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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애국심을 鼓吹시키는 지도자는 있는가?
REPUBLIC OF KOREA 얼굴빛 0 331 2007-06-25 12:13:51


1. [내가 내 마음을 淨하게 하였다 내 罪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 마음의 깨끗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일찍이 淸潔한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청결한 마음으로 표현되는 것을 추적해보면 단순히 純粹하다는 의미 이상을 발견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순수한 것은 대게 정조에 해당된다는 것에서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남편에 대한 貞操가 강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남자도 마음에 연모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淨하다는 말은 순수함이 강하다고 하는 의미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는 정조를 지키는 힘이 아주 강하여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면 아주 근접한 표현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인가이다. 사실 정조와 순수사랑은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서로 간에 比例가 될 것으로 본다. 정조라는 것의 의미는 순수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나타나는 현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못 박는다면 결국 그런 조건이 충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사람들은 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 있다.

2. 순수사랑이 없으면서 정조를 강조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순수사랑이 없이 정조가 가능할 것인가이다. 국가에 대한 충절이라고 하는 정조가 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과 정조는 別個로 다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한만치 절개 곧 충절이 있을 것인가이다. 자유대한민국을 배신하지 않는 애국 충절의 심리가 순수 애국심이라고 하는 순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純粹愛國心이 없어도 나올 수가 있을 것인가이다. 애국심의 순수성이 强하다면 그것이 곧 정한 마음으로 정의될 수가 있는가이다. 깨끗한 충절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이 자유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을 다한다면 그것은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福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순수 애국심의 발로가 어디서부터 나올 수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학교에서 애국심을 갖게 되는 교육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또는 가정의 교육에서 애국심을 함양하는 노력은 존재하고 있는가이다.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고자 하는 애국심의 발로와 함양을 어디서부터 가져올 수가 있고 어디에 있는가이다.

3. 국가의 지도자는 이런 애국심의 순수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애국심은 결코 遵法精神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준법으로 결과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자유대한민국의 헌법을 통해 애국심을 펼쳐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곧 애국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인된 애국심이 아닌 자기들의 임의적 애국심으로 공인된 애국심을 가늠하려고 하는 행동을 보게 된다. 소위말해서 국익의 의미로 모든 것을 풀어 보려고 하는데, 그런 것은 합법적인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개인들의 합리적 사고에서 나오는 통치에 任意性에 두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지도자들이 입만 열면 애국자처럼 말하고 있다고 본다면, 그런 것이 순수애국심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한민족 인간에게 주시는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개인의 私慾化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도 갖다 붙일 수가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4. 애국심의 순수성, 또는 그 진정성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든지,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지의 고민하는 접근은 없다고 본다. 애국심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가 있을 것이고, 어떻게 무턱대고 國益이라고 강변하면 자기들의 사욕을 합리화하는 자들의 모든 비순수를 측량해 낼 수가 있을 것인가를 두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잣대가 공인되어 있다면, 그런 것은 법적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無法天地에서도 애국심을 憑藉하는 통치행위는 국익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언제든지 저들은 국익을 위해 모든 것을 한다고 명분을 세우기 때문이다. 연합사의 해체는 국가경제를 무너지게 하였다. 하지만 자주국방이라고 하는 국익을 내세우는 저들의 선전선동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자주國防이 자주窮房이 된 것이라고 본다. 저들이 내세우는 것은 국익우선이다. 김정일을 우선 돕고 북한 주민을 내팽개치는 것도 국익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결국 핵무기는 남한의 것이 될 것이라고 황당한 소설을 펼치면서 국익우선을 민족이익인양 호도하고 있다.

