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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1호 공장… 10개월만에 흑자 냈습네다"
Korea Republic of 관리자 551 2009-05-06 23:49:43
조선일보 2009-05-05 03:04

생산직 전원 탈북자 국내 유일의 사업체 '메자닌 아이팩'

일에 속도 붙지 않을땐 서로 붙들고 운 적 많아 "올해 2·3·4호 공장 낼것"

"박스에 본드를 붙였으면 빨리빨리 날라야지 휴대전화 붙들고 있으면 일이 되는가? 우리가 오늘 몇 개 만들어야 하는지 아침에 다 들었지?"

작업반장 박명숙(가명·여·55)씨가 함경도 억양으로 억세게 호령했다. 박스 이음매를 붙이다 말고 9살짜리 딸과 통화하던 이호연(가명·여·35)씨가 "예, 예" 하고 얼른 호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이씨는 "북한에 있을 땐 일 시작하기 전에 느긋하게 '독보'(讀報·노동신문 사설 등을 읽는 것)를 했는데 남한에서는 꼼짝없이 빨리빨리 일하게 된다"고 했다.

30일 오후 2시,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메자닌 아이팩' 공장. 사장과 관리직 5명만 빼고 생산직 직원 32명이 전원 북한이탈주민인 국내 유일의 사업체다. 지난 1일 창립 1주년을 맞은 이 회사는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서 한국 사회 적응을 돕는다. 장사가 잘돼서 이문이 남으면 전액 재투자해서 설비와 고용을 늘린다.

'메자닌(mezzanine)'은 1층과 2층 사이의 '중간층'이라는 뜻. '아이팩'은 '포장'을 뜻하는 영어 '팩(pack)'에서 따왔다. 창업 초기 고전하던 메자닌 아이팩은 문을 연 지 10개월 만인 지난 3월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달엔 선물 상자·수납용 박스·택배 상자 등 500여 종의 박스를 하루 2만 개씩 생산해 2억2000만원어치 팔았다. 직원들은 "지금 추세라면 올해 매출 30억원은 거뜬하다"고 했다.

창업 초기만 해도 메자닌 아이팩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메자닌 아이팩은 서울 중구에 있는 '높은뜻 숭의교회' 김동호(58) 목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평양과학기술대학 건립 문제로 여러 차례 북한에 다녀온 김 목사는 2004년 탈북자들을 위한 공장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북한에서 고생한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신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일자리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돈과 땅과 사람을 구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이 교회 신도들이 세운 열매나눔재단에서 5억5000만원을 내놨다. SK에너지가 1억5000만원을 후원했다. 거창한 기술이나 설비투자가 필요 없는 박스 공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수십년 경력의 박스 기술자를 외부에서 사장으로 모셔왔다. 작년 5월 1일 야동동에 대지 4357㎡(1300평), 건평 1280㎡(388평)짜리 공장이 문을 열었다. 진짜 고생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박상덕(48) 사장은 "탈북자 단체 추천과 면접을 거쳐 직원 20명을 뽑긴 했는데, 박스 공장에서 일해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직원들의 전직(前職)은 다양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직장 선전대에서 노래하던 사람, 도자기 공장에서 그릇에 그림 그리던 사람, 양정사업소(식량을 저장하고 분배하는 공공기관)에서 쌀을 배급하던 사람….

박 사장은 한국 기술자 10명을 한 달간 '임시 강사'로 초빙했다. 박 사장이 영업하러 나간 사이 직원들은 박스에 색을 입히는 법, 사이즈에 맞게 찍어 내는 법, 완성된 박스를 차곡차곡 포장하는 법을 배웠다.

땅값이 싼 곳에 공장을 얻어 출퇴근 시간이 2시간씩 걸렸다. 직원들은 매일 아침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 모여 다 함께 통근 버스에 올랐다.

2007년 탈북한 장정자(가명·여·34)씨는 "북한에서는 전기가 나오다 말다 해서 하루에 서너 시간은 앉아서 멀뚱멀뚱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 오니까 쉴 틈 없이 공장이 돌아갔다"고 했다.

첫 석 달은 주문량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여기서 무너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중국 공안한테 붙잡혔던 기억, 목숨을 걸고 캄보디아 국경을 넘던 기억, 북한에서 고생하고 있을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직원들 대부분이 월급 120만원을 아껴서 10만~50만원씩 북한과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했다.

작업반장 박명숙씨는 "여기 돈 10만원이면 북한에서 4인 가족이 한 달간 살 수 있다"며 "북에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밤 12시까지 기를 쓰고 주문량을 맞췄다"고 했다. 조상훈(가명·45)씨는 "아침부터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도 목표량에 못 미쳤다"며 "욕심만큼 일에 속도가 붙지 않아 동료들끼리 붙들고 운 적도 있다"고 했다.

고단함을 씻기 위해 직원들끼리 1박2일로 강원도 설악산에 다녀온 적도 있다. 한영애(가명·여·26)씨는 "설악산 정상에 서니 멀리 북한이 보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치솟았다"고 했다.

"저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 와서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고기도 사먹어요. 그렇지만 북한에 있는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어요."

박 사장은 "올해 안에 공장을 4개로 늘리고 탈북자 직원도 더 뽑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자, SK에너지는 2호 공장을 짓는 데 3억원을 보탰다. SK에너지 사회공헌팀 강수영(여·40) 과장은 "솔직히 2~3년은 걸려야 궤도에 올라설 줄 알았다"며 "수익도 내면서 탈북자들의 적응도 돕는 훌륭한 사업 모델"이라고 했다.

윤주헌 기자 calli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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