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숨진 어느 탈북 여성의 슬픈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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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2008-05-10 12:02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태국, 그리고 태평양 건너 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 미국에 도착한 한 탈북여성이 암 투병 중 결국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남긴 채 하늘나라로 갔다. 30대 중반 가정주부로 미국에서의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한 30대 중반의 탈북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을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했다. "너무 서러웠습니다…" 2년 전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태국, 그리고 태평양 건너 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 미국에 도착했는데. 이제 병도 완쾌하고 새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는데. 사랑스런 아내는 결국 도착 한 달도 채 못 돼 눈을 감았다. 아내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흐느끼는 남편 신모세(가명) 씨!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다. "나의 아내는 그저 순진한 여성이예요. 가정 주부로서 그저 소박한, 큰 포부가 있거나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고 남편 신씨는 말했다. 관 안에 누운 엄마의 얼굴을 하염 없이 바라보며 손을 놓지 않는 아들 유민이.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이 11살 소년에게 엄마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이다. 아들 유민은 "엄마가 (임종 전) 제게 아버지말 잘 듣고 공부 잘하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도 사랑한다고 엄마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정신을 다시 잃었다" 고 말했다. 30대 중반의 한창 나이였던 이성애씨. 그녀는 지난 2006년 여름 태국에 도착한 직후 자신이 폐암에 걸렸음을 의료진으로부터 통보 받았다. 국제 난민단체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병은 호전되지 않았고, 간호해 주던 남편 신씨 마저 태국 경찰에 체포돼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돼야 했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미국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 신씨는 "미국이라는게 법치 국가구 자유가 한국보다 더 보장된다는 나라라고 믿고 있어요. 자유를 그리며 북한에서 억눌려 살던 것 다 지워버리고, 진짜 자유세상을 찾아가자. 그런 소망 하나 뿐이었다"고 말했다. 자유를 위한 갈망. 그리고 아들만은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는 소망 때문에 아내 이성애 씨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남편 신씨는 "미국에 가서, 자유 세상에 가서 열심히 살고 아들이 성공하는 것 보자. 그래서 미국행을 택해서 왔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태국에 입국한 지 1년 반이 지나도 미국과 태국 정부는 뚜렷한 응답도, 언제 갈 수 있다는 확신의 말도 주지 않았다. 남편 신씨는 미국의 소리 방송에 전화까지 시도하며 아내를 살려달라고. 아내를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암은 척추 등 다른 곳으로 번져갔다.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되면서 아내를 간호해 줄 수 없었던 남편 신씨.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태국에 와서 믿은 예수를 의지해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남편 신 씨는 "진짜 하루에도 오십번 백 번씩 기도했어요. 우리 부인좀 살려달라구. 금식기도까지 했다" 고 설명했다. 결국, 태국에 도착한 지 1년 10여개월 만인 지난 4월 14일, 신모세 씨 부부와 아들 유민 군은 기적적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신씨와 아내 이성애 씨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뉴욕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하룻만에 다시 병원 구급차에 실려 버지니아의 주도 리치몬드까지 내려올 때도 아내 이성애 씨는 반드시 일어서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리치몬드 MCV 병원에서 만난 한인 수간호사 유신혜씨. 목사의 사모이기도 한 유씨는 큰언니 역할을 하며 2주 동안 지극 정성으로 이성애 씨를 간호했다. 유신혜씨는 "미국 음식은 전혀 느끼해서 못 잡수시는데, 제가 갈 때 마다 오늘 저녁에는 만두국을 해 오겠다고 말하면 아침 점심을 먹지 않고 기다리다가 제가 갖고 오면 먹으려고 하는데, 먹으면 속이 안 좋으니까 계속 토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생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탈북자 이성애 씨. 결국 숨지기 이틀 전 그녀는 냉혹한 현실을 담담히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유 사모에게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확신한다. 맘이 정말 편안하다. 내 걱정하지 말라. 나는 준비 됐으니까 괜찮다. 남편과 아들이 걱정된다" 고 말했다. 임종을 앞둔 몇 시간 전. 이 씨는 잠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곁에서 하염 없이 울고 있는 남편을 위로했다. 남편 신 씨는 "자신이 가슴이 아파서 계속 우니까 울지 말라고 천국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왜 우냐고… 천국에서 함께 다시 만나 영원히 살자고…" 아내 이성애씨는 그렇게 미소를 머금은 채 30대 중반의 한 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북한에서부터 험란한 길을 걸어왔던 탈북자 이성애 씨! 그러나 그녀가 떠나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리치몬드의MCV 병원은 진료비 전액을 무료로 해줬고 지역 한인교회 신도들이 지극 정성으로 장례를 도왔으며, 미국 가톨릭난민단체에서 무료 장례식장을 주선해 줬다. 이 씨 부부를 뒤에서 조용히 도왔고, 장례예배를 직접 집도한 엠마오감리교회의 어윤호 담임목사는 숨진 이 씨가 가정에 디딤돌을 놓고 평안하게 잠들었다고 말했다.. 어윤호 목사는 "태국에서도 돌아 가실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돌아가시므로 주변에 많은 돕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시게 됐고.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구서 돌아가시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가정을 위한 일종의 희생양이 되서 좋은 디딤돌로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는 그런 일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까지 가정을 도와서 여기까지 오게 했었던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을 다 잘 감당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애 씨의 시신은 9일 화장된 뒤 리치몬드시의 한 납골 공원에 안치되며, 11일 엠마오감리교회에서 추모예배가 열릴 예정이다. ysa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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