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 5만명 클린턴 떠나자 통곡…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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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억류된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가장 허탈해한 것은 4만~5만명에 달하는 북한 청소년들이었다. 노동당 최고위층 간부들까지 '헛물'을 켰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이 북한을 찾았을 때 대(大)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준비해놓았다. 클린턴과 함께 10만 평양 군중 앞에 등장해 자신의 '위대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였다. 이런 속셈 때문에 그는 클린턴에게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관람을 세 차례나 제의했다. 클린턴은 음식으로 화제를 돌리며 거부했다. 이 때문에 김정일도, 노동당 최고위간부들도, 공연관계자들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클린턴과 김정일의 면담 날 평양에서는 4만~5만명의 청소년이 폭염 속에 서 있었다. 언제 공연 지시가 내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에게 대기 특별명령이 전달된 것은 클린턴 방북 1주일 전이다. 내용은 "장군님을 모시고 '1호 행사'가 진행될지도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1호 행사란 김일성이나 김정일 부자(父子)가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달 4일에는 지친 북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탈수 현상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문제는 다음 날인 5일에 발생했다. '아리랑'의 개막식이 갑자기 취소된 것이다. 그날 저녁 학생들은 해산명령을 받고 모두 집에 돌아갔다. 허탈감과 피로가 극에 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을 방문한 한 북한관리는 "북한이 클린턴 방북으로 대대적인 선전을 하다가 아리랑 공연이 무산되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역시 미국 놈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식으로 선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같은 '아리랑' 공연이라도 김정일이 참석한 공연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2000년 10월 방북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김정일이 관람한 아리랑에 김정일이 대만족하면서 참석자 전원은 큰 선물을 받았다. 연출자 등 간부진은 특별훈장을 받아 출세길이 열렸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이 함께 참석하는 '아리랑' 공연이 성사됐더라면 참가자들은 역대 집단체조 참가자들보다 더 큰 선물과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게 무산되면서 일부 학생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북한은 1970년대에 집단체조를 처음 시작해 김정일 후계체제가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 집단체조를 대형화· 정치화하기 시작했다. 고위탈북자는 "김정일이 수만의 청소년이 만들어내는 집단체조를 보며 권력을 과시하고 그래야만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아리랑'으로 바뀐 집단체조는 연인원 10만명이 출연하는 서장(序章)과 본문 1~4장 10경 및 종장으로 구성된 1시간 20분짜리 초대형 공연물이다. 올해에는 다섯 번째 막을 올렸다. 8월 5일 개막식 무산 후 조선중앙방송은 올 첫 '아리랑' 공연을 가졌다고 10일 보도했다. "공연이 열린 '5월 1일 경기장'이 인민군 군인들과 각 계층 근로자들로 차고 넘쳤다"며 "주조(駐朝) 외교대표와 국제기구대표, 외국손님들과 해외동포들이 관람했다"는 내용이었다. 집단체조 때문에 평양시의 10만 학생들은 해마다 6개월씩 수업도 못하면서 온갖 학대를 받으며 집단체조 훈련에 동원되고 있다. '어린이 학대'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북한은 집단체조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는 유엔의 대북제재로 내부 사정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집단체조에 동원된 학생들의 고통도 극심하다고 한다.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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