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사대 북한주민을 해방시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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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크게 獎勵할 일이다. 스스로의 교만의 성을 쌓고 그 속에 홀로 처해 사는 자들은 타인의 존엄을 파괴한다. 차별의 눈으로 보며 가히 상종치 못할 존재들로 여겨 스스로를 구별하려고 한다. 이런 자들은 사람을 멸시하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는 아주 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의식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 속에 들어 있는 각종의 사악함을 겪고 나서부터는 서로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우린다. 그런 행동은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의미로서의 자기보호본능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다. 완전한 사랑을 할 수가 있다면 무엇을 걱정하랴. 오히려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기술과 학문의 발전만큼의 인간 사랑의 능력이 발전해 간다면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함에는 더욱 발전된 문화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2.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그 기준에 따른 목표에 있다. 하나님도 하나님 나름대로 기준과 목표를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신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의 기준을 예수님께 두고 인간을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표이시다. 그것이 곧 기독교로 나타나게 된다. 기독교는 예수님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공장이다. 이런 공장의 개념으로 이런 의미를 담아내기가 좀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진다고 하는 것에서 공장의 의미로 담아 본다. 공장에 가면 그 공장의 설비가 있고 그 설비가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의 생산 대상이 결정한다. 생산된 것은 예수님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성경은 선언한다. 그런 능력자로 만들어 진다면, 모든 자들을 넉넉히 사랑하고 섬기는 힘을 갖게 된다. 사랑의 지혜자라고도 할 수가 있고 사랑의 능력자라고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4,500만 명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여 얻어지는 결과가 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보건대 이타적 사랑의 확산은 아주 화급시급한 일이라고 본다. 3. 세상에서는 가장 화급 시급한 것의 순서가 1순위보다 더 빠른 0순위에 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신체를 지키는 일에 가장 중요한 순서가 아마도 배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문제를 화급히 해결해 주지 못하면 다른 아무 문제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화급함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갖는 일일 것이다. 인간사의 아픔은 모두가 利他的 사랑을 잃어버린 연고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이타적 사랑을 행하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본다. 사람들의 행복의 조건을 나름대로 말하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행복은 자신만을 위해준다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하에 보다 더 많은 것을 충족해줄 때 만족해한다. 바로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려고 한다. 이는 이타적 사랑을 행함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받아만 먹으려는 것에서 행복하다는 인식을 갖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다고 해서 그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 받고자만 하는 행동에서 나오는 기쁨은 억지로 행복한 것처럼 느끼려고 할뿐이 된다. 결국 허무한 노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 것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진정한 행복의 조건만 충족이 되면 진정한 행복은 존재한다. 그 존재는 억지로 만들어 지거나 수정되지 않는 원리를 통해서 나오게 된다. 그 내용을 추적하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동(이타적 사랑)을 할 때 인간 속에 행복의 포만감을 누리도록 설계하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때문에 이런 내용을 공감하도록 우리는 궁구하고 마침내 소유해야 한다. 그때만이, 이타적 사랑을 행할 때만이 행복을 얻어 누리게 된다고 확신한다. 이런 행복은 성경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한다는 말인데, 그런 기쁨의 공유는 인간이 이타적 사랑 곧 하나님의 신성의 사랑인 아가페를 행사하는 자들에게 내려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자들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사랑을 행할 때마다 확신할 수가 있게 된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이름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고 산다. 오로지 산다면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자기 혈족만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 애인이나 부인을 사랑하는 것과 대상애 등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구출하고 구원할 세상은 자기가 고집하는 그 사랑 밖으로 버려진다. 반면에 하나님은 인간이 버린 세상을 사랑하사 구원의 길을 여셨다고 한다. 그것은 곧 그 사랑의 모습이다. 그 사랑은 곧 세상을 구원함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웃을 구원하려는 눈을 여는 것은 참으로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기도 하다. 5. 만일 이런 것을 흉내 내면서 자기가 사랑하는 것만을 위해 일한다면, 이런 것은 국가사회를 희생시켜 자기들만의 행복을 삼으려는 김정일式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남한에 김대중式의 사고방식과 김정일式 사고방식이 있고 노무현식 사고방식이 있다. 그들의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은 타인을 희생시켜 국가와 사회를 희생시켜 자기들만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다고 본다. 