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발이 되어 달린다! 버스운전사 유금단 |
---|
레이디경향 2009-01-16 17:11 유금단 기사를 만나보니 ‘슈퍼땅콩’ 김미현 선수가 연상됐다. 동그랗고 귀여운 외모에 아이라인까지 비슷하다. 그래도 제일 비슷한 것은 조그마한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와 열정일 것이다. 열심히 살아서 언젠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말한다. 6623번(풍양운수) 버스기사 유금단은 오늘도 안전운전이다. 여덟 살 아들을 북에 두고 두만강을 건너 유금단(39)은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2001년 탈북했다. 남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8년 징역형으로 수감된 상태였다. 도무지 먹고살기가 막막해 만 여덟 살이던 아들 영철이를 남겨두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 있다는 친척의 소식을 듣고 무작정 떠났다. “영철이한텐 ‘열흘 있으면 엄마가 돌아온다’고 하고 친정에 맡겼어요. 가마솥에다 감자떡 몇 개 안쳐놓고 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고생하며 중국 옌지에 찾아갔지만 친척은 없었다. 중국 공안의 눈길을 피해 숨어 지내다 보니 스무 날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행을 택해 2002년 6월 서울 땅을 밟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자식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밥을 먹어도 넘어가지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당시는 기술도 없어 집 근처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어요. 돌아와 텅 빈 집에 앉아 있으면 두고 온 아이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처음에 와서는 문화가 다른 것은 둘째치고 말이 너무 달라 고생했다. 생소한 단어는 글씨로 봐도 모르겠고 누군가 뜻풀이를 해줘도 알 수가 없었다. 아이가 오기 전 3년 동안은 우울증을 안고 살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철이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살아갈 의욕이 생겼지요. 아이와 한집에 살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당당하고 떳떳한 엄마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곧이어 출소한 남편도 탈북해 무사히 한국에 들어왔다. 이제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편은 진폐증이 심해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그녀가 가장이 되어 일을 해야 하고 생활비가 넉넉지 못하지만 가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지가 됐다. “한국에 와서 꿈이 생겼어요. 커다란 시내버스를 운전해보는 거요. 평양에는 버스가 있을지 몰라도 내가 살던 함경북도에서는 본 적이 없었거든요. 운전면허 필기시험만 열두 번 떨어졌다. 한국어 단어와 표현법이 서툴렀던 그녀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열세 번 만에 필기에 합격했고 곧 운전면허증도 땄다. 한국에 온 지 18개월 만의 일이었다. 면허증을 땄지만 버스 운전기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번 취직하면 안정적인 직업이라 꽤 경쟁률이 높은 업종이다. 게다가 키 150cm의 여자 몸이 아닌가. “매일 버스 회사에 찾아가서 써달라고 통사정을 했어요. 저의 억척스러운 모습을 잘 봐주신 건지 운전을 맡겨주셨죠.” 버스 운전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새터민으로서 열심히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인정받아 광복 63주년 기념일인 2008년 8월 15일 우주인 이소연, 탤런트 이서진, 수영선수 조오련 등과 함께 서울 보신각 타종 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날 아들 영철이를 데리고 갔어요. 엄마는 앞으로도 열심히 살 테니 너도 당당한 사람이 되고 꿈을 향해 노력하라고요.” 운전계의 ‘슈퍼땅콩’, 유금단 그녀는 언제나 무사고 안전운전을 실천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60세 정년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작은 체구에 여자가 하기 힘든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녀는 말없이 바지를 걷어올리며 발목과 무릎에 붙인 파스를 보여준다. “클러치가 뻑뻑해서 밟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차’가 가끔 있어요. 키가 작고 다리가 짧으니까 밟을 때마다 정강이가 갈라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참아내야죠. 나를 믿고 채용해준 회사 회장님, 사장님이 고마워서라도 말이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거냐며 반문한다. 자신을 믿고 일자리를 준 사람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남한에 와서 ‘시민의 발’이 되어 이렇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줄 몰랐어요. 안전사고 없이 잘 해야죠.” 그녀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뿐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운단다. “아주머니들이 타면 예쁘다고 해줘요. 결혼했냐고 묻기도 하고요. 처녀로 보이나(웃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엄지를 들며 멋있다고 하고요.”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길을 잘못 들어선 적도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시내버스가 길을 잃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차를 일단 멈추고 손님들에게 ‘제가 이북에서 와서 길을 잘 모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어요. 그리고 ‘길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나와서 가르쳐주세요’라고 했더니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길을 알려주셔서 무사히 갈 수 있었어요. 내리는 손님들은 껌이나 사탕을 건네주고 안전운전하라고 격려해주셨죠.” 새해 유금단의 목표는 무사고와 친절로 모범운전사 상을 받는 것이다. 도로 교통정리를 배워 봉사활동도 할 예정이다. “나중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사람에겐 꿈이 있어야 해요. 자식한테 떳떳하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멋있게 살 거예요. 우리 국민들도 새해에는 좌절하지 말고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통일이 되면 버스를 몰고 고향에 가서 이웃들을 버스에 태워줄 거라는 소망도 갖고 있다. 그녀의 6623번 버스는 꿈을 싣고 오늘도 신나게 달린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솔찍하고 부딛치는 모습이 그냥 평범한 여인네가 아니군요
향기있는 당신의 모습이 당신을 아름다운 축복속으로 인도 할겁니다
새해도 멋진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 드릴게요 ^^^^
많은 분들이 본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탈북여성들의 귀감이 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꿈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자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