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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4 - 홍은영
동지회 6 6846 2005-10-26 10:49:58
빛을 찾아 만리 홍은영

추방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날 우리는 저녁 늦게까지 관서 팔경의 하나라고 하는 강계 인풍루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다가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역으로 나갔어요. 거기서 우리는 이삿짐이 도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짐을 헤쳐보던 우리는 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짐 중에서 그래도 값이 좀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조리 없어졌던 거예요. 누군가 오는 도중에 이미 다 뽑아 낸 것이지요. 기가 막혔어요. 언니는 한 동안 주저 않아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춥고 배고프고 갈 곳도 없고 거기다가 그나마 믿었던 짐까지 다 잃어버리고 또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이 악다구니 끓듯 하는 역전 대합실 밖에 갈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에요. 우리가 가야 할 위연에서 온 한 사람을 만났던 거예요. 그 분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임산사업소 출장소라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임산사업소는 가고 오는 모든 짐을 받고 보내고 하는 곳으로 처음부터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낮에 있었던 봉변 같은 것은 당하지도 않았을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 출장소란 곳은 강계 역에서도 한 참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정말이지 게딱지만한 집이었어요. 그런데 그나마도 그 좁은 방안에 사업소로 가고 오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아 정말이지 사람이 들어앉을 자리는 엉덩이 큰아주머니들 네 다섯 명 자리도 못 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에는 이미 스무 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어요. 거기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우리말고 세 집이나 더 위연 임산사업소로 추방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첫 집은 일곱 식구나 되는 대 가정이었는데 딸이 어느 호텔에 다니다가 깜둥이 아이를 낳았다는데 딸은 없고 가족들만 추방돼 나오는 거였어요.
둘째 집은 아주 예쁘게 생긴 젊은 애기 엄마와 두 세 살 박이 아이였어요. 그 애기 엄마는 평양 음악무용대학까지 나오고 추방되기 전까지 모란봉 예술단에서 첼로를 연주하였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쏘련에 가서 몇 해간 유학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국가 보위부에 잡혀갔다는 거였어요. 무슨 일로 잡혀갔는지는그도 모른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이들은 그렇게 갑자기 추방되어 나왔다고 하니 문제가 이만 저만 심각했던 게 아닌 모양이지요.
세 번째 집은 무척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 혼자였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평양에서부터 같이 나온다며 그 젊은 애기 엄마네 아이를 마치 자기 손자애처럼 안고 있어서 저는 그들이 한 가정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아니더군요. 대신 젊은 애기 엄마는 아이는 할머니에게 아예 맡겨버리고 첼로만 꼭 껴안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었던 거예요.
아무튼 그 출장소란 집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아 정말 엉덩이 큰 아주머니들 네 다섯 명 자리도 못 되었지만 벌써 스무 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어요.
우리는 애기 엄마네 옆에 자리를 잡았어요. 할머니가 우리들한테 국수떡을(옥수수 국수를 누르다가 남은 덩어리)주었어요. 생각같으면 그대로 막 먹고 싶었지만 남들이 웃을 것 같아서 조금밖에 못 먹었어요. 하지만 정말 제 일생에서 그렇게 맛있는 국수떡을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았어요.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전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 위연 임산이란 곳은 어떤 곳일까.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곳에는 성분이 나쁜 사람들만 살고 있다는데 그럼 지주 자식들, 치안대 가족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는 걸까’. 문 밖에서는 추럭 추럭 비 내리는 소리가 끊기지 않고 들렸어요. 밤 한 시가 되었을까 문득 자동차 소리가 문 밖에 와서 멎더니 갑자기 벌컥 문이 열리었어요. 시꺼멓게 생긴 키가 구척이나 되는 사람이 쌍지팡이를 짚고 들어왔어요
“가만 위연 임산으로 갈 사람들 여기들 있소?”
목소리도 우뢰치는 소리 같았어요. 그 순간에 바람이 들어오면서 등잔불까지 꺼졌어요.
“그게 누굽니까. 중대장 동지 아닙니까?” 누군가 어둠 속에서 놀랜 소리로 물었어요.
“명근인가 차가 왔어 빨리 불을 켜라구.”
불이 켜지자 그 사람은 한 쪽 다리만 없는 것이 아니라 얼굴도 한 쪽 턱이 마치 면도칼로 벤 것처럼 썩뚝 깍인 것이 보이였어요. 정말 그렇게 무섭게 생긴 얼굴은 처음 봤어요.
