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서 유일한 탈북민이지만 편견 시선 느껴본 적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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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분야 전문인을 양성하는 ‘한국 해양대’에 탈북민 최초로 입학한 청년이 있다. 졸업(내년)을 앞두고 있는 박정우(사진·26) 씨다. ‘마지막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는 질문에 박 씨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평범하게 자전거 여행과 운동, 토익공부를 하며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현재 해사대학(학부)에서 ‘기관시스템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 전공은 크게 항해선장과 기관장(기술)두 개로 나뉘는데, 그는 기술(운항관련) 분야에 속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를 조립하거나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박 씨가 해양대에 입학, 기술을 익히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 한국에 입국한 박 씨의 초창기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였다.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려면 밑천(자본)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특별한 전문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박 씨는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해양대로 진로를 결정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탈북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형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행정상의 여러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박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교육청에 문의해 가며 정보를 습득·취합해 차근차근 입학절차를 밟아나갔다. 노력이 결실을 맺어 결국 탈북민 최초로 해양대 입학에 성공한 것이다. 과정은 힘겨웠지만 북한 출신이라고 해서 적응하는 데 특별히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탈북학생 대부분이 학교에 입학하면 스스로를 가두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이 오히려 한국사회 정착에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대학에 와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어 “탈북민들이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스스로 피해의식을 만들면서 생기는 것 같다”면서 “(제 경우) 학교가 무조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서 한국 출신 친구들이 더 많은데, 그 친구들과 지내다보니 내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편견을 가질까봐 어울리지 않는 것이 (탈북민들의) 문제 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친구들과도 서로 출신 등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놀 때는 같이 미친 듯이 놀고, 함께 생활하다보니 편견 같은 문제들도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 같다”면서 “편견이라는 것은 본인이 너무 의식해서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박 씨는 상당수의 탈북 학생들이 정착초기 학업을 선택하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단순노무 업무에 종사하는 것과 관련해, “각자가 선택할 문제”라면서도 “하지만 (제 입장에선) 대학교에 입학해 경험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그 시간에 돈을 벌고 경력을 쌓는 등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학업에도 도전해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길”이라고 부연했다. [다음은 박정우 씨와의 인터뷰 전문]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이름은 박정우이고, 현재 26살이다. 고향은 함경북도 샛별군(경원군)이고, 지금은 성북구에 살고 있다. 대학생이다. -탈북은 언제했나? 2005년이다. 중국 심양 영사관을 통해 왔는데 영사관에서 17개월 정도 지내다가 2006년 9월에 한국에 입국하게 됐다. -그렇다면 한국 생활 만 10년이 되어간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현재 차이가 있다면? 외적으로는 운동을 좋아하다보니 몸이 처음 왔을 때보다는 많이 불었다. 내적으로는 큰 사업가가 되려고 했던 목표가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변경됐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업가가 되려고 생각했던 건가? 그렇다. 돈을 많이 벌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을 위해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조금 버거운 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 해양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공은 무엇인가? 해사대학(학부)에서 기관시스템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해운업계를 놓고 봤을 때 이 전공은 크게 항해선장과 기관장이란 두 개의 진로로 나뉠 수 있는데, 현재 기관전공이기 때문에 기술자(운항관련)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이 전공을 선택하게 됐는지? 어린 시절부터 기계를 조립하거나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무엇인가 해결(끝)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인문계 쪽보다는 이쪽이 더 맞는 것 같아서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됐다. -한국에 와서 현재 전공(과)을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꿈은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였다. 그런데 사업을 하려면 밑천(자본)이 필요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는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지인을 통해 해양대를 알게 됐고,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된 거다. 당시 이쪽 분야를 전공하는 탈북민들이 없어서 입학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었다. -학교 측에서도 북한 출신 학생은 처음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 학교에서도 전형 과정을 전혀 몰랐었다. 탈북 학생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그렇다보니 탈북 대학생을 위한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교육청에서 알아본 것을 학교 측에 알려주면서 입학절차를 밟았었다. -일반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건지? 아니다. 탈북민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학교에서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입학부터가 쉽지 않았던 학교인데, 학교생활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다? 그렇다. 다른 것보다도 공부 때문에 힘들었다. 나름 수학·과학을 잘한다고 자부하다가 현실에 부딪히면서 크게 혼이 났다. 해양대는 3학년 때 외국에서 1년간 실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150학점(졸업학점)을 채워야 하는데, 그래서 매 학기 23학점 이상씩 수강해야 했다. 본인이 듣고 싶은 수업으로 시간표를 짜거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 따라가기 힘들어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학사경고까지 받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1학년을 마치고 바로 휴학신청을 하기도 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전공공부를 하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대학에 와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어땠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대인관계 맺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해양대에선 무조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인관계는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지금도 내가 북한에서 온 것을 아는 친구도 있고 모르는 친구도 있지만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잘 어울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일 어려운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업적인 부분이다. 일단 공대과정을 배우는데, 기초가 부족한 상황에서 계속 지식만 쌓이다보니까 힘들었다. -등록금이나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고 있는지? 등록금 전액은 국비로 지원받고 있다.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어머니가 일하시니까 지원해주시기도 한다. 또 해양대의 장학금 제도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에서 살다 보니 탈북학생 장학금 제도를 몰라서 활용하지 못했었는데, 이번학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북하나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해양대를 졸업하면 이후 취직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들었다.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려고 생각하나? 해양대를 졸업하기 전에 해기사 국가시험이라고 해서 기술자 면허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작년에 그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은 기관사 등급이 있는데 졸업하면 그 등급에 맞게 배를 타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배를 타는 것이 두렵긴 하다. 배를 타면 세상과 단절된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다. 해양대를 졸업하면 군대는 면제가 되지만, 대신 배를 무조건 3년을 타야 한다. 배를 타고 난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 중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가 있다면? 북한 출신 분들이 언론이나 미디어에 나와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힘이 있어야 그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같다. 즉, 각자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만든 다음에 목소리를 내면 더 큰 힘이 실릴 것 같다. 그래서 우선 남들이 뭐라고 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선 다음 목소리를 내볼 생각이다. 다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선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많은 탈북민들이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 편견, 문화적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일 텐데, 한국에서 10년간 생활하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사회적 편견 같은 경우는 좀 다를 수 있는데, 사실 피해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제 경우엔 한국출신 친구들이 더 많은데 그 친구들은 제가 북한에서 온 것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다. 그런데 제 자신이나 친구들이나 별로 의식하지 않고 함께 놀 땐 미친 듯이 같이 놀고 하다보니까 불편한 시각들도 크게 느껴지지 않게 됐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너무 의식하지만 않으면 편견이라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탈북민들의 사례를 보면, 정우 씨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처럼 공부 보다는 ‘돈을 우선 벌자’란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꽤 있다. 본인의 경험에 비춰볼 때 고향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각자 선택할 문제인 것 같긴 한데, 제 입장에선 대학교에 입학해서 경험을 한 번 해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분명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 시간에 돈을 벌고 경력을 쌓겠다고 하는 친구들은 그길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공부를 하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요즘엔 대학에 안 가고 특수기술(용접이나 포클레인 등)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일단 본인이 대학에 가도 되겠다싶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기술을 배우는 등 여러 가지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업에 도전해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하나의 길이란 사실이다. 김필주·김혜진·엄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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