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으로 북한 사회 바꾸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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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8-04-08 01:42 그는 화가다. 주기적으로 전시를 열어 작품을 세상에 보여준다. 그러나 얼굴과 이름은 가린다. 본명을 숨긴 채 선무(線無·36)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얼굴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왜 그러느냐는 무심한 질문에 덤덤하던 그가 갑자기 흥분한다. “나 혼자 살겠다고 그렇게 해요? 저쪽에 부모 형제 다 두고 왔는데.” 그는 탈북자다. 북한에선 미대생이었다. 선전화 그리는데는 도가 텄다. 목숨걸고 두만강을 건넌 게 1998년 일이다. 중국서 3년을, 태국과 라오스서 6개월여를 전전했다. “나라 없는 설움이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다. 고생? 처참했지만, 뭐 서울대 나온 셈 친다. 많이 배웠다.” 남한에 와서도 그림을 그린다. 홍익대 대학원 2학년이다. “남북의 그림? 무슨 생각을 갖고 그리느냐의 차이다. 여기는 자기 생각을, 거기는 대중이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선동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북한 선전화 형식을 빼닮았다. 똑같이 차려 입은 소녀들이 춤춘다. 입을 한껏 벌리고 웃는 게 그로테스크하다. 밑에는 붉은색으로 ‘우리는 행복동이죠’라고 적었다. 공장·농촌·군부대 등지에 이념 선전 공연을 다니는 어린이, ‘행복동이’다. 여기 ‘나’는 없다. 또다른 행복동이 그림에는 화려한 소녀 뒤에 깡통 들고 구걸하는 어린이 그림자를 그렸다. 현상의 이면이다. 그는 또한 탈북 당시 두살배기였던 조카 초상화를 공들여 매만진다. 어린 조카가 인공기 띠가 둘러진 보온병을 열려고 애쓰는 장면이다. 삼촌은 조카가 살고 있는 꽉 닫힌 세상을 그림으로라도 열어 주고 싶어한다. 그런 그에게 예술은 “사람들을 상상속에헤매게하는 것,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소중한 거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 미래의 암시 비슷한 것”이다. 그게 바로 “남조선에 와서 느낀 예술”이다. 군사분계선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선무’라는 가명을 쓰는 그다. 자신의 그림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 “내가 세상에 북의 현실을 많이 알려서 저 사회에 변화가 온다면 그곳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지난해 선무와 함께 2인전을 열었던 사진가 노순택은 “선무는 남북한 양쪽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북한을 주제로 작업하는 탈북 작가라는 점에서 귀하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도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을 전시하는 등 조금씩 개방중인 북한 사회에 많은 예술가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적 화풍으로 북한 체제를 비트는 선무의 작품은 얼핏 중국 현대 미술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의 그림은 서울 관훈동 그라우갤러리 ‘이상한 나라의 소품’전에서 14일까지 볼 수 있다. 5월 28일부터는 서울 충정로 대안공간 충정각서 첫 개인전 ‘우린 행복합니다!’를 연다. 글·사진=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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