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에서 온 아이들, 시인이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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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9-01-17 03:04 탈북 청소년 학교의 47명 문집 펴내 "투박한 글 속에 가슴 때리는 망치가…" 탈북 청소년들이 함께 책을 냈다. 제목은 '달이 떴다'. 47명의 탈북 청소년이 쓴 시·산문 77편을 모아 묶은 문집이다. 책의 해설을 쓴 박설희 시인은 그들의 문장에 대해 "서투르면서도 투박한 그 속에 가슴을 때리는 무수한 망치와 송곳이 있었다"고 평했다. 책을 낸 탈북 학생들은 한겨레중고등학교에 다닌다. 이 학교는 탈북 청소년만을 가르치는 국내 유일의 정규 학교다. 탈북 과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한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2006년 3월 개교했다. ◆탈북 학생들을 위한 유일한 정규 중·고교 13일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정문에는 외부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었고, 교무실 칠판에는 안성시 경찰서 형사 이름과 휴대폰 번호도 적혀 있었다. 전치균 교무부장은 "학생들한테 돈을 뜯어내려고 오는 탈북 브로커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학생 205명과 교장을 포함해 교사 24명이 함께 산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공개 채용에서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교사들도 전원 기숙사 생활이다. 학비와 기숙사비는 무료다. 현재 재학 중인 한겨레중고등학교 학생 205명 중 부모 모두 있는 학생은 7%밖에 안 된다. 대부분 편부나 편모 슬하이고, 부모가 모두 없는 경우도 18%나 된다. 그래서 교사들은 '부모 역할'까지 맡고 있다. 방학 기간인 요즘도 한겨레중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받는다. 설 연휴 전까지는 중학생들이 보충 수업을 받고, 설 이후에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보충 수업을 할 예정이다. ◆문집에 담긴 탈북 학생들의 고민 정별림(17·중3)양은 2007년 5월 북한을 탈출했다. 한국에 들어온 건 2008년 2월. 탈북한 뒤 중국과 버마, 태국의 경찰서 유치장을 전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학여행'이란 산문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일 년 전에 이 학교에 왔다고 해서 출발점이 먼 것은 아니다. 다른 행성도 아니고 다른 나라도 아닌 북-남으로 갈라진 같은 나라 안에서 움직였을 뿐이다. 거리가 멀어서 일 년이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왔다." 2006년 12월 한국으로 온 홍련(17·중3)양은 "달빛을 받으면 마음속의 문 열려 내 마음의 고슴도치 뛰어나올까 두렵다"고 썼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김광혁(18·중2)군은 "내 유년 시절이 묻힌 고향 땅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이들은, 그러나 영락없는 한국의 '청소년'이기도 하다. 송순정(18·중3)양은 '한줄기 빛'이란 시에서 "빛이 나를 피한다/(중략)/나를 외면하고 간 벗/나는 그 빛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고 노래했다. 송양은 "좋아했던 남자애에 관한 시"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 가슴 설레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MP3 플레이어에 다운로드받아 즐기는 모습은 여느 중·고등학생들과 똑같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도 남쪽의 청소년들과 똑같은 꿈이 있다. 헤어 디자이너, 중국어 교사, 의사, 사회복지사…. 새로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하는 탈북 학생들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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