“아 오래들 기다렸지. 가자구. 에이 대관절 무슨 놈의 차가 그 모양인지 비가 오니 목탄이 젖어 어디 불이 당기여야 오지. 그걸 마른 것으로 골라 불을 피워 가지고 오다보니 이제 왔어. 빨리들 준비하지.”
그 사람은 씩 웃더니 담배를 꺼내 말기 시작했어요. 차라리 웃지나 말지 웃는 그의 얼굴은 정말이지 소년장수 영화에 나오는 호비보다도 더 무서운 얼굴이었어요. 바로 그 때 제 옆에 있던 할머니가 어쩐지 흠칫 놀라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다음 온 방안이 갑자기 불난 집같이 되는 통에 저도 남들처럼 언니를 도와 짐도 챙겨 떠날 준비를 하느라 더 지켜 볼 겨를이 없었어요.
마침내 떠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워낙 사람이 많은 데다가 짐까지 많다보니 더러 조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결국 우리도 작은 김치 독 하나와 다른 짐 몇 가지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어요. 차는 떠나고 비 오는 길가에 덜렁 뒤에 혼자 남게 된 그 독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왔어요. 우리 엄마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왔다는 제일 아끼던 독이었거든요. 행복했던 우리 집의 일부가 또 그렇게 떨어져 나간다 생각이 들었거든요.
차는 곧 이어 시내를 벗어나 찬비 내리는 컴컴한 어둠 속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막 어느 산굽이를 돌 무렵이었어요. 문득 차가 멈추어 서더니 운전 칸에 탔던 그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내렸어요.
“가만 아까 보니까 여기 애기 엄마가 있었지. 내리라구.”
“예!” 애기 엄마가 영문을 몰라 물었어요. “내려서 여기 운전 칸에 타란 말이야.”
아저씨가 웬 일인지 볼 부은 소리로 말했어요. 그래도 애기 엄마가 영문을 몰라 우물거리자 문득 한 쪽 다리가 없음에도 힝 올라오더니 그는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옆에 있는 첼로를 우왁스럽게 밀어버리고 애기를 빼앗아 운전 칸에 내려보냈어요.
“아이 괜찮아요. 정말 괜찮다니깐요.”
애기 엄마가 너무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무섭게 생긴 아저씨 그까지 훌쩍 들어 운전 칸에 내려보냈어요.
“자, 이젠 떠나자구. 젠장, 벌써 생각은 하면서도 초소 놈들이 깔지락 거릴 것 같아 있었더니 비오니까 놈들 꼴도 보이지 않는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자동차 불빛에 초소 같은 것이 언 듯 스쳐 지나가던 생각이 났어요. 무섭게 생긴 아저씨는 애기 엄마 자리에 앉다보니 바로 우리 옆에 앉았어요.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저 아주버니 한 가지 물어 봐도 되겠수.” 옆에 있던 혼자 가는 할머니가 말했어요.
“뭐요 말해 보시우”
“저 아주버니 혹시 옛날에 서울 근위 김책 제4보병사단 18연대에 있지 않았수?”
“아니 아주머니가 그걸 어떻게?” 그 아저씨 깜짝 놀라 몸까지 흠칫했어요.
“내가 잘 못 보지 않았구만. 아니 얼굴보다도 그 목소리야 저승에 가서도 잊을까. 제가 바로 순임이웨다”
“아니 순임이라니 어느 순임이 말입니까?” 그 아저씨 다우쳐 물었어요.
“어느 순임이라니요 중대장 동무한테 순임이가 저 말고 또 있었겠수. 장춘 포위전투 때 라라툰에서 장개석 군대 포위 속에 혼자 쓰러져 있던 중대장동무를 업고 나온 순임이 말이웨다.”
“아니 뭐, 뭐라구요! 아주머니가 정말 순임이 그 순임 동무란 말입니까?”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섭게 생긴 아저씨 온 몸이 긴장으로 부들부들 떠는 것 같았어요
“살아 있었군 그래. 살아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살아 가지고도 소식 한 번 없다가 이제야 나타나다니.....” 할머니도 오열을 참으며 가까스로 말을 이었어요.
