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생존 현장- ‘땅굴’의 내부를 가다3 |
---|
자유북한방송 2008-05-31 ["300만 주검을 넘어 탈북한 우리를 기다린 것은 한 줌 햇살조차 들어오지 않는 흙구덩이 아래 지하였다!" 강제북송 피해 산간오지 지하로 숨어든 탈북자들의 처절한 현장 보고서 - 제3부] 유상준(44)] 함북 청진 출신으로 98년 북한 전역을 덮친 극심한 식량난 속에 아내와 차남 故 유철웅 군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으로 탈북한 그는 두리하나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했고, 뒤이어 2001년 8월 중국에 홀로 남겨졌던 장남 故 유철민 군을 데려오기 위해 국내 한 NGO단체에 의뢰했으나 철민군마저 중국-몽골 국경지대 사막에서 잃었다. 사막의 모래 아래 묻혀있던 아들의 시신을 몽골 정부의 협조 아래 수습해 2003년 9월 1일 파주 통일전망대에서 장례를 치른 그는 이후 2007년까지 중국내 탈북자들에게 자유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인도자의 길을 걷게 되며, 2007년 8월 누군가의 밀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그 순간까지 무려 수백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을 자유 세계로 인도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그는 변호사 선임도 거부한 채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국내 인권단체들에 의해 대대적인 구원 활동이 전개되었고, 2007년 12월 4일 네이멍구 시린궈러밍 중급 인민법원의 판결에 따라 벌금 3만 위안을 물고 같은 달 15일 추방 형식으로 석방되어 16일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다시금 한국 땅을 밟았다. 현재 그는 중국 정부에 의해 입국이 전면 거부된 상태이지만 늘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겸손한 말과는 달리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방식들을 통해 여전히 북한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입국 당시 그는 현장에서 나가 있던 본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 “탈북자들은 정치난민이다. 사회에 무사히 적응하여 각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기자 주 - 중국 내 땅굴의 존재는 이미 2006년 6월 21일자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에 알려진 바 있다. "지난 5월 말 지린성 연변자치주 안투(安圖) 근방 야산에서 땅굴을 파고 숨어 지내던 탈북자 3명이 중국변방대에 붙잡힌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당시 기사의 일부)" 하지만 이 보도는 큰 이목은 커녕 작은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그대로 파묻히고 밀려나 끝내 잊혀지고 말았다. 탈북자 인권을 먼 나라 사람들 이야기 보듯 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 그 무관심이 그들을 더 깊고 어두운 땅굴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상념 때문일까)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