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출신 여성 버스운전사 유금단씨의 “내가 살던 고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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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소나기’가 잠시 북으로 간다.두메산골이다.잔잔히 흐르는 강줄기가 있다.오며 가며 정든 징검다리도 있다.한 소녀가 그 다리를 건널 때 소년을 만났다.둘이 오가피나무 열매를 따먹곤 했다.겨울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영화 ‘러브스토리’처럼 뒹굴었다.눈싸움도 했다.강에서 산천어도 잡았다.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했다.가재랑 놀았다.그러다가 산에 올랐다.두 손을 턱에 괴고 아래를 바라본다.소년은 어디 갔을까.중얼중얼 노래를 불러 본다.‘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에~’ 소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찾아오는 것은 불행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고민하고 또 고민했다.여덟살 아들을 친척집에 맡기면서 "열흘만 있으면 엄마가 갖다올게”하고는 두만강을 홀로 건넜다.파란곡절을 겪으며 남한으로 왔다.영양실조에 걸리다시피한 아들 때문에 가슴이 아파 매일 술을 마시며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다.함경북도 산골 출신으로 2001년 탈북 당시 영양실조에 걸리다시피했던 아들,누명을 쓰고 8년형을 선고받아 교화소에 있던 남편과 2005년에 다시 남한에서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하여 ‘이제는 살아야 한다.’며 다부지게 일어섰다.2002년 6월 남한에 들어와 포장마차 보조,공사장 막일,식당 홀서빙,노점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그러다가 버스 운전사가 됐다.필기시험만 13번째에 합격하는 불굴의 의지로 이뤄냈다.‘절망은 없다. 꿈 있는 자가 진정 아름답다.’를 좌우명으로 이겨냈다. 지금 ‘뛰뛰 빵빵’ 신나게 서울 시내를 달리는 유금단(40)씨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지난 11일 오후,서울 강서구 신정동의 6623번 시내버스 차고지에서 버스 핸들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북에서 온 여성으로는 드물게 남한에서 6년째 버스를 몰고 있다.2008년 광복 63주년 보신각 타종 행사에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 씨 등과 함께해 화제가 됐다. 경기도 지역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핸들을 잡다가 6623번 시내버스로 옮긴 것은 4년 전,매일 신정동과 여의도를 오가고 있다.새벽 2시까지 일하는 날도 많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열여덟살 아들 생각에 즐겁기만 하단다.단골 승객에겐 ‘친절한 금단씨’로 소문 나 있다.150㎝ 단신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함경도 또순이’로도 통한다.다리가 짧아 클러치를 밟을 때마다 정강이가 갈라지는 느낌을 받지만 참고 이겨낸다.아주머니들이 오르내릴 때 엄지를 치켜세우는 까닭이기도 하다.이런 격려와 관심에 힘입어 지난해 6월에는 모범운전자 자격증까지 땄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시골에 작은 요양원을 설립해 노인들을 모시는 일에 일생을 바치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눈물 젖은 두만강’을 지금도 부르냐고 했더니 “이젠 너무 슬퍼서 잘 안 부른다. 대신 윤태규의 ‘마이웨이’를 즐겨 부른다.”고 했다.노랫말이 새삼 다가온다.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다볼 것 없네/~누구나 한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내가 가야 하는 일들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일어나 한번 더 부딪쳐 보는 거야. 마이웨이.’ 서울신문 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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