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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사랑의 노래, 생명의 찬가가 가득한가?
REPUBLIC OF KOREA 구국기도 0 229 2007-06-18 10:58:57
1.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왕권의 오늘날의 해석은 여러 대입을 가능케 한다. 성경에서의 왕권이란 지배권을 의미한다. 물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분노를 사는 것은 자기 생명을 파멸케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 왕을 주권 재민이라는 의미를 대입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 말씀에다가 예수님 곧 사랑의 완전한 행동을 대입하여 보면 이런 말씀이 된다. 이런 여러 종류의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런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를 풀어내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때문에 그런 모든 종류의 의미를 다 찾아내어 그런 것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많은 내용이 나올 것이다. 아마도 세상이 감당치 못할 판단을 받게 될 것으로 본다. 우선은 본문이 가지는 위치는 지혜서이다. 때문에 왕권은 완전 지혜가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된다. 지혜가 왕권을 가진다면 그 사회는 규율이 엄격하게 서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2. 완벽한 지혜가 통제하는 사회는 모두가 지혜의 종이 된다. 지혜의 종은 완벽한 지혜, 완전한 지혜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통제의 abc다. 그런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은 훈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훈련을 받는 자들은 완벽한 지혜의 구성원이 된다. 그렇게 완벽한 지혜의 구성원이 된다면 결과적으로 행복과 부요를 자유와 더불어 누리게 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사랑은 지혜이고 지혜는 사랑을 완성하는 모든 능력이다. 사랑의 세상은 완벽한 지혜의 지배를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런 질서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혼돈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혼돈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결코 질서가 없고 질서가 없다는 말은 곧 지혜가 없다는 말이다. 사랑의 왕은 인간의 심령 속에서 완벽한 지혜의 통제를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 것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 스스로 헌신하는 자유의지를 통해 사랑의 왕의 심령통치를 받아들인다. 그런 것은 곧 인간이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의 통제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3. 사랑의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통제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곧 천국이라는 말이다. 완벽한 지혜는 사람의 자유를 보장한다. 사람의 존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리까지 올려 높인다. 더욱 하나님의 짝(배필)으로 계시되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지배가 곧 사랑인 것을 의미한다. 혹자들은 세상에서 인간의 차별을 통해 자기 성공의 기준을 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것은 인간 차별이 없을 수가 없게 하는 하나의 내용이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세상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짝으로 이끌어 올려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명령으로 제시하신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친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는 것의 내용은 그만큼의 인간의 존엄성이 크도록 가치부여를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이 존귀하게 만들어졌으나, 이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멸망할 짐승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짐승은 다름이 아닌 인간을 망하게 하는 자들임을 말한다.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4.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기준선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과연 지상에 있다는 말인가?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서로간에 존중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것, 곧 실제와는 다른 것의 의미를 만들어 세상을 덮어 보려는 내용이라면 이 또한 세상을 속이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랑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 속에서 그런 사랑은 분명히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 속에 자리 잡는 사랑의 실체가 물이라고 한다면, 그런 물이 늘 솟구치는 원천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인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인간의 건강을 위해 전문적인 의료기술자들을 요청하고 있다. 그만큼의 사람의 몸을 돌보는 전문적 지혜를 가진 자들을 원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자가 있어도 그런 기술을 떠받들어 주는 또 하나의 의료 설비 및 기계가 필요하다.

5. 그처럼 인간을 치료하는데 많은 지혜가 들어가야 한다. 모든 인간이 모든 기술 곧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는 것은 그런 기술들은 고도의 지혜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있다. 완전한 지혜의 완벽한 통제를 받아야만이 최고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섬기는 기술은 최고의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최고의 지혜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분의 지혜가 인간 속에서 왕이 되어 완벽한 지휘를 해내신다면 결과적으로 인간을 섬기는 것은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 섬김의 최고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인간세계의 각양지혜는 모두가 인간을 섬김에 있고 그런 인간을 하나님처럼 높여 사랑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반역은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고 인간을 사랑함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인간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6. 한반도는 지금 이런 착취자들이 무의식적인 연결 곧 습성의 연결 곧 속성의 연결로 이어져서 이웃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에게 있어 인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을 위해 이타적인 자살을 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의 어떤 목표를 위해 인간을 착취대상으로 삼아 군림하려고 예수를 믿는 것일까? 예수는 그런 자들을 결코 제자로 받아 주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고 본다. 그런 자들에게는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 같은 진노가 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런 진노를 당하게 되는 자들은 생명의 해를 받게 될 수밖에 없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하건대 착취자들이 가득한 세상이 된다면 인간은 잡혀먹기 위해 태어나는 짐승의 일부이고 가축에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막아내야 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덕목이다.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진정성이 가득해야 한다고 본다.

7. 그런 진정성이 없는 가운데 오로지 권력을 가지고 나서서 한 5년 해먹겠다고 하면, 그 또한 인간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 자기들을 부요하게 하려는 짓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렇게 해서 구성되어 간다면 그야말로 사막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천명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인간 사막화라고 정의하고, 인간 속에 사랑의 샘이 솟고 그를 완성하는 지혜의 완전함이 제공이 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때문에 예수를 찾는 것이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으로 본다. 방향을 잃어버린 세대에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우성이 가득하다. 그들의 소리가 지상에 가득하고 가득하다. 사람들의 외침은 왜 살아가야 하는가를 눈물겹게 외치고 있다. 악은 팽배하고 있고 약자들은 울부짖고 있다. 특히 북녘은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울부짖고 있다. 심지어 산천초목까지도 외치고, 외치고 있다. 그들 세상은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처절하다. 그렇게 슬픈 세상을 만나 고통 속에 시들어 가고 있다. 남한의 지도층은 이를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 곧 착취의 세력과 연대하고 있다.

8. 이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다. 때문에 사랑의 지배를 거부하고 있고 때문에 인간을 섬겨 행복하게 해주는 사랑의 완전한 지혜를 추구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자들이 무엇을 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착취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이 쏟아져 내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선택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는 선택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완전한 지혜의 통제를 받아야 완성이 된다. 때문에 심령 속에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 들여야 가능하다. 예수님은 이를 본으로 보여 주셨다. 사랑의 존재는 분명하다. 각기 종류의 사랑의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도 존재한다. 그런 사랑이 원천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이 필요하고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노아의 홍수에 내린 비처럼 아가페 사랑도 땅에서 솟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없다면 결코 이 땅은 착취자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김정일이가 심장병으로 죽는다고 해도 그보다 더 악한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9. 그들이 나타나서 온 땅을 착취의 장소로 삼고 수용소로 삼아 가축처럼 인간을 사육하며 자기들의 배를 채워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 움직이는 실체들이 되어야 한다. 막연히, 설마하면서 자기들의 할일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의 지도부가 북한 주민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본다. 과연 그들이 북한 주민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명령을 따라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명령을 따라 절대로 복종하는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완전한 명령을 따라 사는 것은 인간의 행복을 최고의 경지로 이끌어 올리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만들어 내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악이 팽창하는 곳에는, 사막의 깊은 곳에서는 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처럼 사랑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사랑은 솟아나는 곳이 예수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예수마저도 착취의 능력으로 삼아 내려고 아우성이다. 우리는 착취를 이기는 사랑의 섬김의 나라로 가게 해야 하는 사랑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어서 북한 주민의 해방을 위해 사랑을 구하자. 예수께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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