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마카오의 김정남은 가짜!”소문의 진실을 쫓아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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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 의뢰한 김정남의 과거와 최근 사진 분석 ‘김정남 가짜설’이 처음 제기된 때는 지난 3월이었다. 내용은 “마카오에 있는 김정남은 가짜이며, 진짜 김정남은 평양에서 권력 획득을 위한 반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2001년 5월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일본 나리타공항에 입국했다가 카메라에 잡힌 김정남은 진짜지만, 최근 마카오에 거주하면서 일본 방송과 인터뷰를 갖는 김정남은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지난 6월 10일 일본의 한 TV 방송이 오보한 ‘가짜 김정운 소동’의 배경에도 마카오의 김정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사히 TV는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유력시되는 김정운의 최근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며 관련 사진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한 포털 사이트에서 무속인 카페를 운영하는 배모(40)씨인 것으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났다. ‘가짜 김정남설’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일본 TV가 사진의 주인공이 김정운이라고 보도하게 된 까닭’에 주목한다. 이들은 “정확성을 자랑하는 일본 TV가 확신을 갖고 보도한 것은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사진 주인공=김정남이란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며 “그 믿을 만한 소식통이 바로 마카오의 김정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 동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마카오의 김정남은 가짜”라는 것이다. ‘마카오 김정남 가짜설’이 그치지 않음에 따라 주간조선은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김정남 동일인 분석’을 시도했다.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포착된 김정남에 대해서는 ‘가짜’라고 이견을 제기한 사람이 없음에 따라, 2001년 5월 4일의 나리타공항 사진과 그 이후 포착된 김정남 사진을 비교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해보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분석했나 점·귓불 크기·귓바퀴 두께 중요 얼굴 각 부위 간 거리·각도도 비교 동일인 식별은 3가지 방식을 기본으로 진행된다. 우선 눈·코·입·귀·인중·눈썹 등 얼굴 각 부위의 형태와 특징을 면밀히 살핀다. 점이 있는 사람의 경우엔 기준이 되는 사진과 비교 대상 사진을 검토해 같은 자리에 정확하게 점이 찍혀 있는지 아닌지를 살핀다. 점 외에도 귓불의 크기와 모양이 일치하는지 아닌지, 귓바퀴의 형태와 두께는 동일한지, 귀에 파인 홈의 폭과 깊이가 일치하는지의 여부 역시 중요한 잣대다. 얼굴의 특징을 살핀 다음엔 각 부위의 상대적 위치값을 따진다. 예를 들어 코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 코에서부터 눈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눈썹이나 입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를 따진다. 기준 사진의 위치값과 비교 대상 사진의 위치값이 같으면 ‘동일인’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 다음에는 얼굴 각 부위의 상대값을 계측한다. 왼쪽 눈에서부터 오른쪽 눈까지의 거리와 각도, 코에서 입까지의 거리와 각도 등을 비교 검토해서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진다. 이런 특징을 종합해서 분석하면 성형수술을 한 경우에도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성형수술을 해도 대부분 쌍꺼풀을 하고 코를 높이거나 턱을 깎는 정도로 하지, 귓바퀴의 폭을 바꾸거나 귀에 파인 홈의 깊이를 다르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수술을 해도 코에서부터 입까지의 거리를 바꾸거나 귀에서부터 구각(입 끝부분)까지의 각도를 트는 것처럼 얼굴의 고유한 특징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2001년 5월 vs 최근 사진 점 위치·귀 형태 등 유사, 동일인 가능성 커 올 4월 마카오사진은 촬영각도 달라 식별 어려워 김정남은 얼굴에 점이 많은 편이다. 이 점은 상대적으로 분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2001년 5월 나리타공항에서 포착된 김정남과 2007년 1월 마카오, 2007년 2월 베이징, 2008년 9월 베이징에서 찍힌 김정남 얼굴에 나타난 점의 위치는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귀의 형태나 코·턱·눈썹·미간의 모양 역시 유사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2008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포착된 김정남의 얼굴은 약간 달랐다. 이 사진에서 나타난 점의 위치는 기준이 된 2001년 5월 사진의 점의 위치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여타의 특징은 비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쪽으로 강한 빛이 들어오는 자리에서 촬영된 것인 데다, TV 화면을 캡처하는 과정에서 선명도가 떨어져 식별자료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촬영된 2009년 4월 마카오 사진 역시 마찬가지로 파악이 힘들었다. 촬영 각도가 밑에서 위로 치달아 오르는 앵글이어서 기준이 되는 사진과 동등하게 비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2009년 1월 베이징 사진과, 2009년 3월 후지TV 사진은 점의 위치 및 귀의 형태, 코·턱·눈썹·미간 등의 모양에 있어서 비교 기준이 된 2001년 5월 사진과 유사한 것으로 판명됐다. 감정을 맡은 전문가는 “정확한 식별을 위해서는 사진에 나타난 얼굴의 각도와 카메라 앵글이 최대한 일치돼야 한다”며 “각각 다른 장소와 시점에서 포착됐으며 촬영 각도가 달라 상대값을 계측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얼굴의 전체적인 형태와 특징으로 미뤄 사진에 나타난 김정남은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 가짜설’에 대해서는 우리 정보당국도 진위 여부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북한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짜설이 번지자 우리 정보당국은 관련 자료를 정밀 검토, ‘정보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 가짜설’을 뒷받침해온 의혹들 1. 언론 인터뷰를 김정일이 허락할 리 없다 2. 해외거주 제한, 마카오 장기 체류 불가능 3. 외부 노출되면 김정일 비자금 관리 못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장남 김정남은 2005년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강력한 후계자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차남 정철이 당 조직부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뒤를 이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부각됐다. 