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년 동안 무산군을 먹여 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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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 2008-01-28 국가 보위부가 국군포로, 그 가족들을 탈출시킨 협의로 무산군 주민 체포, 1970년대 영화배우 우인희 공개총살 사건 방불케 해 북한내부소식통에 의하면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국군포로와 국군포로가족들의 탈북을 방조한 김은희(가명)씨의 체포를 계기로 함경북도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다. 김씨는 여러 해 동안 국군포로와 국군포로 가족들을 탈북 시키는 일을 해왔다. 그녀가 이일을 할 수 있은 것은 무산군을 비롯하여 도당이나 보위부, 보안서, 국경경비대를 비롯하여 간부들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씀씀이가 큰 김씨에 대한 주변의 신고가 잦아지자 군보안서에서는 김씨를 구금하고 여론을 무마시킨 다음 내보내려 했지만 다음날 국가보위부에서 직접 내려와 그녀를 압송해갔다. 국군포로의 탈북 방조가 문제가 된 것이다. 평양으로 압송된 김씨는 거의 1년간 예심을 받았다. 무산군의 높은 간부들을 다 끼고 있던 김씨는 법에서 절대 자기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더는 소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 혼자 죽을 수 없다”면서 관련자들을 다 불어 버렸다. 김씨는 “내가 몇 년 동안 무산군을 먹여 살렸다. 나한테서 돈을 받아먹지 않은 간부들 나와 보라 그래. 그런데도 나를 죽게 내버려두느냐.”면서 “그래도 나를 꺼내 주려니 하고 기다렸는데 내가 죽는 판에 혼자 죽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1970대말 김정일의 특별지시에 의하여 영화배우 우인희 공개총살 사건을 방불케 한다. 우인희 공개총살 사건은 돈 많은 재일 교포 주정기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그와 정사를 가진 후 숨진 사건이 발단이 됐다. 당시 이들이 발견되었을 때 주정기는 벌거벗은 채로 가스에 중독돼 완전히 숨진 상태였고 우인희는 목숨이 겨우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김정일로서는 죽은 주정기의 부친이 북한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이 사건을 단순한 불륜사건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일단 북한 당국은 우인희를 살려낸 후 심문을 시작했는데 우인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등 심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만한 고위층에 나를 안 건드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식이었다. 김씨도 연관된 간부들만 수십 명에 달하며 무산군만 아니라 함경북도와 중앙에 까지 있다고 한다. 또한 당을 비롯하여 법망까지 각 계층 간부들이 연관되어 결국 이들도 국군포로 탈북 방조라는 어마어마한 죄를 면할 수 없게 됐다. 한편 무산군의 주민들은 “이번엔 배부른 간부들이 걸려 속이 시원하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라며 이제 중앙당비사회주의 검열이 시작되면 장사도 못하고 살기가 더욱 힘들어 질 거라며 수군거리고 있다. (중국 훈춘에서)통신원 김정희 이금룡 기자 krlee2006@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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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이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