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서 송이 캐다 피멍든 주민 모습 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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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7-10-10 06:07 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의 ‘7년전 회상’ 찌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지던 2000년 8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함경북도 어랑군과 화성군 명천군 화대군에 걸쳐 있는 칠보산의 험준한 능선을 일주일째 헤매며 송이를 캐고 있었다. 쌀과 물, 냄비 등이 든 배낭을 메고 지팡이로 풀숲을 헤치며 하루 10시간 이상 산을 타야 했다. 저녁에는 계곡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새우잠을 잤다. 오전 6시면 일어나 다시 산을 탔다. 송이는 이슬이 사라지기 전인 이른 아침에 가장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계곡에 몰려 온 사람들은 흡사 대재난을 당한 피난민 같았다. 이들은 계곡 근처에서 웅크리고 자다가 아침이면 주변 산으로 우르르 흩어졌다. 절경의 칠보산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지만 땅만 살피며 걷는 나의 눈에 경치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산세가 기묘한 칠보산은 산봉우리에서 계곡이 빤히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그곳까지 내려가려면 2시간 이상 초긴장 상태로 움직여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아찔한 벼랑으로 떨어진다. 동행한 30대 중반의 농장원 최모 씨는 칠보산 자락에서 나서 자란, 마을에선 알아주는 ‘송이꾼’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설명해 줬다. “저긴 당에서 관리하는 9호 지역이오. 사실 송이가 제일 잘 나는 곳인데 그곳 송이는 몽땅 당에서 가져가지. 들어갔다 경비원들에게 들키면 감방 가야 돼요.” “저긴 장군님 별장 구역이니 들어갔다간 총에 맞아 귀신도 모르게 죽을 수 있어요.” 그 외에도 해군 기지니 연락소 기지니 금지 구역이 너무 많았다. 한번은 그가 맞은편 아스라한 벼랑을 가리키며 “칠보산에서 돌버섯이 제일 많은 곳인데 사람이 제일 많이 죽는 곳”이라며 “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데룽데룽 매달려 버섯을 따는데 밧줄이 끊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찬찬히 바라보니 정말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저 위험한 곳에 왜 매달려 있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그는 “돌버섯 한 킬로(1kg)가 얼만지 알아요?”라며 피식 웃었다. “해마다 칠보산에 버섯 캐러 왔다가 죽는 사람이 많아요.” 송이 철이면 마을마다 노동당 39호실 소속인 ‘충성의 외화벌이 관리소’(일명 5호 관리소) 요원들이 들어와 송이를 수매한다. 1등급 송이 1kg에 쌀 10kg을 내 준다. 요즘 북한에서 쌀 10kg은 북한 돈 1만5000원 안팎. 암시장 환율로 따지면 5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 들어와 팔리는 1등급 북한산 송이 1kg은 100달러 정도다. 독점 수매해 외국에 수출하는 송이는 노동당의 주요 수입원의 하나다. 해마다 8, 9월 송이 철이면 직장마다 사람들을 뽑아 ‘충성의 외화벌이조’라는 이름으로 할당량을 부여해 송이 산지에 파견한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자기 돈으로 사서라도 메워야 한다. 나도 여기에 차출돼 칠보산에 갔다. 북한에서는 송이를 밀수하면 징역형이다. 사안이 엄중한 경우엔 사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산마다 밀수꾼들은 어김없이 있다. 이들은 노동당보다 2, 3배 비싸게 송이를 사서 중국으로 밀수출한다. 밀수꾼이나 송이를 캐는 사람이나 목숨을 내걸긴 마찬가지인 셈이다. 1주일간의 원정을 마치고 농장원 최 씨 집에 돌아왔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나는 그에게서 송이를 수매했음을 증명하는 전표를 사야 했다. 최 씨 가족은 망돌(맷돌)에 간 옥수수 죽이 주식이었다. 옷이 없어 아래는 벌거숭이인 채 뛰노는 여섯 살, 네 살 난 두 아들은 머리만 크고 배가 나와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연상시켰다. 최 씨는 이번에 쌀 70kg을 벌었다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 정도 속도면 노동당에 할당량을 바치고도 송이 철에 쌀 200kg은 벌 수 있고 이를 옥수수로 바꾸면 400kg 정도는 될 터이니 배급이 없어도 또 한 해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그래도 난 옆에 칠보산이 있으니 다행이지. 요즘엔 화전들 일구느라 산불이 너무 많이 나서 송이를 캘 수 있는 산이 해마다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데….” 북한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칠보산 송이 4t을 선물로 받아 왔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최 씨가 떠올랐다. 이 송이는 사회지도층 3800여 명에게 1kg씩 보내질 예정이다. 2000년 9월 추석 때도 김 위원장이 남한에 칠보산 송이 3t을 선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그해 6월 1차 정상회담 후 북한 특사가 서울을 방문하면서 선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때 내가 칠보산에서 뒹굴어 온몸이 멍든 채로 밤마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을 짜내며 캤던 그 송이도 남쪽의 어느 인사가 먹었을지 모를 일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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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남으로 수출한 생산품이 요즘은 상당히 많다.그렇다면 그걸 단지
경재적 손익에의해 사서 소비한 남쪽의 국민들 역시 비난받아 마땅한가?
송이버섯을 고생스럽게 재배하고 캣던북의 상황과 북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화살이 돌아가야지 그걸 받은 노태통령과 김전대통령에게 화살이 돌아가는것은 또 무슨논리인가.
송이버섯에 담긴 여러 의미야 만들면 얼마든지 만들수있다.
지금은 차라리 외교상이 단순한 선물 그이상도 아니라는것이 차라리
김정일이 바라는 노림수를(남남갈등따위) 깨뜨릴수있진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