하지만 정철은 성호르몬 분비 질환과 심약한 성격 때문에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과 3남의 대결 양상을 보이던 승계구도는 지난 3월부터 3남인 김정운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처럼 보인다. ‘김정운 후계’가 구도화되면서 주목받는 인물이 장남 김정남이다. 한때 후계자로 주목받던 인물이 밀려나면서 방랑자 신세로 전락한 것처럼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남은 일본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후계자 문제는 아버지만이 결정할 수 있다” “핵실험 관련해서 일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등 하기 어려운 발언을 하면서 권력에서 소외된 듯한 뉘앙스를 풍겨왔다. 이런 김정남의 모습에 대해 많은 탈북자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당 간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김정남이 아무리 권력구도에서 밀려났다 하더라도 그는 한 나라의 왕자”라며 “황태자 교육을 받아온 그가 언론에 나와 광대처럼 인터뷰하는 것을 김정일이 허용할 리 없다”고 말했다. 그가 항상 마카오에 나와있는 것도 의문이다. 북한에선 김정일의 가계(家系)라 해도 김정일의 비준을 받은 뒤, 철저한 감시와 경호 속에 해외여행이나 거주가 가능하다.아무리 김정일의 아들이라도 그렇게 멋대로 하도록 방치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수시로 일본 언론에 등장할 정도라면 이미 모든 것이 공개된 상태이므로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역할 수행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의혹에 힘을 실어준다. 김정남의 역할이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김정남이 마카오에 나와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김정남의 행보는 김정일의 이복 동생인 김평일의 거취와도 차이를 보인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김평일은 폴란드 주재 대사로 나가 있지만 단 한 번도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와 다른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고위탈북자는 “김일성 가문의 약점은 자녀에게 약한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해 주기 위해 결국 아들을 칭송하는 시를 쓰는 짓을 했다”며 “김정일도 남에게는 악마처럼 냉정하지만, 아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암살당한 김정남의 고종사촌 이한영씨는 그의 수기에서 김정일이 김정남에게 100만달러의 생일 선물을 하사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정남의 모친 성혜림이 영화배우였고 다른 사람의 아내였다는 사실 때문에 김정일이 한동안 김일성에게 소개하지도 않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일성은 생전에 손자인 정남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한때 북한에서는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당 조직부 등 주요 권력기관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정남을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1990년 5월 당중앙전원회의 제9기 1차회의 때 전체 대의원(국회의원)들과 함께 김일성·김정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당시 정남을 데리고 나왔던 김경희가 잠시 정남을 뒤에 놔두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대의원들이 지켜봤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베일에 싸인 정철·정운과 달리 북한의 웬만한 간부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김정남의 활동 반경이 넓었다는 얘기다. 김정남은 고려호텔과 평양정보센터에 자주 등장했고 많은 간부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특히 평양시 태권도관 관장이었던 박억련은 김정남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예체능계 미녀들을 김정남에게 소개해주며 집사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억련은 김 부자(父子) 관련 별장 관리소장을 하다가 김정남과 친분을 맺고 김정남과 의형제처럼 지내왔지만, 이후 김정일의 견제를 받아 보위부에 끌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측근들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김정일의 견제를 받고 숙정, 김정남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정남이 결정적으로 아버지 김정일의 신임을 잃게 된 것은 김정일이 가장 싫어하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이 보고되면서부터로 알려졌다. 노동당통일전선부 출신 장진성씨는 1997년경 평양의 고위층 자녀가 모인 자리에서 김정남이 “장군님께서 나에게 경제를 살리라는 특권을 주었는데 지금 식대로는 안되니까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하려고 한다”라는 말을 했다가 김정일의 진노를 사 밀려났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월 30일 “김정운 후계구도에 대한 징후는 여러 차례 접수되고 있지만, 확정적으로 단정을 지으려면 아직 많은 첩보와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김정운이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확실한 징후가 포착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아직까지 김정남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한때 앙숙이었던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과 김정남이 김정일에게 미움받았다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며 손을 잡았다는 내부 소식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해도 그의 건강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한 김정남의 반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정일은 장자승계의 원칙을 내세워 김일성이 총애했던 김평일을 제치고 후계자로 올라섰다. 이같은 선례를 놓고 보자면 장남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김정남은 외척이 적대세력이라 불릴 만큼 주변환경이 좋지 않다. 이모 성혜랑과 그의 남편은 미국으로 망명한 상태이고 고종사촌 이한영은 서울에서 암살당했다. 특히 모친 성혜림은 유부녀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영화배우여서, 극도로 사생활 공개를 꺼리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김정남이 후계자로 부상하는 데엔 이같은 사실도 걸림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 강철환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nkch@chosun.com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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