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처음 밟아본 평양 땅, 세번 놀랐다.권성희 기자의 방북기-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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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http://news.naver.com/photo/read.php?mode=LTD&office_id=008&article_id=0000835565§ion_id=101&view=all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권성희 기자의 방북기-上]거리 생각보다 깨끗, 전력 기대 이상] 평양 고려호텔 앞 거리 처음 밟아보는 평양 땅에서 3번 놀랐다. 첫째는 생각보다 거리와 건물이 깨끗해서 놀랐고 둘째는 북한 사람들이 친절해서 놀랐다. 셋째는 같은 언어로 얘기함에도 서로의 인식 차가 너무 커 놀랐다. ◆깨끗한 거리, 파스텔톤으로 색칠된 건물 지난해 가을 노무현 대통령의 순방을 따라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북한에 정통한 사람으로부터 "북한의 경제사정은 캄보디아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말을 들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지저분한 거리, '완 달라(one dollar)'를 외치며 손을 내미는 헐벗고 마른 아이들, 지치고 희망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북한은 이보다 더 심하다'는 인식이 머리 속에 박혔다. 개성을 지나 평양에 가는 길, 우선 '어? 나무가 많네?'란 생각을 했다. 북한에 다녀왔던 사람들로부터 북한은 나무를 베어 먹을 것, 땔 것으로 썼기 때문에 민둥산이 많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개성-평양 고속도로 주변에는 둘레가 굵고 키 큰 나무는 아니지만 가로수가 형성돼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도 비록 잡목이나마 푸르렀다. 평양 초입에서 사람들을 맞는 것은 웅장한 삼대헌장기념탑이었다. 압도당할 만큼 큰 규모였다. 그러나 평양 시내엔 이처럼 거대한 건물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높은 빌딩이 없어서인지 거리 중간 중간에 보이는 큰 회관이나 기념관, 거대한 고 김일성 주석 동상은 실제보다 더 크게 보였다. 가끔씩 눈에 띄는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우리식대로 살자'는 식의 빨간색 구호들은 '여기가 평양이구나'란 느낌이 들게 했다. 공동기자단의 숙소는 평양역 부근 번화가인 특급 고려호텔이었다. 이 호텔 주변은 특히 깨끗했는데 주위에 분홍색, 연두색으로 칠해진 고층 건물들이 쭉 서 있어서 '곱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파스텔톤의 깨끗한 고층 건물은 북측 안내원의 표현에 따르면 '살림집', 우리로 치면 아파트였다. 이색적인 것은 이런 고층 건물 1층에는 상가가 들어서 있어 일종의 주상복합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전력사정이 나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평양에 머무는 동안 전력사정이 나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었다. 밤 늦게까지 건물들에 불이 켜져 있는가 하면 길가 나무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하는 전구가 달려 있어 거리를 밝혔다. 이를 보고 특별수행원으로 온 소설가 조정래씨는 "10월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다는 걸 상상이나 해봤나"라며 "우리를 정성들여 맞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2박3일 방북기간 동안 불 밝은 평양 거리는 여러 번 평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도 의문이었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 때는 가로등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가로등도 많이 켜져 있고 평양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고 깨끗하게 단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훈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은 "남한에서 온다니까 무리를 하고 있는 건지 진짜 전력사정이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다"며 "북측 설명으로는 강들마다 수력발전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데 그런 규모의 수력발전을 해봤자 동네 하나 전기 공급하는 것밖에 안 될텐데.."라며 의아해 했다. 하지만 2박3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북한의 전력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웠음에도 평양-개성간 고속도로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고 터널 안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개성 시내에도 가로등은 없었다. 오후 8시를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개성시내는 어둠 속에 잠겼다. '칠흙 같은 어둠이 바로 이런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버스가 개성공단에 다가오면서 변화가 느껴졌다. 남한이 새로 깔아놓은 도로 주변엔 키 큰 가로등이 쭉 서서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개성공단도 노무현 대통령 내외의 방문을 준비하느라 불이 환했다. 평양은 '꾸며 놓은 야경'이라면 개성공단이야말로 정말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란 생각을 했다. ◆친절하고 자존심이 강한 북한 사람들 평양에서는 마음대로 숙소 밖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숙소인 고려호텔 1층과 입구에는 북한 안내원들이 상시 거주하며 기자들의 동선을 관찰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의 행사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6~10명씩 이동할 때는 북측에서 제공한 차량에 안내원이 3명씩 동석했다. 안내원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소속들이었다. 2000년 제1차 정상회담 때는 기자 한 명당 안내원이 한명씩 붙었으나 이번에는 기자들을 호텔 밖으로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취재로 이동할 때만 데리고 다니는 식이었다. 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 인민대학습당이나 김일성 광장 같은 유명한 곳에 잠시 내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지만 "여기 관광하러 온 것은 아니잖습네까"란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평양 시내를 걸어 다니지 못한 것은 물론 일반 주민들과는 얘기를 나눌 기회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했을 때 방북단을 환영하던 북한 주민들은 표정이 밝았고 남한 사람들이 타고 있는 차가 지나갈 때는 열렬히 손을 흔들어줬다. 