“살아 있었지. 살아 있었구 말구. 아니 그런데 순임동문......”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 두 분은 중국 해방전투에서부터 전우였다고 했어요. 그런데 중국이 해방되자 그들은 부대와 함께 우리나라에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부대와 함께 불, 비속을 헤치고 낙동강 전선에까지 나갔다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부대는 몽땅 후퇴하게 되고 그 무섭게 생긴 아저씨만은 중대를 데리고 다시 불타는 낙동강을 건너 공격에 나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부대의 후퇴를 보장하기 위해서 그 아저씨가 자진하였다는 거였어요. 그러니 거기서 어떻게 살아나기를 바랄 수 있겠어요. 실제로 그와 함께 공격에 나갔던 중대는 모두 전멸하고 그 아저씨도 부상을 당한 채 정신없이 강에 떠내려갔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났다고 했어요. 그런 그 두 분이 5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난 것이었어요.
“그래 목숨이 하도 질기니 죽지는 않고 살아 있었지요. 내가 전상자 병원에 있을 때 듣자니 순임동문 그 후 우리 문화부 중대장동무와 결혼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렇게 혼자 여기까지 나오게 된거요?” 얼마 간 진정되자 억대우 아저씨가 묻는 말이었어요.
“그랬지요. 우린 그때 모두 중대장 동무가 잘못 된 줄 알았으니깐요. 하지만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아니 그러는 중대장 동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중대장동무야 말로 이렇게 살아 있다면 정말로 영웅 중에 영웅인데 지금쯤은 높은 간부가 돼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뭐 그때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높은 간부가 되어서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구요? 허허.....”
“참 순임동무도 알겠구만. 그때 우리 연대 82미리 박격포 중대 정찰 소대장을 하던 최석환 동무 말입니다.“
“아, 알구 말구요. 그 포 정찰을 나갔다가 적들에게 노출되어 포위되자 ‘포사격은 나에게로’ 라는 마지막 무전을 날렸던 사람이잖습니까. 1952년도인가 최고 사령부에서 직접 불러 공화국영웅메달을 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사람도 여기 와서 개 천대를 받으며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얼마 전에야 저 세상 사람이 됐지요. 공화국 영웅? 흥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여기 우리 임산에는 전쟁 영웅들뿐 아니라 전후 복구건설시기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라 복구건설에서 이름을 날렸던 노력영웅들 그리고 아무튼 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받쳤던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 와 있지요. 허허” 아저씨는 쓴웃음을 지었어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이 나라를 도대체 누구들이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그들이 모두 이런 곳에 와서 죽을 고생을 하며 산단 말인가요.” 할머니가 더 참지 못하겠는 듯 격하여 말했어요.
“허 그러니 순임동문 이런 곳에는 옛날 지주나 했던 사람들 그리고 치안대나 했던 사람들이라야 오는 곳인 줄 알았습니까. 아니 아니 그래도 우린 또 좀 덜 억울한 편이지요. 저 함경북도 하성이라던가 거기에는 해방 전에 벌써 십여년 씩 일제와 싸운 항일 투사들을 전문 가두는 정치범 수용소도 있다고 합디다.”
“아니 뭐라구요! 항일투사들만 전문 가두는 정치범 수용소요?” 그 말에는 정말 모두가 깜짝 놀랐어요 일제와 싸웠던 항일투사들이라면 정말로 우리 모두가 하늘 같이 생각하였던 사람들이었거든요.
“아 거 왜 내각 제1부수상을 하던 김광협동지, 내무성 정치국장을 하던 최기철동지, 중앙인민위원회 부주석까지 하였던 김동규동지, 당중앙위원회 조직 지도부장이었던 리국진동지, 대남 담당 비서를 했던 허봉학동지, 민족보위상을 했던 김창봉동지, 사회안전상을 했던 석산동지, 뭐 그런 분들은 모두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한 평생을 목숨을 걸고 싸웠던 분들이 아닙니까.”
“아니 그럼 그 분들이 모두 지금 그런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단 말인가요.”
“아니 뭐 그 분들 뿐이 아니지요. 중국 팔로군 쪽에서 항일했던 사람들까지 하면 정말 헬 수 없이 많을 걸요. 김창만, 김웅, 장평산, 방호산, 박금철... 얼마나 많습니까.”
“어마나 아니 김웅 동지는 우리 사단장동지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박금철 동지는 우리 문화보 사단장이었구요. 참 방호산 동지는 6사 사단장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모두 정치범 감옥에 갇혀 있단 말이에요.”
“물론 그분들 모두가 지금까지 살아 계시지야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분들까지 모두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는 세상이다 그 말이지요.”
