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실각설 특집]② "구속 김양건 통전부장 블랙노트로 숙청 모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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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실각설로 그 실재여부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블랙노트’, 과거 김정일 위원장도 블랙노트 때문에 몇몇 측근에 대한 숙청을 망설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김정일도 떨게 한 ‘블랙노트’ 어떻게 시작됐나?”를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 김용순이 시작…김양건 때 존재 가능성 부각 현상유지냐 실각이냐, 운명의 외나무다리에 선 장성택, 과연 그는 자신의 숙청에 대비해 ‘블랙노트’를 만들어 놓았을까? 북한에서 처음 ‘블랙노트’를 시도한 인물은 김정일 시대 노동당 대남담당 사업을 맡았던 김용순 비서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용순이 프랑스를 거점으로 서구세계에 극비문서들을 빼돌린 정황을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가 포착했다는 것입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측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용순 대남담당비서가 해외에 ‘블랙노트’를 만들어 감추어두려고 시도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보고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다수의 북한소식통들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심화조 사건’과 서관히 농업담당비서 처형사건, 황장엽 국제비서의 망명사건에 충격을 받은 김용순 비서가 언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숙청에 대비해 최후의 수단으로 해외에 ‘블랙노트’를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북한소식통들은 2003년 김용순 비서가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숨진 사건을 김정일 정권이 암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갓 가설로만 여겨지던 ‘블랙노트’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2월, 북한 당국이 당시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을 구속하고 통전부 간부들의 죄행을 들추어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소식통들은 통전부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시작됨과 동시에 김정일 정권을 향해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무기명의 편지들이 연이어 날아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한결 같이 김양건을 즉각 복직시키지 않으면 엄청난 내용의 ‘블랙노트’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내용이었다는 얘깁니다. ‘블랙노트’의 존재 가능성에 당혹한 김정일 정권은 통전부의 힘없는 간부들을 대거 숙청하면서도 정작 통전부장인 김양건에게는 아무 죄도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식통들은 당시 통전부 숙청사건에 앞장선 사람들 중엔 노동당 행정부장이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 만큼 ‘블랙노트’의 대단한 위력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은 것도 바로 장성택이었을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말했습니다. 소식통들은 “이런 경험이 있는 장성택이 훗날 자신의 숙청에 대비해 반드시 해외에 ‘블랙노트’를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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