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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그리움을 글로 쓰다
Korea, Republic o 관리자 968 2008-09-22 03:20:33
노컷뉴스 2008-09-19 11:49

“프랑스의 작가 프루스트는 자신에게 글쓰기가 자기만족이라고 말했지요. 여기서 글쓰기는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일종의 콤플렉스인 결핍으로 보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핍감을 글쓰기로 해소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콤플렉스는 무엇이에요?”

조성면 문학비평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맨 앞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이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키가 작은 게 콤플렉스인데요.” 남학생의 말에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어 여기저기서 다른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안성에 위치한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한겨레중고등학교 문학교실 수업의 한 장면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수업이 진행된 한겨레중고교 책마루도서관에는 학생 21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땅거미가 막 지상으로 내려앉기 시작한 8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한겨레중고교 문학교실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고 전문문학인 모임인 ‘이웃과 함께 하는 작가들의 모임(회장 조성면·문학평론가)’이 함께하는 ‘한겨레학교 문학교실’은 탈북청소년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마련된 문학교실이다.

올해 한겨레중고등학교 21명의 학생이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신청을 했다. 지난해에 이어 강의에 참여한 학생은 모두 4명이었다.

이 강의에선 전문적인 글쓰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탈북청소년들의 정서를 돕기 위한 자리인 만큼 학생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곳의 학생들은 남한의 학생들과 달리 다소 낮은 언어 실력을 갖고 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선 또래 남한의 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외모에 관심이 많고 잘생긴 연예인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그들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문학교실에 참여한 전문 문인들이 이들을 위해 남한 사회의 적응을 도와주기보다는 ‘문학’을 통해 희망의 언어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한겨레학교 문학교실에선 창작수업을 비롯해 문학기행, 시낭송회 등 다양한 행사로 마련돼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참여한 학생들 가운데 4명의 작품이 청소년 문예지에 게재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움을 글로 쓰고 싶었어요

올해에도 문학교실에 참여한 고교 1년생 한복희(가명)양은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 양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다.

가끔 노트에 시를 쓰기도 하고 남한의 성장소설들을 즐겨 읽는 평범한 소녀이다. 남한의 여느 아이들과 차이가 없었다. 한 양은 열아홉이란 나이에 비해 얼굴이 동안이기에 가끔 버스를 탈 때 초등학생이냐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간간이 이북 억양이 섞인 말투가 남한 출신이 아님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고향이 저쪽(북)이다 보니 그곳에서 엄마랑 아빠랑 살 때가 그리웠어요. 그걸로 글을 쓰고 싶었죠. 북한에서 살던 생과 지금의 생에 대해 말예요. 일종의 전환점을 쓰고 싶었어요.”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한 양은 문학교실에 다시 들어온 이유에 대해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또래 아이에 비해 조숙해보였다. 세상에 대해 조숙한 것은 한 양뿐만이 아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이 남한의 아이들과 달리 남다른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 학교의 학생들은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까지 재학하고 있어 남한의 또래 아이들보다는 평균연령이 높은 점도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겠다.

문학교실 지도교사인 한겨레중고교 서지은 교사는 학생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곳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남다르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잘 써요. 우리나라(남한) 애들은 죽었다 깨도 못쓸 이야기이지요. 그런 이곳의 아이들에게 글쓰기가 치유되는 과정이 되길 바랄 뿐이죠.”

이들이 남들과 달리 특별한 경험을 통해 문학적 감성을 지녔기 때문인 듯했다. 이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꿈을 키우다

전교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겨레학교의 하루시작은 오전 6시 10분이다. 또 하루가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 오후 3시 20분이면 정규수업이 끝난다. 하지만 방과후 수업인 7~8교시가 이어진다.

특히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정규 과정 보충수업이, 화요일과 목요일엔 특기적성 시간으로 댄스와 피아노를 배운다. 또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에는 미국대사관에서 나온 선생으로부터 영어를 배운다.

그러나 문학교실 학생들은 남들과 달리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읽기를 좋아하고 있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해 오전 정규수업 전에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독서통장 제도를 통해 책읽기를 권장했던 이 학교 교사들의 힘도 보탬이 됐다.

지난해 이 학교에는 학생들이 읽을 책이 부족했다. 지난해 문학교실에 참여한 문인들의 도움으로 여러 곳에서 책을 지원받아 도서관을 채웠고, ‘독서통장’을 만들어 학생들이 맘껏 책을 읽고 있었다.

고교과정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통장에 칸이 채워지는 재미로 책을 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도서관에는 지난해 급하게 책을 채우다보니 신간 위주의 책만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이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의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교 3년생 이은주(가명)양의 꿈은 시인이다. 그러나 이 양은 직업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픈 생각이 없었다.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적절치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양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회에 나가면 글쓰기는 취미로 하고 싶다”는 이 양의 말은 무척이나 현실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남한의 학생들과 달리 학교로 벗어나면 대학보다는 생계를 위해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사들은 이들을 위해 가능하면 대학을 가더라도 4년제 정규대학보다는 직업과 연관된 전문대학을 지원하도록 지향하는 편이었다. 이들에게 우선시 되는 것은 바로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에게 문학교실은 활력이 되고 있는 듯했다. 잘된 글쓰기가 아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이 선행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이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자리가 있었다. 안성문예회관에서 마련된 한겨레중고교 ‘작은 문학의 밤’이 그것이다.

이날 자리에선 여러 시인들과 한겨레학교 문학교실 학생들이 시를 통해 내면의 교류를 가질 수 있었다.

지난해 문학교실에 참여한 박설희 시인은 시낭송회 자리에서 “강의를 처음 시작하면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과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진 것을 아이들과 더 나누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며 “이 작은 행사가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박 시인의 말처럼 이런 아쉬움이 결실로 모아질 듯하다. 바로 문학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의 글을 모아 전문 문학출판사에서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노컷뉴스 제휴사 / 피클뉴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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