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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서울과 평양
문화일보 2009-05-16 07:33:00 원문보기 관리자 750 2009-05-17 11:13:26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못난 이 아들 당신의 품을 떠나 서울 가서 살렵니다. 많이 욕하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통일의 그날까지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합니다. 아버지!’

13년 전 가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해외 출장차 출국하는 나를 배웅하러 나온 아버지께 고한 마음의 말이다. 당당히 밝히지 못한 이 심장의 목소리를 해마다 가정의 달을 맞는 5월이면 내 고향 평양 하늘가를 향해 목청껏 외친다.

평양에서는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서울에 와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지금은 작가로 변신해 집필을 전문으로 하는 나의 경우를 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다양한 직종과 절호의 기회가 많다는 말이 실감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나는 발품으로 일감을 찾아야 하며 필요한 때 내 자리가 있는 출판사로 나가 집필을 하고 편집, 교정 같은 일도 봐주고 도로에 차가 밀리기 전에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어느 가정보다 더 많은 가족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온 집안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저녁밥 먹는 게 한 달에 한두 번도 안 된다. 그것은 바로 학교와 학원 시간에 쫓기는 큰아들 때문이다. 고1인 큰아들이 새벽 공기를 흔들어 놓는 우리 집에서, 먹기 싫어도 한 술 뜨고 가야 공부도 잘된다며 반 짜증 섞인 말로 아침밥을 챙기는 아내의 목청이 저음은 아니다. 그리고 늦둥이 둘째아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챙겨보는 어린이TV의 만화 소리도 고음이다. 이런 분주함 속에서 나는 신문을 보다가도 자료나 창작 영감이 떠오르면 컴퓨터를 켜고 몰두하기도 한다.

거실에 있는 한 대뿐인 TV 채널의 취미도 네 식구가 모두 형형색색. 난 뉴스와 코미디, 아내는 드라마와 연속극, 큰아들은 영화와 게임, 작은아들은 만화와 광고…. 밥상 물리기 바쁘게 작은아들과 놀아줘야 하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청소년 유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 관리 감독까지 모두 내 몫이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해도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 볼거리가 많아도 바른 생각에서 탈선하지 않을까 걱정, 먹을거리가 많아도 가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나마 딸이 없으니 늦은 귀가길 걱정, 땅이 없으니 부동산 걱정은 안해도 되지만, 교통사고 걱정과 꼬박꼬박 물어야 하는 세금 걱정까지 정말이지 근심 걱정이 많고도 많은 곳이 서울이다.

그러면 배경을 바꿔, 내가 지금 평양에 그대로 있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고요한 새벽에 이은 평양의 아침은 우선 밥을 먹고 출근할 정도로 식량이 여유롭지 못하며, 모든 가정에 들어오거나 쉽게 구독할 수 있는 신문도 없다. 우유와 빵, 커피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의 떡들이고….

오래 전부터 회사 일감이 없어도 출근을 해서 당보(노동신문·6면짜리)의 교양기사나 사설 한 개라도 읽고 8시간 근로시간을 채우고 퇴근해야 한다. 흔히 선진국병이라는 고혈압, 비만과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는 평양에도 걱정거리가 있다.

“이번주 당의 지시는 각 가정에서 평양시 개보수 공사에 필요한 벽돌 3장, 모래 10㎏, 시멘트 2㎏, 작업 수갑(장갑) 1개입니다. 모든 세대주들은 혁명정신을 분발하여 무조건 철저히 집행하여야 하겠습니다.”

주말 인민반총회에서 하는 인민반장(통장 혹은 마을 이장)의 광고 지시다.

평양에서는 사회적 노동에 필요한 유효 자재 구입을 모두 국가에서 각 가정에 할당제로 부과한다. 은행 예금에서부터 마을 쓰레기 수거차의 연료, 농촌에 필요한 농기구들과 심지어 군대에 필요한 식품과 생활물자까지 한 달에 10가지도 넘는 과제물이 주어진다. 솔직한 말로 직장을 그만두고 국가에서 가정에 할당하는 사회적 과제물만 수행하려고 해도 벅찰 지경이다.

거리에 차가 없고 상점과 식당, 편의시설들도 해지기 바쁘게 문을 닫아 굉음과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피로가 전혀 없는 조용한 평양에서 2개(주말은 3개) 채널뿐인 TV를 켜면 90%가 김정일과 당의 사상 선전을 위주로 하는 교양 프로그램들이다. 그래서 가족끼리 각자 취향대로의 채널싸움 같은 것은 절대 없다.

그러나 커다란 걱정거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취침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직장당위원회에서 준 김정일과 당정책 학습 숙제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해당 부문과 관련된 김정일의 사상과 어록, 당의 정책들을 자료로 만든 학습 과제물이다. 시기마다 내려오는 김정일과 당의 지시에서 혁명사상을 발취해야 하며 그에 맞게 자신의 생활 이정표를 그려서 그대로 살겠다는 결의를 기록해야 한다.

각 가정에 의무적으로 걸려 있는 사진 속에 있는 인민의 아버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자식들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평양의 가정생활은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우세하다.

‘가정의 달’이란 용어조차 없는 평양에서의 생활은 누구와 치열하게 경쟁할 필요도 없고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면 마음이 편하다. 깨끗한 공기 속에서 때 묻지 않고 순수함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끝이 안 보이는 식량난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외식은 고사하고 1년에 한두 번 쌀밥에 고깃국 구경이 힘든 식탁을 마주하는 평양의 일반 가정을 ‘행복한 가정’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겉보기는 편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적 괴로움과 고통을 안고 밥 걱정으로 살았던 평양의 가정생활보다, 시끄럽지만 자기의 노력이 분명한 대가로 나타나며 먹을 것 흔한 이곳 서울의 가정생활이 훨씬 재미있다.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편심난구(便心難口·편한 마음에 괴로운 입)보다 난수락구(難首樂口·복잡한 머리에 즐거운 입)가 백배는 낫다.

림일 / 탈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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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두요 2009-05-17 11:33:49
    북한에서 살고싶어요...
    평양이나 조금떨어진 시골같은곳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네요...
    좀더 여유로운생활을 하지 않을까해서요...정신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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