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비, 탈북자의 사명감으로 만든 영화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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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피플M-영화감독 김규민] 사회에 의해 괴멸되는 사랑 실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탈북 출신, 김규민 영화감독 죽을 각오로 탈출한 북한.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자유를 꿈꾼다.
Q.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은 북에서는 그냥 배우를 해보고 싶었던 게 꿈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배우를 하려고하다가 여러 계기를 통해서 영화감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30살, 31 살에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그 나이에 연출부 막내로서... 경험도 없는데 조감독으 로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한국 영화를 새롭게 배우고 싶어 일을 하게 됐다.
Q. 북한에서도 영화감독을 했나? 북에서는 전혀 그런 적 없고 우리말로 하면 작은 지방 극단 이런 데서 연기생활만 좀 했다.
Q. 일단 김규민 감독하면 탈북 출신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한국에 온지는 얼마나 됐는지? 그리고 계기는 무엇인지? 한국에 온지는 딱 10년 됐다. 탈북의 계기는 중학교 때 한국 라디오를 우연한 기회 에 접하게 됐다. 북한 라디오들은 대부분 격동된 어조에 선동 선도를 위한 목소리 였지만 한국 라디오의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한국 라디오 프로가 끝나게 되면 북한 쪽에서 북한 중앙방송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한국의 프로그램을 비판하기만 했다. 그걸 쭉 듣다보니 중간점이 보였다. 내가 알고 있던 북한 사회하고는 뭔가 많이 다른 걸 느꼈다. 세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가장 보편화된 세상에 북한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세상에 나가게 되면 인간이 살기에는 처참하고 참혹하고 이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를 들으 면서 사회를 다시 보게 됐고 잘못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Q. 그야말로 목숨을 건 탈출 이었을 것 같다. 탈북 당시의 이야기를 해달라. 일단은 무서워서 건너편 산에 숨었는데 밤이 되니 강 양쪽이 극명하게 차이가 나더 라. 불빛 때문에. 하루정도 살피다 보니 낮보다 밤에 경비가 더 심한걸 알게 됐다. 그래서 다음날 모내기 하는 농민들 사이에 섞여 강둑까지 내려왔다. 내려와서 보니 강쪽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북쪽에서 보면 굉장히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허둥지둥 강물을 건너는데 뒤에서 북한 군인들 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마침 수영을 할 정도의 체력이 되지 못해 그냥 물살을 따라 순식간에 300~400m를 떠내려가서 반대편 기슭에 닿은 것이 천운이었다.
Q. 오는 7월 7일 영화 겨울나비가 개봉한다. 어떤 영화인지? 겨울나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고 직접 북한에서 보았던 사건을 기초로 한 영화다. 내용을 설명하자면 북에서 살아가는 모자에 관한... 엄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대로 그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삶 의 목적을 향해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이 괴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Q. 영화 제작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는데?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하면 8년 정도 걸렸다고 봐야 한다. 시나리오의 초고 단계를 쓴 것이 대학교 2학년 때다. 그후 여러 가지로 다른 작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 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을 자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이틀동안 울면서 썼다. 그래서 그 부분을 첨부해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Q. 배우 캐스팅 과정은 어땠는지? 다행이 캐스팅 과정은 쉬웠다. 의외였던 것이 사실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작품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됐다. 그 때 당시 같이 일하기로 한 스탭들 에게 시나리오를 보여 주면서 같이 하겠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흔쾌히 응해주셨다. 스탭분들부터 시작해서 배우분들 같은 경우에도 무보수로 참석 하시는 데도 너무들 호응이 좋아서 제가 “이제 죄송하다고 저희 인원이 이제 찼습니다.”라 고 부탁드릴 정도로 적극적이셨다.
