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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이 국가 신인도(信認度)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는데---.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42 2008-01-13 15:04:33
1. [음부와 幽冥(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사람은 자기구현욕구가 强(강)하기 때문에 늘 자기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보다 專門的(전문적)인 眼目(안목)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인정을 받지 못할 때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그런 것에 얽매여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자기안목에 만족할 때까지 일하기를 좋아하고 펼쳐나가기를 좋아한다. 정주영 씨는 비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람아,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언제든지 생각해둔다네. 새벽에 눈이 뜨면 그날 할 일을 생각하고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 소풍 갈 때 가슴이 설레듯이 나는 매 일 아침마다 가슴이 설레는 거야. 일을 빨리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두 시간이면 족하지"]조갑제 닷컴에서 나온 자료이다. 정 회장은 마음에 원하는 바를 성취해가는 설렘 속에 살았다는 것이다.

2. 그의 목적은 자기구현욕구의 현실화에 있었다고 본다. 자기구현욕구는 이생의 자랑의 현실화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시각일 것이다. 그의 삶은 자기구현욕구의 달성에 있었다는 말이다. 자기구현욕구를 위해 필요한 것은 權勢(권세)와 金權(금권)과 생명과 건강이다. 살아 있어 건강한 모든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권세와 금권을 갖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기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끝없이 자기 도전의 길로 자기 안목을 높여 가려고 한다. 그런 눈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생에 恨(한)을 품고 살게 되고,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더 큰 안목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노예가 되어 허덕이다가 인생이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왜 사느냐에 대한 것의 목표를 정확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이 진리가 된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그것이 곧 무엇인가에 관하여 聖經(성경)은 말씀하기를,

3.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기름부음 받아 사신 예수님처럼 사는데 있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가페 구현욕구를 받아서 세상에 펼쳐내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아가페 사랑을 이루는 안목의 충족을 성령의 所欲(소욕)이라고 하고, 자기만의 안목을 충족시켜 나가는 것을 육체의 所欲(소욕)이라고 하는 구별법을 사용한다. 인간은 왜 사느냐에 대한 목표는 성경적인 이정표는 예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아가페의 이타적 사랑에 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너를 진심으로 섬기려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이타적 사랑의 욕구이다. 이런 욕구의 차이는 아주 상반된 문화적인 배경을 갖게 된다. 아가페인 이타적 사랑은 항상 두 가지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 하나는 救援(구원)이고 하나는 救濟(구제)이다. 이 나라의 기업인들의 행동에 아가페적인 이타적 구제에 있었는지, 자기만의 부요 축적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소유욕의 표현 곧 소유욕을 위한 자기구현욕구적인 행동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4. 그런 자들에게 주는 성경의 里程標(이정표)적인 말씀은 이러하다. [그러나 知足(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구제란 無償(무상)으로 베푸는 것만이 구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구제란 인류에게서 또는 인간에게서 또는 국가에서 가난을 근본적으로 몰아내어 국민을 골고루 부자로 만들어 내는 구제를 말한다. 그런 구제를 진정성 있게 달성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이 되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의 부요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거부하게 하는 知足(지족)하는 마음이다.

5. 이는 끝없는 비교심리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부요에 대한 끝없는 욕구는 富益富(부익부) 貧益貧(빈익빈)이라고 하는 전쟁을 만들어 낸다. 부요 그 자체가 목표가 된 자기구현욕구의 노예들이 그런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 사느냐 하고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말한다. ‘부자가 되려고!’ 이미 부자가 되었다고 소리치지 아니한다. 그만큼 그들의 안목에는 족함이 없다. 그에 반해 아가페는 이렇게 소리친다. ‘인류의 가난을 撲滅(박멸)할 때까지 우리는 족함이 없다.’ 과연 가난은 없어지는가? 없어지지 아니한다. 다만 평균케 하려는 것의 의미 (救濟(구제))를 달성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언제든지 상대적인 貧困感(빈곤감)은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사람이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比較(비교)心理(심리)가 존재하는 한 경제회복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지족하는 심리와 마음 곧 인류의 가난을 해결하고 그를 구제하는데 필요한 기반심리 곧 이타적인 供與(공여)이다.

