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북한인권에 잠잠들 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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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堅固한 성을 갖는 것은 완벽한 防禦를 의미한다고 본다. 모든 敵을 완벽하게 방어해 내는 城이 있다면 인간들은 그 城을 믿고 방종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바벨론 城의 완벽성은 오히려 그들에게 파멸을 가져온 효과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城의 기원은 가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아우를 죽이고 하나님께 벌을 받아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면서부터 그는 결국 유리하는 것을 면해보려고 자기 식으로 城을 쌓는다. 에덴의 동쪽에 에녹 城을 쌓고 자녀를 낳는다. 결국 그 城에서 그들은 타락하게 된다. 인간의 타락을 막아 주는 것은 견고한 城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위기 속에서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부자는 그 재물을 견고한 城처럼 여기고 그것을 높은 城壁처럼 믿고 있는 것은 참으로 物神을 섬기는 신앙과 같은 黃金萬能思想이다. 돈이 많이 축적되면 그 다음에 찾아오는 放蕩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위기와 방어는 하나의 긴장관계이다. 이런 긴장관계를 극복하는 것이 곧 생존의 내용이기에, 방종을 생각할 수 없는 심적 부담을 갖게 된다. 2. 이런 관계를 통해서 인간은 건전한 사상을 유지해 나갈 수가 있다고 본다. 때문에 잠재적인 敵을 갖고 그들로부터 나오는 위기를 극복해 간다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利點이 있다. 위기를 방어하는 능력이 없이 황금만능에 빠져 버리면 결국 勤愼이라고 하는 축복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근신이라고 하는 가치는 인간에게 長久한 재물을 안겨주는 힘이 된다. 때문에 근신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를 알아야 한다. 근신을 잃어버린 인간은 정신적인 방종에 빠진다고 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방종은 결국 그의 멸망을 가져온다. 그것이 곧 방종이다. 방종으로부터 펼쳐지는 내용은 이러하다. 우선은 축적된 돈을 믿게 되고 돈으로 모든 것이 다 될 것이라고 하는 황금만능사상에 빠진다. 돈으로 사람을 사서 부리니 지배욕구가 충족된다. 그런 충족은 身分上昇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신분상승을 통해서 자신의 한을 펼쳐 나간다. 그동안 자기 사랑의 고통을 풀어준다. 그 한을 풀다가 보면 결국 인간은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道理를 이탈하게 된다.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산다. 그런 추구를 통해서 인간은 이웃과 담을 쌓고 살면서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쯤이면 이런 인간의 정신은 病的이다. 3. 병적인 것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심심하다는 것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더 나날이 더 새로운 재미거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 죽기 전에 싫도록 호강하다가 가고자 한다. 이런 것은 重症이다. 결국 一樂을 사랑하게 되고 快樂에 奴隸가 되어 버린다. 쾌락의 노예가 되면 그의 정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망과 같은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된다. 살아 있으나, 이웃에게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인간의 몸이 병적인 쾌락을 다 감당치 못하게 된다. 결국 그의 건강은 무너지게 되는 세월의 아쉬움이 찾아온다. 결국 세상을 떠나간다. 그가 남긴 정신적 질병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유산된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은 쾌락에 노예가 된다. 그 노예 생활이 결국은 자녀들의 패망으로 이어지게 한다. 돈이 많다고 하는 것은 축복일 수가 없다. 돈과 함께 근신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결국 축복일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근신이란 곧 인간의 영혼육의 도리를 지켜가게 하는 예측경고시스템이다. 이런 것은 자체적으로 훈계를 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말이고, 이런 훈계를 통해서 인간의 도리를 지켜가는 것이다. 인간의 길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름 道가 있다. 4. 나름대로 인간이기에 자기 길을 定하고 그 길로 가는 것을 말한다. 그는 그 길을 가면서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하는 존엄성을 충족하려고 한다. 인간 公的인 도가 있다. 각 종교의 내용이다. 종교인들은 자기 종교를 통해 자기가 인간임을 스스로 확인하려고 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나름대로 확인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스스로 확인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런 본능의 고유인식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또 하나의 道가 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만드신 분이 너는 인간이다. 라고 인식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통해 인간은 존엄성을 확인한다. 하나님이 너는 인간이다. 라고 인정해주는 것은 그 속의 고유인식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그는 비로소 인간임을 감사하게 된다. 짐승들이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해줘도 뿌듯한데, 하물며 자기를 지으신 분이 인정해 준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때문에 하나님은 한 길을 만드시고 그 길로 다니신다. 이름 하여 하나님의 길이다. 그 길에 인간을 초대한다. 그 길로 함께 가자는 것이다. 함께 가는 길에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된다. 5. 너는 人間이다. 만물의 영장이다. 모든 존재의 뛰어난 가치를 가지는 인간이다. 라고 하는 인식을 바닷물 같이 공급하신다. 이때에 하나님은 인간의 얼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삼으신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다.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인간을 사랑하는 길로 가야 한다고 명하신다. 인간이 하나님이 제시한 길로 인간을 사랑하는 길로 간다면 하나님은 그를 義人이라고 한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에게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통해 인간의 존재의 가치를 빛나게 평가하시고 그와 같은 대우를 하신다. 때문에 의인은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가면서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이웃을 사랑하는 인간과 같이 그 길을 같이 가신다. 