동원된 사람들이라 해도 북한 주민들의 표정이 밝았다는 데에는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안내원도 유연하지는 않았지만 친절한 편이었다. 유연하지 않다는 것은 한번 정해진 일은 변경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을 해서 정해진 일을 마음대로 바꾸면 됩네까"란 반응이었다. 기자단 전체가 이동하느라 소형버스가 서너대씩 움직일 때는 이름을 확인하고 태웠고 다른 차로 바꿔 타면 곤란해 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중학생인데 컴퓨터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자식 자랑을 하거나 '조평통 소속들이 그것도 모르냐'고 농담을 하면 "아, 우리가 업무를 소홀히 한 겁네까"라고 웃으며 받아 치기도 했다.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거리 사진을 자유롭게 찍게 해줬고 기자들의 사진도 찍어줬다. 방북하기 전 청와대로부터 안내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줘도 좋다는 말을 들어 선물을 준비했다. 떠나는 날 친절했던 안내원을 따로 불러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으나 웃으며 "일 없습네다"라고 완곡히 거절했다. "제가 언제 다시 평양에 오겠나. 마음이니 받아달라"고 했더니 "남북 정상회담 결과 못 봤습네까? 이제 자주 만나야지요"라고 답했다. 북측 CIQ까지 동행한 한 안내원은 선물을 건네자 웃으며 거절하며 "안 받는다고 섭섭해 하지 마시고 마음은 알겠으니 마음만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어렵다는 현실이, 만나기는커녕 연락조차 못한다는 현실이 가슴 무겁게 다가왔다. ◆넘기 힘든 인식의 격차 호텔 안에 갇혀 있다 취재가 있을 때만 해당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갑갑한 방북 일정 중 북한이 자랑하는 집단체조극인 아리랑 공연 관람은 북한의 체제와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리랑 공연은 보는 사람들마다 감상이 각기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다. 1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원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카드섹션으로 온갖 그림과 구호를 만들어 내고 각종 춤과 매스게임, 체조 등을 펼치는 모습은 '집단주의'의 총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고 김일성 주석의 사진과 인공기가 등장하고 "한 세대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강철의 명장" "어버이 사랑으로 강군을 키우신 대원수" "무궁 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 등의 구호가 카드섹션으로 나타날 때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등장해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는 교차 줄넘기를 하거나 어린 남자아이가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빙빙 돌거나 어린아이들이 연속 덤블링을 하고 음악에 맞춰 한 치의 실수 없이 움직이는 모습에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7~8살로 밖에 안돼 보이는 저 수많은 아이들을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과 다그침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왜 외신에서 아리랑 공연을 두고 '아동학대'라는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리랑 공연에 대한 북한 안내원들의 인식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북한 안내원은 일사분란하게 카드섹션을 펼치는 아이들이 11살이라고 소개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머리가 좋다"며 "평양 부모들은 아이들이 아리랑 공연에 참여하면 키가 크고 규율성도 생긴다고 좋아한다"고 자랑했다. 행사장에 다니면서 북한 안내원들과 나눈 대화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 평양에서 남포 평화자동차 공장으로 향하는 길, 멀리 보이는 청년들의 동상을 가리키며 "저기가 김일성 주석께서 며칠간 머무르며 농민들을 지도하시던 청산리"라고 말하거나 "김정일 장군님이 방직공장에서 현장실습하실 때 26호 기계를 혁신적으로 고쳐서 26호 영예상이 생겼다"고 소개할 때는 넘기 힘든 벽을 느꼈다. 또 "선생은(북한 사람들은 선생이란 호칭을 썼다) 나무껍질 벗겨 먹은 적 있소?"라고 질문한 뒤 "우리는 고난의 행군 시절에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뒤에 김정일 장군께서 강성대국을 만들자고 했지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때는 무엇이 자랑스러운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면서도 강성대국 건설의 의지를 불태웠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결과의 이행에 기대감을 표명하고 동원됐을지언정 평양에 도착할 때, 또 떠날 때 거리에 쏟아져 나와 손을 흔드는 평양 주민들을 보며 통일에 대한 열망이 전염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모습,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진 같은 민족이란 감정은 이번 방북 과정에서 얻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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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북한 금강산을 다녀온 분께 들었는데요.안내원끼리도 서로 감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안내원이 혼자 있으면 고맙다고 말씀하고 받는다고 들었습니다.서로 감시하니 공공의 자리에서 받지 못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헉..어린 아이들까지 아리랑 공연에 동원시켰네요.전 여기까지는 보지 못했는데ㅠㅠ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몸이 유연하니 재미로 가르쳐야지 혹독하게 훈련시키면 오히려 키가 자랄려다가 멈추지 않을까요?!
정치적으로자극되는 부분은 삭제됬다고 하던데
노통도 그리고 다른 분들도 우상숭배를 하는 카드섹션은 심기가 불편했다고 했지요.
나라의 정통성이 아닌 버려야할 세습독재라고 생각하고 섹션 카드로 간접강요를 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다르겠지만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요.
제가 어릴절에 남북의 창 방송에서보았던 북한 국민일부대화는 여전하네요.김일성 김정일 숭배..ㅠㅠ
안타까운 현실...
또 숱한 백성들이 들볶였겟군~~~~~
거짓과 위선에 가득찬 평양....
그것이 누구의 그림 같은 그런느낌 말입니다
김父子가 그린것입니다 그 대형 그림을 그리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옥에가고 하였습니다 감상하는 넘들은 그런거나 아는지 더이상 돈퍼주고 구경가서 정일이 배불리고 북한백성 피짜내는일 하지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