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인협회회원들은 이렇게 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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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지옥 대성공사 정착교육은 뒷전…“간첩 가려낸다” 욕설과 폭력만 난무 (사진/탈북자들에 대한 조사와 정착교육이 이뤄지는 '대성공사'. 탈북자들은 대성공사를 다시 떠올리기 싫은 치욕의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번지.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주민등록증을 보면 하나같이 본적이 이렇게 씌어 있다. 탈북자들이 남한 주민으로 공인받고 새 인생을 살게 됐다는 상징이다. 탈북자들의 제2의 고향인 것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탈북자들의 가슴속에는 이곳이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떠올리기 싫은 치욕의 장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이른바 ‘대성공사’가 있는 곳이다. 겉보기 명칭은 일반 회사 같지만 사실은 탈북자 조사와 정착교육을 맡은 보안시설이다. 문 들어서자마자 몽둥이 세례 (사진/'우측 결관절 탈구 이후 지속적인 재발성 탈구'라는 병명이 적힌 후유장해진단서를 들어보이는 유재의씨. 이 아무개씨는 조사관의 몽둥이를 피하다 다친 오른손 약지가 지금도 굽어 있다.) 북한에서 넘어오면 일차적으로 이곳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경찰청·국방정보본부·정보사·기무사 등 5개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의 신문을 받는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대략 1개월간의 신분조사와 5개월 정도의 정보조사를 마쳐야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일반 사회로 나갈 수 있다. 황장엽씨의 경우처럼 ‘안가’에서 조사를 받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는 입국하면 기자회견 등을 마치고 곧바로 대성공사로 보내진다. 탈북자들은 무사히 남한에 왔다는 안도감과 설렘 속에 카메라 앞에서 만세삼창까지 부르고 대성공사행 차량에 오른다. 하지만 이때부터 설렘은 두려움으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게 ‘자유를 찾아온 북한인 협회’(자유북한인협회·회장 한창권)의 주장이다. 자유북한인협회 회원들은 “대성공사에서는 욕설, 감시, 감금은 물론 구타와 고문 등 탈북자들에 대해 갖은 인권침해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96년 입국한 홍진희(30)씨는 지난 1월15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폭로했다. “대성공사에 도착해 취조실에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조사관들한테 곤봉으로 20여대를 맞았습니다. 조사관은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고 인사는 90도로 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같은 자유북한인협회 회원인 유재의(38)씨의 회고담이다. “똑바로 앉아 있는데도 괜히 ‘똑바로 앉으라’고 윽박지르며 안절부절 못하게 했습니다. 강압적인 질문에 대해 항변하면 곧바로 곤봉과 주먹세례가 돌아왔습니다.” 유씨는 특히 “입국 첫날(95년 7월29일) 신문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어깨뼈가 빠져나오는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새끼야’라는 말 좀 쓰지 말라고 했더니 2명이 저를 꽉 붙잡고 1명이 제 가슴을 마구 쳤죠. 또 오른팔을 붙잡고 있던 사람은 제 팔을 심하게 비틀어 어깨뼈가 빠져버렸어요.” 유씨는 “곧바로 국군수도병원에 실려가 부러진 갈비뼈 5cm 정도를 도려내야 했다. 특히 오른쪽 어깨에 이상이 생겨 아직도 오른손으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한다. 지금도 잠깐 잊고 오른쪽 어깨에 힘을 주거나 기지개를 켤 때면 어느새 어깨뼈가 빠져버린다”고 호소했다. 유씨가 지난 1월 병원에서 발급받은 후유장해진단서에는 ‘1995년 7월29일 우측 결관절 탈구 이후 지속적인 재발성 탈구’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자유북한인협회 관계자들은 “몸을 다쳐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4명이며, 허철수(43)씨 등 3명은 공황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조사관들로부터 “인간 쓰레기” “너는 아직 국적도 없으니 여기서 죽여버려도 아무 상관없다”는 등의 폭언을 예사로 들었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대성공사는 대통령훈령상 국방부 소속으로 돼 있지만 국정원이 사실상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 국가보안시설에 대한 보안감사권을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데다, 탈북자가 위장 탈북한 간첩인지를 가리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조사관들로부터 ‘처음에 기를 죽여놓기 위해 의도적으로 폭력과 폭언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 때문인지 국정원이 주도하는 1개월간의 신분조사 단계에서 가혹행위가 가장 심하다”고 전한다. 하지만 신분조사가 끝나도 인권탄압은 만만치 않다. 탈북자 이아무개씨의 얘기다. “정보조사를 받는 기간중이었습니다. 한 조사관이 저에게 ‘태권도를 잘한다는데 운동시간에 무술시합이나 하자’고 해 응했는데 제가 이겼습니다. 조사관들은 그날 저녁 ‘탈북자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며 저를 몽둥이로 마구 때렸고 이를 피하다 오른손 검지를 다쳐 지금도 손가락 끝마디가 굽어 있습니다.” 이 밖에 배인수(30)씨는 “기독교 신자인 조사관이 보는 앞에서 족구를 하던 도중 동료가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하는 것을 보고 ‘아멘하라’고 농담을 한 게 화근이 돼 보름간 독방에 감금됐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들은 “굳이 폭력과 폭언이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자유를 제한한다. 처음 얼마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대성공사는 해도 너무한다. 감옥보다 더하다”고 입을 모은다. “6개월 내내 취침시간말고는 아파도 눕거나 자지 못한다. 24시간 감시카메라가 있어 속일 수도 없다. 또 매일 감상문과 일기, 회고록을 써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안 쓰면 대성공사에서 나올 수 없다.” 탈북자들의 하소연은 끝이 없다. 신문에 글 기고했다 경찰서 끌려가기도 대성공사에서 6개월의 조사기간이 끝나고 사회로 나와도 탈북자들은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 안에 있다. 이아무개씨의 주장이다. “대성공사를 나온 뒤 지난 96년 부산에 정착했습니다. 하루는 담당 형사가 호출을 했는데 몇시간 늦게 연락했다며 경찰서에서 무릎을 꿇려 진술서를 쓰게 했습니다. 해외여행 못하게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국내 유람선도 못 타게 했습니다.” 95년 9월 대성공사에서 나온 이민복(42)씨는 “지난 97년 안기부의 승인없이 일간지에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로 불려가 구타와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권탄압은 현 정권하에서도 여전하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홍진희씨는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5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탈출시켜 남한에 입국시키자 안기부 직원이 ‘왜 쓸데없이 가족을 데려와 고생시키느냐’며 구타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창석 기자 song@mail.hani.co.kr ▣ OPEN! 한·겨·레 인터넷쇼핑몰! 한번 와보세요~ http://hani.s-mart.co.kr ▣ 한겨레21 1999년 04월 22일 제25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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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언제적 껀데 마치 지금도 그러하듯 글을 올리신게요?
요즘도 한국와서 기자회견하고 만세삼창 합디까?
대성공사에서 6개월을 산다구요?
간첩혐의도 없는 무고한 탈북자들 모두가 다 저런 대우 받습니까?
이 기사가 나온 10년전에는 그러했었고,
그 이전에는 기사내용보다 더 험악하고 무자비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음을 탈북자 여러분들이 더 잘아시지 않습니까?
이런글을 올리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런절차는 없었어요. 대성공사 1개월인가? 있으면서 조사는
일주일정도 받았어요. 평화통일만님~ 저글은 지금의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이래서 언론을 100% 믿으면 안된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되는 군요...아침부터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오지만
오늘 하루도 화이팅!!
저렇게 까지 심각하진 않았었는데....
좀 옛날이야기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