Q. 영화의 내용이 전부 실화로 알고 있다. 사실인가? 일단은 스포일러라 말씀 드리기 좀 그렇다. 포괄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엄마의 사랑 이라는 건 사랑 중에서도 굉장히 아름답고 숭고하고 위대한 사랑이다. 그런데 어떤 사회에 의해서 그 사랑이 어떻게 철저하게 괴멸되게 될 수 있는, 철저하게 부서질 수 있는 지에 대한 영화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사실 북한에서 직접 봤을 때는 주 변에서 자주 일어나던 상황이라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지만 한국에 와서 주변 사 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경악을 하더라. 가장 최악의 인간 속에서 살다가 일반적인 상황에 들어오니까 그곳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얼마나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그런 일들인 걸 알게 된거다.
Q. 이것이 첫 영화로 알고 있다. 첫 작품에서 북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작품을 준비하기 전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대한민국 땅에 와 서 배불리 먹고 잘 입고 잘 놀고한다. 모든 것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바뀐 상 황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북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어쩌면 제가 여기서 살아가고 영화 감독으로서 살아가게 결심한... 탈북자로서 다른 걸 다 떠나서 북한 에서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으로서 어떤 사명감이라고 하면될까? 첫 작품 만큼은 지금도 북에서 살고 있고 죽어간 영혼들한테도 최소한으로 해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북한과 전혀 상관없는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나를 탈북 영화감독이라고 부를거다. 뗄 수 없는 용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명감으로 이 작품을 찍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Q.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답하다.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후원금 모이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몇일 전까지 독도문제 때문에 온 나라 국민이 바글바글 끓었는데 그 지진이 나니까 인간애를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어느 순간부터 북한을 말하면 어떤 방식 으로든 싸우는 조건이 되버린다. 최소한 단식을 해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굶어 죽 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방법을 찾아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 각한다. 하지만 잘못 도와주게 되면 도리어 국민이 죽을 수도 있다. 99년부터 시작 해서 수없이 많은 UN 단체나 우리나라에서 지원이 들어갔지만 그 쌀을 가져다가 먹는 사람들은 군과 공권력이기 때문이다. 뭐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뭐라고 할까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대신에 저는 방법을 찾게 되면 충 분히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단순한 예로 분유나 이런 것을 보내게 되면 군 인들한테 분유를 먹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애들은 먹고 살 수 있다. 그렇게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저는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북한이 형제를 다 떠나서 민 족, 동포 다 떠나서 최소한 그들도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최소한 굶어죽는 고통만큼은 인간적으로 봤을 때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Q. 통일이 되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물론 고향이 제일 먼저 가보고 싶다. 부모님 계시는 곳에 제일 먼저 가보고 싶고...
Q. 앞으로 감독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어떤 감독님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더 많은 작품,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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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분유를 어린이들에게 배급할것이라는 추측이나/확신은
뭘 먹으면 그렇게 생각할수 있는것인가요?
당신이 탈북할 당시에도 여러형식의/여러품목의/분유역시 지원되였습니다.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 배급되는것을 당신만은 확인했다는 말인가요??
무조건/주지말아야 하며/무조건 무시할때 북한은 무너집니다~
`
- 리얼토크애청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7-01 22:29:08
강냉이 가루도 안주어 굶겨죽이는 어린이들에게 김정일이 남한에서 지원된 탈지분유를 먹인다 ?
참 당신 탈북자맞긴 맞는기요 탈북자 영화감독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주의해 보아야겟군
- 개horo새리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7-02 00:06:02
넌 아무리봐도 공갈협박쳐 쌀 비료 탈려고 주민증 30만개로 교묘히 남한인처럼 위장해스며들어 대남공갈쳐 사회불안 야기하는 통전부 Ga정이리 졸가니같아 ㅋㅋ
부끄러운 줄이나 아시오...창피한줄도 모르고 누워서 침뱉기하다니..쯧쯧
고향사람들끼리 서로돕지 못할망정 누구잘되는 꼴못보니 언제통일되려나...후
사람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나쁜글 도배하는 인간들~제발~꺼져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