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정일 말못참는 두정상 화끈하게 속내틀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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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정치]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2005년 7월, 노무현 대통령). “걱정하지 말라. (북으로) 넘어오는 족족 돌려보내겠다”(2005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대면할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여러 모로 닮은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통크게 결단하는데서 우선 같다. 하지만 통치 스타일과 성장 배경에서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다. 나이는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보다 네살이 더 많지만 60대 동년배여서 세대차는 없다. ◇공통점, 승부사적 기질=두 사람은 일단 남을 놀라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앞서 인용했듯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의 당시 한나라당이 꿈적도 않자 발언 수위를 높히다 급기야 2선 후퇴와 임기단축을 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될 때에는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고, 중앙선관위가 정치적 발언을 문제삼자 헌법소원을 내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노 대통령은 서울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에서 내려가 내리 낙선하면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정치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결국 ‘바보 노무현’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의회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고 대립하다가 탄핵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김 위원장도 돌출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껏 과시한다. 김 위원장은 2005년 6월 평양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을 만나 화통한 발언을 쏟아냈다. 금강산에 올 때 남한사람 누구나 개인 승용차를 타고 와도 좋다고 말했고, 우리측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남한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이 다음에 다시오면 폭탄주를 한잔 하자고도 제안했다. 정 전 장관은 “그는 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다”고 술회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 당시 남북한 상호비방 방송금지 합의를 놓고 군 장성들이 “남측에서 합의를 깨면 어떡하냐”며 반대하자 직접 나서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자”며 설득했다고 한다. 북측에서는 이를 광폭정치라고 부르고 있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고도 정평이 나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강봉균 의원은 8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노 대통령까지 세 사람을 겪어봤는 데 머리는 노 대통령이 가장 좋다. 기억력이 비상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은 대단히 머리가 좋다”고 평가했다. ◇차이점, 대중성과 폐쇄성=성장 배경에서 차이가 크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노 대통령은 상고 학력이 전부다. 반면 김 위원장은 왕의 아들에 속한다. 북한에서 신에 비유되는 김일성 주석 후광하에 후계자로서 승승장구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잣집 도련님 캐릭터인 김 위원장과 싸움닭 스타일인 노 대통령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우습게 볼 가능성이 있고, 만약 김 위원장이 싸늘하게 나온다면 회담 분위기도 냉랭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통치 스타일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대중정치인이다. 단계단계를 밟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그는 권력기관을 과도하다할 정도로 독립시키고 스스로 권위를 벗어 던졌다. 토론을 좋아하고 상대방을 설득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김 위원장은 제왕적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매제 장성택도 낌새가 이상하자 한때 좌천시켰을 정도로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측근을 중심으로한 폐쇄성도 두드러진다. 노 대통령이 외향적인 성격인데 비해 김 위원장은 내성적이고 다소 즉흥적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 스타일 경우 노 대통령은 한번 일을 잡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어서 밤늦게까지 집무실에서 일한다. 김 위원장은 밤 11시에서 새벽 5시까지 집중해서 업무를 처리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민수 유병석 기자 ms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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