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탈북루트 그 현장을 가다/<3>조용한 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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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통일 교두보로… 신의주·단동 ‘무역혁명’ 꿈꾼다 ▲ 대중국 무역의 교두보로 부각되고 있는 북한 신의주는 중국 단동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마주서 있다. 신의주는 활발한 국경 무역을 통해 평양에 이어 두번째 경제력을 자랑하는 도시다. 한국전쟁중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철교 건너편에 위치한 놀이공원 앞으로 북한 경제개혁의 첨병으로 손꼽히는 신의주 특별행정구. 북한식 시장경제 도입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기도 했던 이 곳을 필두로 북한에 조용한 혁명의 미풍이 불고 있다. 북·중 국경인 두만강에 위치한 삼합·회령, 도문·온성세관과 압록강쪽의 지반·만포, 장백현·혜산세관, 단동·신의주 세관 등에서는 북한으로의 생필품 반입 등 물류교역이 활발히 진행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더이상 폐쇄국가로서의 모습만을 고집하지 않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왼-신의주를 휘감고 흐르는 압록강변에는 군함을 비롯해 어선, 화물선 등 수백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화물선 옆에 정박해 있는 바지선 위에서 북한 주민들이 무연탄을 반죽해 연탄을 찍고 있다. ▲오-압록강 철교 교각 아래에서 쪽배를 탄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 올리고 중국 단동과 인접한 신의주는 개성과 함께 경제통일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단동에 진출한 남북한 무역전문가가 공히 각각 1천500여명씩 3천여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는데다 북한 사람들도 많이 거주하는 등 교포만 1만여명이 넘어 북한의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다. 이 곳은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자의 70~80%가 거쳐가는 등 단순한 중국의 항만이 아니라 한국과 북한을 잇는 중요한 중개항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북측에는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육성하려는 신의주와 함께 중요한 물류거점이고, 남측에는 경제교류 확대 등을 통한 통일의 전초기지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는 북한 신의주와 육로로 하루에 두번씩 버스가 왕래하고 있고, 일주일에 세번 기차를 운행하는 등 그 규모는 아직까지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을 거쳐 중국으로 연결되는 대륙간철도 등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온전히 추진하게 된다면 사실상 신의주는 북한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무역 대동맥이자 돈이 돌도록 하는 ‘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몇해 전 북한의 신의주 특구 개발에 기대를 걸고 진출을 고려했던 국내외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이 정치상황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미루고 있어 아직은 미완의 대기다. 이 때문에 단동을 비롯 두만·압록강을 따라 조성된 세관도시에는 탈북자들이 먹을 것과 일자리 등을 찾아 몰려들고 있다. ▲중국 단동과 철조망 하나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의주 비단섬에서 농부들이 모판작업을 하고 있다. 한때는 거리에서 부딪히는 사람이 탈북자였을 정도였으나 북중 당국의 단속강화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단동에 있는 남한 기업인들이 신의주의 북한 기업인들에게 핸드폰을 건네 준 뒤 수시로 접촉할 정도로 경제활동이 상당부분 보장되고 있다. 단동에 거주하는 북한 기업인들은 대부분은 한국이나 중국에서 생활필수품을 사들여 북한으로 들어가 높은 가격으로 되팔아 이윤을 남기고, 북한산 송이버섯과 바지락 등 임산물이나 수산물을 구입해 다시 인천이나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 남북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북한과 중국을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화교출신 북한사람들이나 일부 조선족들이 소규모 무역상을 맡고 있다. 북한주민들중 공식적으로 도강증을 발급받아 단동 등에서 일정기간 체류하며 경제활동을 하다 북으로 되돌아가는 사례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같은 북·중간의 경제교류는 일정 부분 북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함에 따라 기아 등을 우려해 탈북을 감행했던 1990년대와는 사뭇 다르게 오히려 경제적 활동을 통한 부의 축적을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관측을 설득력 있게 하고 있다. 단동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B사장(45)은 “북핵사태가 터졌을 때 북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철수, 교역도 거의 없어 마치 단동시내 상권이 죽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며 “탈북자들이 단동지역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지만 중국 당국의 단속으로 발붙일 곳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도강증 등을 받아 쉽게 나올 수 있어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압록강변 배 수리공장 주변 선착장에 수리를 기다리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단동 외곽 호산장성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한 병사가 봄 햇살 아래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 본보 취재팀 단동서 北병사와 접촉 시도 감시망 피해 보트타고 北초소로 “친구하자” 접근했지만 묵묵부답 “작은 개울 하나만 건너면 북한 땅인데, 우린 언제 서로의 땅을 맘편하게 밟아볼 수 있을까” 경제개혁의 교두보인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 단동시 인근의 호산장성 옆 ‘일보과마을’. ‘일보과’는 일보 앞으로 가면 북한 땅, 일보 후퇴하면 중국 땅이라는 뜻이다. 북·중간의 경계를 구분하는 철책도 없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 곳에서는 불과 2∼3년전만 해도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한에서 온 관광객이 초소에 나와있는 북한병사에게 담배 등 일용잡화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폭 2m 정도의 작은 개울이 대신했던 국경 너머로 버드나무나 물푸레나무 등의 군락이 이루고 압록강 퇴적물이 쌓여 비옥해 보이는 북한 ‘우적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중 당국이 이 같은 장면이 UCC 동영상 등으로 인터넷에 유포되자 감시용 CCTV를 설치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면서 북한경비병이 더이상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발길을 되돌리려는 본보 탐사보도팀에게 한 중국인이 다가와 “작은 보트를 타고 5분정도 들어가면 한적한 초소에 근무하는 북한병사들을 만날 수 있다”며 “북한 경비병들에게 줄 담배 등을 구입한 뒤 뱃삯을 지불한다면 소위 ‘접선’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유도했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이용해 한국 관광객에서 담배 등을 팔고 배까지 타도록 이끄는 중국인들의 속내에 혀를 내둘렀다. 취재팀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용감(?)하게 폭 2m 정도의 작은 개울을 따라 북·중국이 설치한 CCTV 등을 피해 배를 타고 버드나무와 물푸레나무쯤으로 보이는 군락을 지나 북한 초소로 다가갔다. 보트를 몰던 중국인 사공은 연방 사진기자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자 ‘북한경비병을 보게 되더라도 사진을 찍지 말고 대화만 하라’고 주의를 줬다. 또 모방송사에서 온 기자들이 몰래카메라를 찍으려다 말썽이 되기도 했고, 보트에서 사진을 찍으려던 관광객이 북쪽에서 날아온 돌팔매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는 안내자의 부연설명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초소 인근에 배를 정박시킨 중국인 사공이 나무숲에 가려진 북한 초소 쪽을 보고 ‘친구, 친구’하며 소리를 질렀으나 초소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이대로 되돌아나올 수 없어 배를 한번 더 선회해 접근했으나 역시 북한 경비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북한 병사와의 대화 시도는 결국 무산돼 남과 북의 소통이 진행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일보 2007-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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