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탈북루트 그 현장을 가다/<4>탈북브로커 필요악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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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 절박함 악용… 돈벌이 전락? ▲ 압록강을 사이로 중국 집안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 자강도 만포시는 1980년대 말까지 집안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친척이 거주하는 만포를 찾아가 도움을 받았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 이후에 대부분의 국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역전돼 식량을 찾아 탈북을 감행하는 북한 주민들이 거쳐가는 탈북루트로 부상, 순찰경계가 대폭 강화된 지역이다. 최근들어 집안시와의 국경무역으로 생필품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소규모 시장도 열리고 있다. 탈북자 감시를 위해 만든 민둥산 아래 자리잡은 만포시와 중국 집안을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위를 목재와 석탄을 실은 북한 화물열차가 느린 속도로 건너가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압록강변에서 주부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삽과 괭이를 든 주민들이 만포시 체육관 앞을 지나고 있다. ▲물놀이를 하던 꼬마아이가 취재진의 카메라를 보자 고함을 지르고 있다. 북한을 이탈한 탈북자의 남쪽행을 도와주던 초기의 탈북도우미 대신 절박한 사정을 이용, 대가를 요구하는 탈북브로커가 그 역할을 대체하면서 탈북자의 제3국행이 인도주의가 아닌 ‘돈’ 문제로 전락했다는지적이다. 그러나 탈북브로커들이 한국정부 대신 탈북자의 한국행을 위해 중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등 제3국을 거치는 탈북루트를 개설하고 이슈화해 세계여론이 탈북자인권에 주목,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엇갈린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압록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과 폐선박 위에 누워있는 꼬마의 모습이 여유롭다. ◇탈북자 구하기 혹은 영리추구(?) 북한인권단체와 탈북자브로커 등에 따르면 탈북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급증하던 지난 1990년말부터 2000년 초기엔 중국과 태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인권단체나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탈북도우미’를 자청, 탈북자의 태국행을 위한 다양한 루트를 개발해 안전하게 한국입국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북한인권NGO나 일부 선교사들은 중국의 탈북자에 대한 단속처벌이 강화된데다 탈북자에 대한 재정지원 등의 활동이 한계에 봉착, 상당부분 탈북자 현장지원을 철수하거나 주춤해 졌다. 이런 가운데 탈북도우미를 대신해 탈북자의 한국행을 도와주는 탈북자 출신이나 시민단체 관계자 등 소위 ‘탈북브로커’ 100여명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북브로커들은 북한주민이나 중국내 탈북자들을 자신들이 개발한 다양한 탈북루트를 통해 한국행을 의미하는 태국땅까지 중국과 라오스 등의 공안당국의 눈을 피해 이동시켜 주는 대신 일정부분의 비용, 즉 ‘돈’을 요구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탈북후 입국과정까지의 위험부담과 기본 비용 등을 고려해 탈북자 1인당 200만∼500만원선 정도가 요구되는 반면 국군포로 등은 예외적으로 수천만원이 넘게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탈북브로커의 대가요구의 부당성을 거론하며 ‘악덕 사채업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탈북자브로커들은 탈북자 한명을 남한으로 데려오는데 소요되는 비용 이외에 일정부분의 수수료가 붙는 것은 당연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탈북브로커들이 북한 탈출후 중국과 라오스·미얀마·태국 등 제3국을 가로지르는 탈북루트의 주요 거점마다 점조직 형태로 탈북자들을 지원해 주는 이들이 부담해야할 위험 등을 고려해야한다는 것. 또 남한입국에 성공한 탈북자들이 북한과 중국 등지에 남아있는 탈북자의 한국행 지원을 위한 비용을 내놓는 것은 일종의 ‘품앗이’로, 탈북자지원단체 등의 재정이 열악한 만큼 송환위기에 직면한 다른 탈북자들을 구하기 위해 사정이 나은 이들이 지원금 명목으로 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반론에도 불구, 탈북자 남한행에 대한 비용의 적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비용의 대부분이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정부에서 지급받는 정착지원금에서 지불하기 때문에 이들이 낯선 환경에 처음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또하나의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탈북브로커들이 특정인을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뒤 대금만 받고 잠적하거나 탈북자를 라오스나 미얀마 등 제3국에 입국시킨 뒤 방치하거나 공안당국에 잡혔을 때 후속조치를 취해 주지 않아 북송되기도 하는 등 폐해도 만만치 않다. ◇정부대신 탈북루트 개척 북한인권NGO 등의 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일부 탈북브로커들은 북한과 중국 곳곳에 모집·연락·운반책등의 점조직화된 탈북네트워크망를 구축, 탈북자 기획입국을 수차례 시도하면서 탈북루트를 개설해 왔다. 