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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탈북루트 그 현장을 가다/<5>중국에서 라오스로
REPUBLIC OF KOREA 관리자 1760 2007-06-29 17:46:04
국경넘는 트럭에 숨어 죽을 고비넘는 처절함



▲ 탈북자들의 중간기착지인 중국 곤명에서 트럭으로 15시간을 이동해 경홍에 도착, 다시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를 피해 6시간을 달리면 중국 대륙의 끝인 모한에 도착한다.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한세관은 트럭에 몸을 숨긴 채 숨가쁘게 달려온 탈북자들이 라오스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국경관문이다. 취재진이 모한에 도착한 오후 3시40분께 라오스로 들어갔던 트럭들이 다시 중국으로 넘어오기 위해 국경수비대의 검문을 받고 있다.

▲ 탈북자들의 중간기착지인 곤명시 기차역 전경. 탈북자들은 심양이나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에 내려 중국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한다.
굳게 닫힌 중국 모한 국경검문소를 지나 중국 땅을 한발짝만 벗어날 수 있다면 ‘북송’되지 않는 라오스 보텐국경을 넘을 수 있을텐데….” 미얀마와 라오스 등을 거쳐 태국행을 향한 탈북자의 중간집결지인 중국 곤명에서 15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지난 2일 새벽 3시30분께 칡흑같은 어둠을 뚫고 도착한 중국 경홍시. 쪽잠을 청한 본보 탐사보도팀은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이른 아침부터 라오스와 미얀마를 거쳐 태국까지 걸쳐 있는 메콩강을 이용, 화물선이 오가는 국제무역항인 경홍세관으로 달려갔다. 탈북자들에겐 이 곳을 오가는 화물선에 숨어 타는 것이 공안의 검문을 피해 라오스나 태국 등의 인도차이나로 밀항할 수 있는 최적의 탈북루트중 하나다.

하지만 건기철이어서 메콩강 수위가 크게 낮아져 화물선이 운행하지 않는데다 공안의 처벌을 우려해 탈북자를 싣고 운행하는 보트를 거의 찾을 수 없어 우기이전까지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탈북루트를 뒤쫓아 온 또다른 탈북자가 세관과 인접한 경홍대교 위에서 뒤늦게 중국땅을 벗어날 해상통로가 봉쇄된 사실을 알고 폐를 쥐어짜며 통곡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마음이 급해진 취재진은 라오스 등 제3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인 국경도시 모한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모한세관과 라오스의 보텐국경 사이 1㎞ 정도의 중간지대만 넘으면 바로 라오스 북부도시 르왕남타로 들어갈 수 있다.
보텐국경만 넘으면 북송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사실상 남한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이 때문에 곤명∼경홍∼모한을 잇는 코스는 중국 공안의 검문이 가장 살벌해 붙잡힌 탈북자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하다.
취재팀은 차량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2차선 도로를 3시간 남짓 가 탈북자의 마지막 기착지인 멍라에 도착하기까지 검문소 등이 눈에 띄었지만 중국 최대명절인 노동절 휴가기간 탓인지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의 단속을 받지 않았다.
국경을 넘는 트럭에 숨어 탄 채 함께 동행한 탈북자들도 언제 단속에 적발될 지 몰라 노심초사한 끝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듯 했다.
쉴 틈도 없이 모한을 향한 차량속은 찌는듯한 더위로 머리 끝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과 콧속까지 파고드는 흙먼지와 뒤범벅되면서 짜증이 절로 배어나왔다.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새단장한 국경도시 모한에 첫발을 디딘 이날 오후 3시40분 국경검문소 앞엔 라오스행 트럭들이 물건을 가득싣고 순서에 따라 세관절차를 밝고 있었다. 반면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려는 외국인 등 20여명은 입국절차를 밟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중국전역이 휴가를 즐기는 탓 때문인지 줄을 선 상가의 주인들은 바둑을 두거나 담소를 나누는 등 한가로워 보였다.

▲ 국경문이 닫히는 오후 5시 모한세관을 지키는 국경경비대가 ‘오성홍기’ 하강식을 거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경수비대의 감시망을 피해 인근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탈북자들에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고 건너야만 하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다.
취재진은 중국공안의 단속이 느슨해지는 노동절기간을 노리고 국경을 넘으려는 탈북자가 이곳 어디에 숨어있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찾을 순 없었다.
아마도 중국 국경수비대의 검문을 피하지 못할 것이 뻔한 이상 검문소를 우회해 도보로 라오스 국경을 넘고 있을 것이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이날 오후 5시 중국 국경수비대는 국경검문소에 우뚝 솟아있는 국기게양대에서 중국국기인 ‘오성홍기’ 하강식을 절도있게 가진 뒤 국경문을 닫았다.
간발차이로 검문소에 도착한 차량들은 라오스로 넘어가지 못하자 ‘클랙슨’으로 아쉬움을 표하며 돌아갔다.
두만·압록강 정반대에 위치한 광활한 중국 땅의 끝, 모한은 끝내 취재진의 뒤를 쫓아온 탈북자가 국경선을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여인내의 자상한 마음을 닮은 하늘은 모한의 한 야산을 통해 라오스 보텐국경선을 넘고 있는 탈북자의 모습이 행여 눈에 띌 것을 우려, 비를 내려 감시의 눈을 가진 수비대들을 건물내에서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었다.
취재진은 돌아오는 길에서 차량이 빗물에 미끄러져 도로 끝자락에 걸치면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가슴을 쓸어내기도 하는 등 14여시간 가까운 모한 국경여행을 마쳤다.
경홍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김혜진 사장(가명·36)은 “경홍공안이 붙잡은 탈북자 조사를 위한 통역으로 불려가 생사를 오가는 사연을 듣게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죽을 고비를 넘어 여기까지 온 탈북자들이 북송 등의 위기에 처해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인터뷰/ 탈북후 9년간 숨어지낸 장한나씨

지옥과 같았던 중국서의 생활 끔찍 한국가서 어머니병 고치고 싶어요

“간경화 때문에 혼자 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가 하루빨리 한국에 가서 첨단 의료기술로 치료받아 남은 생이나마 편히 살 수 있는 날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 도시에 탈북 후 9년여 동안 숨어살고 있는 장한나씨(가명·23)는 “어머니가 북해와 이통 등 중국 곳곳을 떠돌아 다니며 몹쓸 병만 얻었다”며 “중국 의료수준으로 치료할 수 없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라고 하소연했다.
장씨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 1999년 북한을 휩쓸고 간 기아공포에 시달리다 탈북, 연길에서 공주령의 의처증 증세의 한 중국인에게 팔려나가 매일 얻어 맞다가 3개월만에 탈출했다”며 “중국서 새로운 삶을시작하려던 우리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또 “중국의 변두리에서 중국공안 등의 감시를 피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남한이나 제3국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루트를 몰라 이제껏 숨어 살 수 밖에 없었다”며 “중국인과 어머니가 재혼한 뒤 호적에도 올리지 못해 사실상 유령인으로 산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해 묻자 “우리 모녀의 탈출한 사실이 알려지면 북에 남아있는 친인척 등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을 우려해 사망처리된 상태”라며 “이모가 아사함에 따라 살기위해선 가족들의 안위 등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장씨는 “태국에 가더라도 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탈북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게 무척 어렵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걱정”이라며 “말도 안통해 육체적으로 더 힘들겠지만 기회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치고 싶다”고 피력했다.

경기일보 2007-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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