장호하사의 죽음에 절절한 애도의 마음을 보낸다. 하지만 정권의 코드와 필요에 의해서 극명하게 달라지는 두 사건에 대한 예우가 안타깝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서해교전 당시 6명의 영웅들을 잊었나? 2002년 6월 29일. 서해 바다는 포성과 총성으로 달아올랐다.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의 관할해역을 침범한 북한 등산곶 경비정 684호의 기습 공격. 그리고 치열했던 31분간의 교전. 교전 당시, 우리 해군은 북한 경비정의 악의적인 기습공격으로 정장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전사 6명, 부상 18명이라는 피해를 입었지만, 평소 훈련한 대로 즉각 대응 사격을 실시하여 불굴의 전투의지와 투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 월드컵과 반미시위 등으로 인해 크게 이슈가 되지 못한 체 잊혀져 갔으며 대한민국은 전사자 6명을 뒤로 한 체 히딩크가 애국자인양 눈물을 흘리면서 환호하였고 이에 방송들은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고 익명의 제보자까지 거론하며 마치 우리 해군의 잘못으로까지 몰아갔었다. 또한 정부는 북한에 아무런 성명조차 하지 않았고 전사자 보상 역시 상당히 어이없는 수준이었으며 서해교전 자체를 쉬쉬하며 무마하기 일쑤였다. 그들의 장례는 이름뿐인 '해군장'으로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치러졌다. 영결식에는 국무총리와 각료,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특전사장'으로 거행된 윤 하사의 영결식에 특전사령관보다 고위급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육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오죽했으면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은 조국에 실망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렸지 않은가? 정말 안타깝다. 사건 당사자에 북한이 개입되어 있는가에 대한 여부와 파병철수등의 국민 여론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달라지는 국군통수권자의 행동에 대해서 군인들은 무엇으로 충성하는가? “나는 내가 살던 뉴욕에서 이 사건의 소식을 TV로 처음 접했다. 사건이 있던 날은 우리나라가 터키와 3,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날이었다…붉은 티를 입고 붉은 두건을 쓰고 얼굴에 태극기와 축구공을 그린 젊은이가 TV에 나왔다. 기자가 ‘오늘 오전에 연평도에서 북한군과 싸우던 우리 해군이 전사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하고 물었다. ‘에? 아, 그거요? 낮에 뉴스 봤는데요, 그거 군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젊은이의 대답이었다. 젊은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댔다. 국민 모두가 축구공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그 속에 끼어들지 못하는 군인은 죽어서도 외톨이였다.”(소설 서해교전 프롤로그 중) 2007년 3월 17일 좋은사회를위한참여시민연대 회장 전 구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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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 중한것이여서 나는 한국으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