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반달이’로 쇼핑몰 창업 대학생 오세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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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 2009-01-16 17:11 오세혁은 고려대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 사회학 전공이다. 사회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갖고 바라볼 수 있는 학문이라는 데 반했다. 북한에서는 접하지 못한 학문이다. 그는 공부뿐만 아니라 ‘반달이샵( www.halfmb.com )’을 창업한 대학생 CEO이기도 하다. 중국 베이징 독일 대사관 통해 탈북 오세혁(32)은 1999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북한을 떠나왔다.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후에 집안은 급격히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노동당에서 쫓겨났다. 북한에서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노동당에 가입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탈당’이라는 것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기술이 좋아도 출세할 일, 아니 의식주를 해결할 일마저 막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당의 원인은 다양하다. 당비를 제때 내지 못하거나 주민감시제에서 사람들의 신임을 잃었을 경우다. “경제적 여건까지 안 좋아지면서 한마디로 살 수가 없었어요. 희망이 없었죠. 아버지가 당에서 나오면서 대학도 못 가고 농촌으로 쫓겨나가는 1순위 집안이 된 상황이죠.” 아버지의 출당은 아버지 개인뿐 아니라 가족에까지 영향이 있었다.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평범하게 살던 오세혁의 가족들은 생계를 잃고 농촌으로 쫓겨날 판이었다. 그는 탈북을 결심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어 탈출구를 찾다가 중국에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가족들은 반대했죠. 저 혼자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아버지는 아직도 북에 계십니다.” 북한에서 한국을 오는 데는 상상 이상의 다양한 경로와 방법이 있단다. 브로커들도 판을 친다. 그는 비교적 쉽게 온 케이스다. 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기차를 타고 베이징의 독일 대사관을 통해 들어왔다. 힘든 건 혼자 시작하는 서울 생활이었다. “복잡한 지하철이나 버스에도 적응이 안 되고 두려웠지만 우선 아파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충격이었어요. ‘이제 나 혼자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죠.” 게다가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는 대사관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으로 갔다는 정보가 북한 정부에 들어갔을 확률이 크다. 분명 가족들이 피해를 당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가족들을 빨리 데려오고 싶어요. 아니 소식만 알고 연락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것 같아요. 제가 최선을 다해 목표를 빨리 이루는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오세혁은 대학원 진학 준비에 한창이다. 고려대 대학원 사회학과에 합격했다. 학부 수업 당시 ‘사회학 원론’이라는 강의를 듣고 학문의 매력에 빠졌다. 어떤 사회를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북한에서는 공부하기 힘든 학문이다. “북한에는 사회학이 없어요. 모든 이가 당연하게 바라보는 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 사회학이죠. 그러나 북한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봐야 하는 사회잖아요. 실제로 통제가 되고 있어도 그 안에 있으면 느끼지 못해요. 당연히 그런 건 줄 알죠.” 대학원에 가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다. 그리고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과 모델을 생각해보는 것이 그가 가고 싶은 길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유학도 가고 UN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새해에는 주경야독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그는 새터민 친구들 다섯 명과 함께 지난해 ‘한국청년정책연구원’의 도움으로 쇼핑몰을 창업했다. 창업 아이템은 ‘반달이’라는 곰 캐릭터다. 지금은 주로 캐릭터 티셔츠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어리둥둥 반달이’라는 캐릭터는 새터민들의 자화상입니다. 평양에서 한국으로 보내진 반달곰이 방생된 뒤 적응하지 못해 멸종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 만든 캐릭터입니다. 한국에 잘 적응해 반달곰 같은 신세가 되지 말자는 새터민들의 다짐을 담았어요.” 그에게 창업의 성공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캐릭터를 개발하고 쇼핑몰을 여는 일련의 작업들은 비즈니스를 복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한계에 부딪치기도 했어요. 쇼핑몰은 우선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본이 부족했고 홍보하는 법도 몰랐어요. 그렇지만 이 모든 시행착오를 보완한다면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을 거예요.” 가장 큰 수확은 대화와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기획안을 설명하고, 동대문 상인들을 설득해서 단가를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용기가 필수였다. “우리 새터민들 중에는 주눅이 든 사람들이 많아요. 문화와 언어적인 차이로 다들 한두 번씩 충격이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죠.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게 마련이죠.” 그들은 모두 험난한 장애물을 뚫고 한국에 왔다. 도전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때 경험했던 심적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안착하려는 심리가 강해지는 것 같다고 오세혁은 말한다. “남한 사람들에게 멘토링이나 조언을 얻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도움을 받아도 결정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그는 앞으로 반달이를 이용해 스토리를 만들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관련 업계 사람들의 조언을 얻고 다섯 명의 창단 멤버와 반달이를 본격적으로 키워볼 생각이다. 그리고 대학원에 다니며 새터민 청소년들의 멘토 역할도 해나갈 것이다. “상당수의 탈북 청소년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정서적으로 외로움을 겪고 있어요. 그들의 멘토가 되어서 외래어나 새로운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여유가 있어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아니다. 그도 내일이면 비싼 대학원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렇지만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오세혁은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다. 글 이유진 기자, 사진 안진형(프리랜서), 촬영 협조 한국청년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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