6. 서로가 헌법안에서 근본적인 직장을 만들어 가며 일터를 제공하고 만들어 가는 구제와 보답, 무상으로 공여하는 것으로서의 감사와 보은의 구제가 곁들여진, 그런 구제의 논리가 가득한 세상을 이루는 것이 곧 지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세상이다. 이는 에고이즘적인 이기적 자기구현욕구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그런 것을 희생하고 서로 사랑의 아가페의 달성구현욕구에 살아가는 행동을 의미하는 지족심리이다. 이는 주는 者(자)쪽의 知足(지족)이고 받는 자 쪽의 知足(지족)이 함께해야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때문에 받는 자 쪽에서 가져야 하는 지족이 또한 必要(필요)하다. 그런 세상으로 가면서 경제회복을 달성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의 기술적인 요구이다. 인간의 각기의 부요를 채워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받는 자 쪽에서 갖는 지족이 앞에서 말한 조건 중에 또 하나의 조건이기도 하다. 받는 자들이 갖게 되는 상대적인 박탈감,

7. (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저소득층의 소득은 적게 상승하거나 정체해 있는 반면에 고소득층의 소득은 치솟아서 실제로 내가 잃은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만큼 살 수 없음을 보고 느끼는 공평한 사회적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발생하는 감정을 말함.) 을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는 그만큼의 노력으로 서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先行的(선행적)으로 거론한 조건은 이기적인 자기구현욕구의 抛棄(포기)에 있다. 그것이 곧 주는 자들의 지족에 해당된다. 인간들이 가지는 모든 것의 욕심은 한이 없다. 그런 한 없는 욕구를 다 채워 줄 수는 없다고 본다면, 자기능력을 알고 자기 스스로 지족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것을 어떤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 자기 이기적 주장을 정당화 시키고 비교 심리적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자기 능력을 따라서 대우받는 것은 또는 일한만치 받게 되는 것은 시장자본주의의 근본이다.

8. 그런 것을 拒否(거부)하는 어떤 행동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아울러 열심히 일하는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는 가운데,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해 사회적인 불안을 야기하거나 악성파업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새 정부가 노동계를 무시하고 계속 탄압할 경우, 국가 신인도(信認度)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총 파업 투쟁을 벌이겠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10일 밤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조선일보 보도다. 그들은 시장자본주의를 역행하고 오히려 상대적인 박탈감을 국가경제를 무너지게 하는 배수진을 펴고 극렬 투쟁하겠다고 한다. 보나 안보나 팔이 안으로 굽는 논리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능력급에 만족하는 정의보다는 능력급에 반발하는 불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가장 쉬운 선거운동은 포풀리즘이다. 이런 선심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표를 모을 수가 있으나 결국은 나라가 가난해진다.

9. 국민들을 모두 다 절대 빈곤으로 몰아넣는 행위란 말이다. 각기 능력이 있는 만큼의 소득을 갖는 경쟁을 받아들이는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그나마 경제가 好轉(호전)되게 한다. 하지만 그것만을 가지고는 달성되지 못한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 왜 사느냐는 물음에 진리적인 답변을 해야 한다. 이는 인간을 구원하고 구제하려고 산다가 되어야 한다. 救濟(구제)가 무엇이냐고 묻게 된다면 국민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일자리 창출과 무상의 공여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답해야 한다. 이런 이론만을 가지고는 다 해결될 수가 없다. 실제로 행동해야 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자기구현욕구를 포기하고 구원과 구제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지족하는 마음이 전 국민의 마음에 충일해야 한다. 그것이 있어야 상대적인 박탈감을 없애버리는 인간 자신들이 될 수가 있다. 그 또한 자기 능력에서 얻어지는 것에 불만이 없어야 한다. 함에도 이러저러한 상대적인 박탈감의 불만을 만들어 내는 자가 있고,

