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양 유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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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발굴사실이 발표된 고구려 유적지. 위치는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 일대이며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이 곳을 고구려가 남방정책의 기지로 사용키 위해 건설했다며 「남평양 유적지」라고 이름지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유적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行宮)의 터가 있는 「큰 도시의 흔적」, 「축대토방」, 고구려 고분, 붉은 기와와 벽돌, 「암치와 막새」 등이 있다. 「큰 도시의 흔적」은 남-북의 길이가 4km, 동-서의 길이가 5km다. 이 안에서는 사방의 길이가 약 2km인 토성(土城)의 흔적도 발견됐다. 축대토방의 규모는 76×67m였으며 이 위에서도 2채의 큰 건물이 남향으로 나란히 서 있었던 흔적이 발견됐다.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이 축대위에서 수많은 「주춧자리 돌」(주춧돌이 움직이지 않도록 그 밑에 까는 작은 돌무지)이 나온 점과 배치 상태 등을 들어 축대위에 2채의 큰 건물이 있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산성의 총길이는 10.5km였는데 흔히 「장수산성」으로 불리우는 이 산성은 왕국과 도시를 보위키 위해 험준한 능선을 돌아가면서 성벽을 쌓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산성. 장수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5.5km, 남-북으로 약 6km 범위안에서 발견된 고분들의 숫자는 대략 1천여기이며 모두가 고구려식 「돌칸 흙무덤」이었다. 붉은 기와와 막새 및 벽돌은 평양에 있는 대성산성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비슷한데 특히 벽돌에는 『313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었다』고 이 유적발굴 발표 때 평양방송은 보도했다.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암치와 막새』가 고구려시대에서는 왕궁의 건설때에만 사용된 점, 행궁터의 규모가 평양의 안학궁(安鶴宮)에 못지 않은 점, 제작연도가 313년으로 기록된 벽돌이 나온 점, 대규모 고분이 발견된 점 등을 들어 이곳이 4C 때 남방진출을 강화키 위해 만들어진 고구려의 부수도였다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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