하지만 중국공안의 탈북자 탄압이 강화되면서 외교분쟁을 우려한 한국정부의 난색으로 중국 등 탈북루트가 가로질러가는 국가의 한국 대사관과 재외공관 등 그 어디에서 탈북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 남한행은 더욱 어려워져만 갔다. 탈북브로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쯤인 지난 2003년 3월 중국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탈북자 25명이 중국공안의 감시망을 피해 무더기로 뛰어들어가 망명을 신청, 세계 언론이 주목하면서 결국 남한행에 성공했다. 탈북자의 스페인대사관 진입사건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가슴에 한국행 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선례였다. 이 때부터 중국 주재 각국의 재외공간들이 탈북자들 진입을 허용, 한국으로 보내주면서 남한행의 절대장벽으로 꼽혔던 ‘죽의 장막’이 허물어졌다. 반면 중국당국의 한국대사관을 비롯 각국 재외공관에 대한 순찰경계와 북한의 탈북자 색출이 대폭 강화되면서 중국 통화에서만 탈북자가 400여명 등 모두 1천여명이 넘게 붙잡혀 북송되는 비극이 초래되기도 했다. 또 베트남에서도 비행기편으로 대규모 탈북자 일행을 한국으로 보냈다가 탈북루트가 완전 봉쇄돼 다른 국가로 우회해야만 한다. 특히 라오스에서 최근 갇혔다 풀려난 탈북청소년 문제도 일본 인권단체가 공개했지만 탈북브로커들이 중국과 캄보디아 등 다른 국가의 대사관에 비해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이 탈북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자 기획적으로 언론에 공개, 받아들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석사현 장로는 “탈북브로커가 인도적 차원인지 아니면 돈벌이 목적인지 그 의도가 중요한데, 탈북자 한명 데려오는데 필요한 통상 200만원의 비용을 크게 웃도는 300만∼500만원 이상 받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일부 악덕브로커 때문에 소명을 갖고 활동하는 탈북도우미나 지원단체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조선족 출신 김철형 목사 탈북자들 인간답게 살길 모색해 주는게 가장 중요 “탈북자가 남·북한 어디에서 살건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안문 사태이후 중국 공산당을 탈퇴한 조선족 출신의 김철형 목사(가명·47)는 “탈북자들이 행복한가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은 채 이해관계가 상충된 집단간의 논리속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국정부가 인도주의보다는 정책적 차원에서 탈북자 문제를 이용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결과적으로 노리개 취급받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꼬집었다. 북한에 중국무역대표부로 3년간 일하기도 한 김 목사는 “탈북자 이슈는 한·북·중 3국의 정치·경제·안보상 위협요인으로, 중국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인권탄압 비난을 두려워하는 반면 북한은 자국민의 체제 이탈로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외교문제로 비화될 아주 민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많은 탈북자들을 접했다는 김 목사는 “과반수 이상이 한국을 욕하고 다시 중국이나 북한에 가고 싶어하는 등 불만을 듣는다”며 “일부 아이들은 ‘한국에 오니까 2번째 감옥에 온것 같다’고까지 말하며 한국사회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서 신학공부를 마친 김 목사는 “탈북 초기에는 정착이나 남한행을 도와줬으나 한국사회에서 탈북자의 생활상을 고려할 때 적응 어려움 등을 이유로 국경을 넘은 북한 주민들에게 다시한번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할 정도”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마지막으로 “연길에만 한국선교사만 1천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이 1년에 1명씩만 남한으로 데리고 간다해도 무려 1천명에 달한다”며 “한국측의 무분별한 막대한 탈북지원금 때문에 오히려 탈북지원의 폐해가 드러나지 않도록 원칙있는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기일보 200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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