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남 요덕수용소는 어떤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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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요덕수용소는 어떤 곳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의 정식 명칭은 「제15호관리소」이며, 「조선인민경비대 제2915군부대」라는 군부대 명칭으로 위장되어 있다. 요덕군의 일부 지역인 구읍·립석·대숙·룡평·평전 등 5개 리(里)를 포괄하고 있다. 주변에 해발 1700m 에 이르는 병풍산, 백산, 모도봉 등이 천혜의 요새처럼 요덕수용소를 감싸고 있다. 수용소 남쪽 입구에서 북쪽 대숙리 초소까지 대략 35㎞, 동쪽 룡평리로부터 서쪽 병풍산까지는 20㎞ 에 이른다. 수용소 주변은 험준한 산들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어 탈출자를 막는데는 더 없이 안성맞춤이다. 산이 깊고 수림이 울창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골짜기들이 많다. 요덕수용소는 1950년대 말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고위층과 그 가족, 반체제 인사, 성분 불량자들을 내륙 오지인 함남 요덕군 구읍리, 입석리, 대숙리, 용평리, 평전리 일대에 집단 수용하면서 생겨났다. 86년까지 구읍·입석리 지역이 「혁명화구역」으로 돼 있었으나 87년 수용소 재편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북쪽 대숙리 지역만 혁명화구역으로 남아있다. 나머지 구역은 모두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바뀌었다. 2000년 초 함북 회령 등 일부 지역 정치범수용소가 해체 또는 축소·통합되면서 일부가 이곳으로 옮겨와 기존의 혁명화구역으로 있던 백산지구가 완전통제구역으로 바뀌었다. 또 민간인 지역이었던 수용소 입구 구읍리 서림천 일대가 혁명화구역으로 편입됐다. 「혁명화구역」은 북한 전체 정치범수용소 가운데 유일하게 요덕에만 설치돼 있다. 여기에는 당·정·군의 고위층이나 그 자녀들이 수용되기도 한다. 전 부주석 이종옥의 아들 이만호, 당중앙위 민방위부장 김익현 등 북한의 고위층들이 이곳에 수감됐다가 석방됐거나 아직 남아있다. 66년 잉글랜드월드컵 8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일부도 이곳에 수감된 적이 있다. 「완전통제구역」에는 지주, 자본가, 종교인, 국군치안대 가담자(6·25당시), 반정부인사, 민족반역자(남한행 탈북자) 등이 수용돼 있다. 또한 이곳에는 정치범 본인과 직계 3대가 수용되며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살아서 나올 수 없다. 여기에서는 강제노동과 공개처형 등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 요덕수용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이른바 적대계층 가운데 반체제인사 즉, 숙청된 종파분자, 반당·반혁명분자, 과거의 지주, 친일파, 종교인 및 월남자가족,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자유세계를 동경하거나 찬양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당의 간부로 있다가 나중에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그 가족이 점차 주류를 이루었으며 특히 김일성우상화와 김정일 후계구축 과정에서 수용대상이 증가했다. 90년대 후반 들어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탈북자들이 증가하자 중국으로부터 압송되는 탈북자들도 일부 이곳에 수용되고 있다. 기독교를 믿었거나 남한으로 망명하려 했던 사람들, 탈북 이후 신분이 노출돼 국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사건의 주역들도 북송되면 이곳에 수감되고 있다./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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