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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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역포구역 무진리에 소재한 고구려시조 동명왕의 무덤이다. 주변에 수백년 묵은 소나무들이 우거진 야트막한 구릉위에 있는데 겉모양은 바닥이 4각형이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좁아져 4각추를 자른 것처럼 돼 있다. 봉분의 끝부분은 동그랗게 마무리돼 있다. 무덤의 밑에는 「요란하게 큰 돌들을 두단으로 둘러놓아 돌기단을 만들었으며」 그위에 흙을 높다랗게 쌓아올려 봉분을 이루었다. 돌 기단 한변의 길이는 22m, 높이는 1.5m이며 봉분의 높이는 8m가 넘고 있다. 무덤내부는 44개의 바위로 쌓은 두개의 무덤칸과 남쪽으로 낸 무덤안 길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문칸」을 두었는데 「안칸」은 방형 평면에 꺾음천정으로 길이(동-서)는 4.2m, 너비(남-북)는 4.18m, 높이는 3.88m이다. 천정은 5단으로 돌을 쌓았고 바닥에는 「큰 판돌」을 깔았으며 무덤 내부의 벽과 천정에는 6백 40여점에 달하는 연꽃무늬를 그려 넣었다. 이 6백40여점의 연꽃무늬는 그동안의 훼손으로 정확하게 판독이 가능한 것은 4백4점에 이르고 있다. 무덤의 앞에는 고려와 조선때 세운 「동명왕릉」이라고 새긴 비석과 석상, 그리고 석조물과 목조건물인 정자각과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이 무덤은 1980년초부터 김일성종합대학 역사연구팀이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1백여점의 금 또는 금동제 제품이 나왔다. 동명왕릉은 서기 4백27년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함께 이전돼 왔으며 동명왕의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는 진파리 10호 무덤으로 불렸다. 이 무덤의 앞에는 정릉사라는 능사(陵寺)가 있었는데 현재는 이 사찰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약 3만㎡인 이 정릉사터는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서 기본구역인 중심구역에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마당 한 복판에 8각의 높은 나무탑이 있었다. 또 그 탑을 중심으로 좌·우와 뒷쪽에 동금당, 서금당, 중금당이 있었고 중금당의 뒤에는 긴 강당이 마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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