이런 사상이 가지는 오염의 의미는 국가 사회를 약육강식이라고 하는 거대한 밀림으로 변질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오염을 가지고 있는 한에는 결국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국가 사회를 섬겨 복되게 하는 그 신성하고 아름다운 경건을 기치로 내걸고 이익의 기회로 삼아내는 가증스런 교활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이 잘 통용되고 잘 받아 들여지는 것은 초록의 동색이라는 의미가 있다. 대다수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6. 지금의 대한민국의 국민 각인의 사고방식의 汚染은 바로 그런데 있다고 본다. 그런 오염을 겪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로 주류를 이루게 하려는 傳染性이 본능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사회는 결국은 짐승 화 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짐승은 여러 종류이지만 분류하자면 힘이 있는 짐승과 나약한 짐승 등이다. 그런 내용으로 구성되면 결국은 잡아먹히고 잡아먹는 사회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대한민국은 이타적 사랑으로 인해 참으로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자유의 의미이다. 자유의 의미는 이웃에게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이다. 방종은 자유가 아니다. 내가 이타적 사랑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여기서 자유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의 자유일 뿐이지만, 자유대한민국의 헌법은 그런 범죄행위에 대하여 단호한 법정심판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려면 이타적 사랑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자유대한민국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표들을 몇 사람이 정권을 잡고 나서 파괴시켜왔다. 이것이 곧 이 나라의 오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7. 그런 것들은 수령독재의 영향이다. 이런 영향이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방종으로 여기게 한다. 그런 의미는 자유가 아니라고 하는 것에 우리는 생명을 걸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것은 이런 오염원을 定罪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수령독재의 의미는 인간 사랑을 포기한 것에서부터 있다고 본다. 이런 것을 받아들이고 손을 잡고 있는 자들은 아주 끔직한 살인마 독재자를 信仰하는 자들이고 본다. 이런 자들이 가지는 능력 중에 하나가 多辯이나 達辯이 그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두루 다니며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입을 닫아 두기에는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盧씨의 입은 참으로 多辯이다. 그가 나름대로 요리조리 말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를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말끝에는 국가사회의 이익을 위한 결론을 만들어 내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도자의 말은 천금보다 더 귀한 말이라고 한다. 그의 말한 마디에 경제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경제가 요동치면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양산되는 것이라고 한다. 8. 말의 결국은 그런 것이기에,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어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부요를 양산하는 말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國家經濟成長與否가 그가 재임하는 동안에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말은 곧 명령이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가라사대가 오늘날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것에 快히 동의해야 한다. 물론 당사자나 그 친구들은 동의하기를 거부하고 항변의 소리를 낼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경제적인 문제는 富益富 貧益貧의 악순환을 더 심화시켰다고 본다. 이런 성향은 그가 말을 경제적으로 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한 경제적인 발언이란, 대통령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자기 정치세력의 이익추구이나, 김정일을 품고 가려는 정책의 이익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킨 발언일 뿐이다. 지도자의 말은 인류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발언 곧 우주적이고 지구적이고 그리고 국가적이어야 한다. 국가의 이익이 곧 지구의 이익이어야 하고 지구의 이익이 곧 우주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곧 자기들의 이익을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곧 경제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9. 하지만 그런 경제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의 多辯의 내용으로 본다. 있다면 오로지 김정일이 이익만을 대변한 등식의 말을 하는데 필요한 애버러지(average) 만 보일 뿐이라고 본다. 그것이 곧 金과 盧의 발언 속에 보인균형 감각이라고 본다.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말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와 이웃과 전 지구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적이라고 함은 다가오는 수많은 인류의 역사의 흥망의 영향을 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타국의 손해를 불러 오기 때문에 지구 속에서의 공존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때문에 이웃의 행복을 위해 서로 노력하는 국가로 가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오늘의 지혜의 말씀은 이웃의 행복을 위해 경제적인 발언을 하는 자들과 사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반대의 사람들을 사귀지 말라고 하신다. 참으로 깊이 통감되는 말씀이다. 고찰하건대 저들은 오로지 김정일만을 위한 발언을 수도 없이 쏟아 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주민의 고통을 탈북자들의 고통에 대한 것은 모로 쇠로 일관하였다. 북한주민을 고통을 위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들의 실체를 알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제 우리는 이런 자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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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기도하기전에 나라에 세금부터내는 훌륭한 모범이 되었으면 그것이 구국의 첫발이라 생각되는데 한번 그렇게 해보는게 어떻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