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구니 받은 탈북자들의 '남쪽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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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젊은이 7명, 주선애 교수 찾아… 평양 출신… 1000명 넘는 탈북자 도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동구 길동 주선애(86) 장신대 명예교수 집에 탈북 젊은이 7명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방문했다. 주 교수는 "학생이 뭔 돈이 있다고 꽃바구니를 사와. 다음부턴 한 송이만 가져와"라고 나무랐지만 젊은이들은 웃기만 했다. 젊은이들이 큰절을 하며 "교수님", "어머니", "할머니"라고 부르는 말은 달랐지만 주 교수를 보는 시선은 하나같이 따뜻했다. "어머, 교수님 그 티셔츠 너무 멋져요." 탈북 여대생 김영미(34·가명)씨가 말하자 주 교수는 멋쩍게 웃으며 "아, 이거 5000원짜리야"라고 했다. 검소하게 사는 주 교수이지만 탈북자들에게는 무엇이든 아끼지 않아 탈북자들 사이에선 '대모(代母)'로 불린다. 함께 차를 마시던 주 교수가 지난날을 회상하며 "난 1948년도 탈북자다"고 했다. 그는 "김일성의 공산당이 싫고 기독교인 탄압을 피해 1948년 8월 38선을 넘었다"며 "산에 숨었다가 붙잡히고, 또 도망치면서 12일이나 걸려 서울에 왔다"고 했다. 1924년 평양에서 태어난 주 교수는 평양 정의여고와 평양신학교를 다니다 월남했다. 서울에서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6·25 때는 대구에서 '신망원'이란 고아원 원장을 하면서 전쟁고아들을 보살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성서신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뉴욕대(NYU)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숭실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지냈고 신학대학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주 교수는 2002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만난 뒤 탈북자 상담과 지원에 적극 나섰다. 2004년 자유북한방송 개국에 도움을 주었고, 2006년부터는 '요덕스토리'를 만든 정성산 감독을 재정적으로 후원해왔다. 그는 2005년부터 제자인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후원으로 탈북자종합회관을 운영하면서 탈북자 정착을 돕는 '새생활체험학교' 프로그램을 51차례나 진행했고 작년까지 1000명이 넘는 탈북자가 거쳐 갔다. 주 교수의 탈북자 지원활동에 감동한 김동호 목사(높은뜻 교회연합)는 2007년 교회 건축비로 쓰려던 200억원으로 열매나눔재단을 세워 탈북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우고 있다. 이날 주 교수 집을 찾은 탈북 대학원생 유성림(29·가명)씨는 "주 교수님은 제가 결혼할 때 저의 부모 역할을 해 주셨다"며 "나의 영원한 스승이자 부모"라고 말했다. 주 교수 집에서 사는 탈북자 이승주(27)씨는 "14살 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못 받은 사랑을 주 교수로부터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탈북자들을 남한 사회가 포용해줘야 한다"며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일건 기자 yooni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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