때문에 예수님으로 오셨고 인간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그 길을 걸어 가셨다. 이는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가를 알려주는 선언이시다. 인간의 가치가 곧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게 할 정도로 귀중하다고 하는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런 선언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지 않고 있는 인간에게 죄를 회개할 것을 요구하시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신다. 이는 인간이 귀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행자로 부르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6.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의 아름다운 同行者로 돌아오면 용서하고 사랑하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용서와 그런 자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때문에 他人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눈이 열리게 된다. 비로소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하나님 안에서 그렇게 높은 줄을 알게 된다.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존엄을 卑下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을 비하하는 행동과 같은 죄라고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으로도 결코 인간의 가치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 비록 죄를 지었을 지라도 근본 된 인간의 존엄성이 卑下당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은행에 자기 돈이 가득 쌓여 있어도 인간을 비하하는 짓을 하면 안 된다. 하나님도 인간을 높여 섬기는 종으로 오셨는데, 어찌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을 하려고 하고, 지배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는가? 참으로 가소로운 짓으로 본다. 때문에 인간은 平等한 존엄성을 갖는다. 함에도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스스로 神의 자리를 앉아 인간 비하를 서슴없이 행한다면 그는 악마인간으로 본다. 악마 인간이 가는 길에는 사람을 무차별 죽이고 망하게 하고 비하는 짓을 서슴없이 행한다. 7. 하나님도 인간을 높여 사랑하기에 자기 아들을 죽게 하였고 또 사랑하여 자기 자신의 靈을 부어 주셨다. 인간이 인간을 모독하고 죽이고 파멸시켜 얻어지는 것은 이익이다. 그런 여러 이익을 축적하고 스스로 강한체하는 자들은 결국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길로 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짐승처럼 살다가 가는 것일 뿐이고, 김정일은 악마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다. 이런 짐승과 악마가 가득한 세상을 열어 간다면 오늘의 어린이날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어린이는 인간 존엄성의 미래이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나가는 세상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이 어린아이들은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세상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 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도 인간이면 북한 주민도 인간이다. 인간은 평등하다. 그들이 김정일 악마의 어떤 물리력에 의해 존엄성이 짓밟혀 있다고 하는 것은 도움을 필요하다는 말이고, 인간이라면 이럴 때 당연히 사랑의 종이 되어 돕는 것은 기본적인 행동으로 본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십자가 탑 아래에 모여 기도하는 모든 분들이 이런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8.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공급받아야 하고, 그런 공급을 통해서 분명한 소리를 내야 한다고 본다. 예수처럼 자기를 희생하는 목소리를 내어 이웃의 불행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道理이다. 다음은 남신우님의 글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일정이 빡빡해서 백악관 국가안보위 NSC에는 약속시간에 못 맞추고 반시간이나 뒤늦게 몰려들 갔다. 회의실 테이블에 앉을 자리가 모자라서 이쪽, 저쪽 모두 나누어 앉았다. 도무지 어떻게 되어가는 겁니까?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과 화해하자는 겁니까? 그 빌어먹을 6자회담을 왜 합니까? 아니오,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원칙적으로 변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김정일을 더 조이려면 이런 과정을 다 지나야 합니다. 국가안보위 고위관리가 쏟아져 나오는 질문에 차근차근히 대답하다가 한 마디 아픈 질문을 한다. 한국정부는 그렇다 치고라도, 남한국민들은 왜 북한인권에 잠잠들 합니까? 남한국민들의 진심은 무엇입니까? 대답할 말이 없다. 남한국민들 다 미쳤어요! 라고 대답해야 하나? 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 안보위 직원 한 사람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온다. 북한자유주간을 치하하는 부시 대통령의 성명서라면서, 모인 분들에게 번역해 들려주란다.] 이 내용을 보면 참으로 남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병적인 가를 알려 준다고 본다. 9. 북한 주민의 고통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살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 국민들의 부요는 곧 그들의 정신 건강을 망하게 하고 있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게 하게 한 것으로 본다. 견고한 성이나 높은 성벽이 아니라, 그 안에 갇혀 자신을 亡하게 하는 毒이 되고 있다. 이제 모두는 물신의 환금만능사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이웃인 북한주민을 사랑하는 길로 가자. 그것이 인간 구원의 길이다. 인간의 구원의 길이란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다. 그것이 곧 인간의 존엄성을 비하의 속에서 건져 내는 길이고 인간의 파멸(짐승類) 속에서 인간을 건져 내는 길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 많을수록 좋다. 이는 근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일거릴 두고 잠이 오는 사람은 해태한 사람이다. 全 국민이 나서서 북한 사람을 건져내자. 두 사람이 한 사람을 건져 낼 수가 있다. 건져내어 영혼육의 배고픔을 채워주고 입혀주고 모든 병을 치료해주자. 돈을 쌓아 축적하고 그것으로 성을 삼아 성벽을 삼아 방탕으로 망하지 말고, 건전하게 이웃 사랑을 위해 사용하자. 북한 주민을 위해 사용하자. 탈북 민들을 데려오자. 그들에게 자유를 누리는 법과 자본주의 경제 공부를 시키자. 천민자본주의자들에게 속지 않게 하자. 투자의 책임성과 자립성을 일깨우자. 그들로 인간답게 살 權利를 지켜주자. 어서 속히 북한 주민을 解放시키자.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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