10. 언제든지 공평한 분배를 내세워 자기들의 이익을 따라 시장자본주의 능력급의 근본을 무너지게 한다면 亡兆(망조)가 든 것이다. 이런 기업과 노동계의 지족을 모르는 짓은 결국은 국민 전체를 절대 빈곤으로 몰아넣는 선심정책이나, 아니면 공산주의 사회주의 궤변의 설자리나, 아니면 전국을 파업의 투쟁 판으로 만들어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게 하는 가난의 양산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에 있다. 때문에 바로 거기에 저들의 의도성, 곧 김정일 주구들의 남한적화의 陰謀(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파업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시작하지만 그 내면에는 남한적화라고 하는 의도가 伏線(복선)으로 깔려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저들의 음모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인간의 이기적 자기구현욕구를 포기하게 하고, 지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간이 왜 사느냐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1. 하나님의 사랑을 땅에 실천하는데(구제와 구원) 인생을 바치는 안목, 그런 안목의 욕구를 가진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의의 소망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팔복 중의 하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며 저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이 살면서 그러한 만족을 위해서 산다면 예수님처럼 이웃의 짐을 지기에 최선을 다하는 세상을 열어가게 된다. 위대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에 관해서 참으로 다양한 내용으로 구분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위대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기심에서 나오는 자기구현욕구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아니고, 아가페的(적) 이타적 사랑에 의하여 사랑을 실현시키며 사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안목을 가지고, 그런 꿈을 가지고, 그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이름으로 응답받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12. 사실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만족에 겨워하고, 자기 구현에 겨워한다. 또한 그 안목의 욕구는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르게 된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산다면 이웃에게 아무른 혜택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에고이즘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씨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경제를 외쳤고, 그 경제가 잘되어야 북한의 김정일도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하는 암시 요법을 통하여 결국 대통령직을 얻게 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과연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는지, 이생의 자랑 곧 이기적인 자기구현욕구의 노예가 되었는지는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명박의 가야 하는 길에 注目(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친구들이 노리는 또는 가는 길에 관하여 겹쳐지는 모든 부분에서 反(반)이명박 성향 崇(숭)이명박 성향 등을 純粹(순수) 이명박 성향으로 정화시켜 또는 순화시켜 세상을 바꿔놓아야 한다는데 그의 진정성의 여부는 있게 된다.

13. 그는 도대체 어떤 자들과 같이 그 일을 추진해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국민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기적인 자기구현욕구를 위한 소유욕을 구분하고 아가페的(적) 이타적 흐름으로 이끌어가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새로워 질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잃어버린 10년 동안에 저질러져 있는 모든 것을 설거지하기 위해 5년의 세월을 보낸다 할지라도 자기안목의 충족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는 충족을 위하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천민자본주의는 환경을 무참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안목에 만족하는 길은 곧 인류와 환경에 만족을 주는 구원과 구제의 달성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북한주민을 돌아보자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곧 지족하는 마음을 복된 장마 비같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삶의 목적이 채울 수 없는 자기구현에 있게 된다.

14.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불만의 파고는 그칠 날이 없게 된다. 여전히 국민은 춥고 배고프다고 소리치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또다시 좌파가 득세하고 득세된 좌파들로 인하여 선심공약의 소리가 먹혀들어가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가 또 나올 것이고, 공산주의 손길이 또 들어앉을 자리가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북한 인권을 돌아보는 것, 그것을 온 국민이 진정성 있게 해결하는 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두 가지 心理(심리)가 발생한다. 인간은 왜 사느냐는 문제에 진리적인 答(답)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아가페적인 救援(구원)과 救濟(구제)에 있다. 그것을 위해 知足(지족)하는 마음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상급이 되어 전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열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 왜 사느냐의 진리적인 깨달음과 지족하는 마음이 복된 장마 비처럼 내리게 하는 것은 북한 인권을 돌아보는 예수의 아가페의 실천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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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말하우트 2008-01-13 16:32:17
    이글은 포말하우트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1-13 16:52:20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포말하우트 2008-01-13 16:54:40
    이명박 정부가 서민과 노동자들을 위할까요?
    국민들은 처참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은 기존 대기업들과 건설업자들의 천국을 만들 것이고
    그 천국을 만드는 데 서민들의 희생이 뒤따를 것입니다.
    여전히 실업난의 아우성은 이명박이 퇴임하는 2012년까지도 줄어들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나라를 이끄는 경륜 어떤 것도 계획성을 볼 수 없는 인수위원회의 모습을 바라볼 때 이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은 사치임을 느낍니다.
    잃어버린 10년을 노래하지만 과연 무엇을 잃어버렸던 것인지 속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조중동의 노래만이 진실은 아닙니다.
    아집과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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