5. 순수 애국심은 철저한 준법정신에 있다. 법을 어기는 모든 국익은 국익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이 과연 국익의 의미를 지탱하는가에 대한 懷疑論 자들이 있다. 과학과 지식이 총알같이 빠르게 발전해 가는 세상에서 법이 과연 국익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수시로 법을 바꿔서라도 민첩하게 대응하자고 하는 안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다. 그런 것은 참으로 무엇인가? 듣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좋은 말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 들어있는 의도성이 있다면 결국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말은 결국 국익을 위해서라면 법을 짓이겨가겠다는 심리가 그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 국가적인 문제는 언제든지 이런 자들의 포장 곧 국익을 내세워 건드리면 안 되는 헌법3조 4조의 의미를 자기들 式으로 脚色하여 명분을 만들고 있다. 헌법을 이렇게 자지러지게 하고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크다고 본다. 그것은 애국심을 빙자하여 벌이고 있는 남조선적화공작이나 다름이 없는 反逆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6.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고 주장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의 약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물 쏟듯이 쏟아지는 약함이 있는 그릇에 담겨 있다. 조그만 衝擊을 받아도 실족하여 그 물이 쏟아져 내려 살 마음까지 끊어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그런 것은 쉽게 열을 받게 되어 여러 가지 혼란에 부추겨 더럽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의 약함을 도외시하고 스스로 淨하게 하였다고 깨끗하게 하였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본다. 인간의 가지는 마음의 약함을 극복하고 순수를 가질 수가 있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여기서 필요한 것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인간의 마음의 순수를 만들어 주고 공급해 주고 인도해 주고 지켜주고 붙들어 주고 양육해 주고 强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 활동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스스로가 信念을 가지고 자기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면 자기 마음을 다스려 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7. 인간 스스로 순수성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애국심은 對象愛인가? 血肉愛인가? 性的愛인가? 아니면 利他愛인가? 이런 것의 내용을 구별한다는 것은 참으로 煩雜한 일로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런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애국심을 일으키는 여러 작용을 연구하여 펼쳐나가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가지는 자기들의 사랑, 자기들만의 고집하는 사랑과 국가라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자유대한민국의 헌법은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경에서 주장하는 사랑 곧 아가페,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예수님이 목숨을 주신 것처럼 사랑하는 아가페가 곧 애국심의 본질로 보여 진다. 이런 주장을 하면 결국 여러 이유들을 들어 잘못 된 見解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애국심이라고 하는 본질은 무엇이고 그런 정체는 무엇이고, 그런 것의 출처는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배양되고 함양되고 고취되어 순수성을 갖게 되는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제사하고 싶다.

8. 自由라고 하는 말을 해석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자유라고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무엇이고 그 사랑의 행동은 무엇인가를 말해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 이웃을 사랑해야 비로소 자유를 누리는 자들인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에 충성하는 것은 애국심의 忠節이고 우리 헌법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방종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다. 물론 인간의 자유의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의미이지 반역을 선택하라고 하는 자유는 없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종은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것이고 자유를 배신하는 반역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충절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충성을 의미한다. 이런 자유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를 낭비하는 것이다. 자유의 낭비란 방종이다. 그런 방종을 막아주는 것이 법이다. 그런 법을 교묘히 유린하는 것이 곧 방종이다. 그런 방종을 하는 자들은 이웃을 파괴시키는 짓을 하게 된다는 결과 악을 만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

9. 아무도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스려 순수 애국심을 가지지 못한다. 아무도 스스로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이것은 스스로 인간을 사랑하는 순수아가페를 가질 수가 없고 만들어 낼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순수아가페의 출처를 통해 공급받는 길이 최선이라고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가 祈福信仰에서 벗어나고 스스로 마음을 淨하게 하고 스스로 罪를 씻어 보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고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죄를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우리 마음을 정하게 하고 순수사랑으로 애국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면 부패한 인간의 심성이 오히려 국가반역을 통해 밥을 먹고 사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고 천민자본주의는 팽창하여 모든 가난한 자들을 처절하게 죽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한국교회에게 북한주민의 불행을 돌아보라는 짐을 내리셨다고 보는 것이다.

10. 그 짐을 지려면 사랑의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그 짐을 지면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능력으로, 지혜로 가득 차게 되고, 하여 마침내 그런 사랑의 마음은 애국심 곧 준법정신으로 이어지게 하여 국가를 수호해내는 저력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상호관계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미래는 다름이 아니라 마음을 淨하게 하는 손길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된다고 하는데 있다. 자유의 敵들은 날마다 학습을 통해 사상무장 곧 세뇌를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의 마음을 다지는 작업을 하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이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자유헌법 수호와 준법준행의 애국심으로 武裝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전쟁에서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인가를 묻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걱정이 우리 앞에 있고 이런 고통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국가를 튼튼한 반석위에 세우는 基本 公式인데,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지도자들의 사보타지가 곧 반역성으로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나 이런 지도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서 눈을 뜨고 이들의 속임수와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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