“모르겠구만 정말 모르겠수다. 아니 지금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데 그렇게 이 나라를 세우자고 피 흘려 싸운 사람들을 모조리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지 않으면 이런 간간벽지 임산에 쫓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가 말이웨다.”
“허허 글쎄요. 에이 우리 이런 말을 하지 맙시다. 말해봐야 공연히 가슴만 아팠지 소용이 있습니까.” 무섭게 생긴 아저씨는 다시 쓴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맺었어요.
들을수록 놀라운 소리들뿐이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전 그 분들 모두가 어떤 분들인지 잘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나라는 결국 한 두 사람이 피를 흘려 세운 나라가 아니란 것이었고 그런 훌륭한 분들이 지금은 모두 정치범 수용소나 아니면 이제 우리가 가고 있는 그런 산간 벽지에 쫓겨가 무서운 고생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나도 말을 좀 해야겠군요. 사실은 우리 집 그 사람도 얼마 전에 국가보위부에 잡혀 갔수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어요
“아니 우리 집 그 사람이라니요. 그 문화부 중대장동무 말인가요?”
“그렇지요 인민군대에서 장령까지 달고 있다가 중국 출신이라고 제대되었는데 내 그만큼 말렸는데도 듣지 않고 나라가 이 꼴로 나가서는 안 된다구, 그러면 정말 피 흘리며 죽은 전우들에게 죄를 짓는다고, 당에 계속 신소 편지를 올리더니 끝내 잘 못되고 말았지요.” 할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음 그렇게 되었군, 그렇게 되었어. 그렇게 법이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던 문화부 중대장동무까지 그렇게 하게 되었으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 가만 순임동무 우리가 이렇게 밤중에 자동차를 타고 가니 꼭 옛날에 그 문화부 중대장동무랑 함께 차를 타고 추풍령고개를 넘어 가던 것 같지 않소.” 무섭게 생긴 아저씨 갑자기 쾌활한 어조로 말을 바꾸었어요.
“아이참 무슨 소리를. 난 그때 생각만 하면 노래를 부르고 어쩌고 하다가 미국 놈 폭격에 다 죽을 번하던 하던 일이 생각나서..... 호호.” 할머니도 생각을 털어 버리고 갑자기 밝은 소리로 웃으며 말을 받았어요.
“아 글쎄 죽을 번이야 했지. 하지만 우린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있지 않소. 우리 그때 부르던 그 노래를 불러 보자구. 어떻소?.”
“아니 갑자기 정신나가지 않았수. 지금 노래를 부른단 말이우?” 할머니 기겁하여 소리쳤어요.
“아 그러지 말고 우리 그때 부르던 그 노래를 부르자니까. 자 아는 동무들은 모두 함께 부르자구. 내가 선창을 떼겠소. 우리는 강철같은 조선의 인민군 시-작.....” 하여 갑자기 그 밤중 달리는 차 위에서 노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이 부르기 시작하였지만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이외로 많았어요.

우리는 강철같은 조선의 인민군
정의와 평화 위해 싸우는 전사
불의의 원쑤들을 다 물리치고
조국의 완전독립 쟁취하리라
인민의 자유행복 생명을 삼고
규률과 훈련으로 다진 몸이니
온 세계 앞서나갈 조선의 인민군
나가자 용감하게 싸워 이기자.....

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어요. 하지만 그 노래는 정말로 자신들이 피 흘려 싸우는 길이 나라와 인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한 자신감과 긍지감으로 충만 된 노래였어요.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노래는 중국 팔로군 행진곡 작곡가 정률성이라는 조선 혁명가가 지은 “인민군 군가”였어요. 물론 이후에는 위대하다는 아무개의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에요.
그 노래가 끝나자 “무섭게 생긴 아저씨”는 다시 그 노래는 시대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면서 예술영화 “성장의 길에서”나오는 노래를 하자고 선창을 뗐어요.

가을도 저물어 찬바람 분다
굶주리고 헐벗은 우리 동포야
그 누가 광야에서 구원 해주랴
일어나라 대장부야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
그 노래는 저도 알고 있는 노래였어요. 아니 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래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목청을 다하여 불렀어요.그러고 보니 우리가 가는 것이 추방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슨 혁명하려 가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우리는 그렇게 되골령고개를 넘어갔어요.

(다음 호에 계속)

탈북자동지회 회보 2003년 3월[탈북자들] 연재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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