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책공업종합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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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초의 기술대학이자 최대의 공업종합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공대, 총장 홍서헌)은 남한의 포항공대에 비견되는 북한 과학기술인재 양성의 중심지이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사회·인문·이공계를 모두 두고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이 주로 당·정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김책공대는 이공계열의 과학기술인재 육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김책공대는 평양시 중구역 교구동 영광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1948년 9월 27일 김일성종합대학의 공학부와 철도공학부를 모체로 설립, 초기에는 금속공학부, 전기공학부, 야간학부 등 9개에 불과했고 교명도 평양공업대학이었다. 북한은 당시 이 대학의 설립을 두고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자체적인 과학기술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 마련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1951년 김주석의 항일빨치산 동료이자 내각 부수상, 전선사령관 등을 지냈던 김책(1951년 사망, 김국태 현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생부)의 이름을 따서 대학 명칭을 김책공업대학으로 바꿨으며 지난 88년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김책공대는 대학 총책임자인 총장 아래 3명의 부총장을 두고 있으며 행정체계상으로는 내각 교육성 고등교육국의 지시를 받고 있다. 총학생수는 약 1만여명이며, 교직원은 2천명, 6층짜리 1호교사와 각 5층규모의 2·3호교사를 비롯해 종합강당(2천석), 각종 실습공장 및 실험실, 도서관(장서 60만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81년부터 부지 및 교사 확장공사를 추진, 12년만인 1993년 1월 완공, 방대한 규모의 15층 본교사, 15층 기숙사, 집적회로실습장, 도서관, 체육관 등을 현대적으로 건설했으며 총부지면적은 2배(기존 20만㎡)로, 건물면적은 15망2천㎡가 더 늘어났다. 지난 94년 사망한 김주석이 사망 1년 전인 지난 93년 5월 개축된 대학을 둘러보기도 했다. 학부도 지질탐사학부, 광업공학부, 금속공학부, 재료공학부, 기계공학부, 동력기계학부, 열공학부, 선박공업부, 전자공학부, 체신학부, 자동화공학부, 전자계산기학부, 전기공학부, 물리공학부, 기초학부, 공업경영학부 등으로 늘어났다. 이밖에 1956년 창설된 연구원을 시작으로 현재 지질, 광업, 금속, 재료, 로봇, 전자계산기, 반도체집적회로, 물리공학 등 부문별 연구소와 박사원, 전자계산소, 종합분석소, 종합실습공장 등을 갖췄다. 또 북한에 정보화 바람이 불면서 90년대 들어 컴퓨터 프로그램학과, 정보센터 등을 설치했으며 수재교육을 위해 체신학부 등 주요 학부에서는 수재반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30대 컴퓨터 전문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정보센터는 다매체(멀티미디어)프로그램 제작의 핵심 연구소로 부상해 이곳에서 개발된 기계번역, 문자인식(OCR), 음성인식, 화상인식, 네트워크 및 멀티미디어 관련 프로그램 등을 여러 나라의 기술잡지와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김책공대는 이외에도 여러 나라 대학과 친선관계를 맺고 교육·과학교류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아프리카 등에서 온 유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2001년 9월초 김책공대의 홍서헌 총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보스토크의 원동국립공업종합대학과 교류, 기술도서 교환, 과학기술 분야의 공동연구를 추진키로 했으며 이러한 학술교류가 정착되면 대학생 교류와 유학 문제도 논의하기로 의견을 같이 하기도 했다. 김책공대에는 남쪽 출신 교수들도 적지 않은데 전기공학계 권위자인 백영철 교수(전남 강진)와 고천식 교수(경기도 고양. 현 서울 은평구), 선박분야의 최고권위자인 김동신 교수(서울), 방직분야 기술의 대가인 조용관 교수(전북 장수)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책공대는 북한 정권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각 경제기관 및 공장·기업소, 특히 컴퓨터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간부들과 핵심적인 과학자·기술자들을 배출했다. 또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2001년 9월 20일 현지지도는 이 대학의 비중과 역할을 한층 더 격상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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