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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혁명가극
동지회 1984 2004-11-17 01:30:30
혁명가극 중에서 가장 작품 완성도가 높다는 ···· 5개의 작품을 일컫는 말.

혁명가극이란 김일성이 1930년대 항일빨치산투쟁 당시 직접 각본을 썼다는 연극을 1960년대 말부터 김정일의 지도로 다시 가극으로 각색한 작품을 말하는데 △작품의 주제가 혁명적이고 사실주의적일 것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이 독창적일 것 등 두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할 창작원칙으로 하고 있다.

혁명가극은 음악·무용·연극 등이 종합됐다는 점에서 우리의 악극이나 서양의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사상계몽과 선전·선동을 위해 예술성보다는 규모와 무대를 중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한 작품에 보통 2백명 이상의 배우들이 등장해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의식화된 주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악덕지주나 외세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군중음악과 군중무용을 통해 서사시 형식으로 전개한다.
극의 주요부분에서는 단조로운 곡조를 반복하는 절가와 무대뒤에서 부르는 노래인 방창을 많이 사용하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 : 1971년 초연된 이래 20여년동안 북한의 각 지방과 해외에서 1천3백여회에 걸쳐 공연됐고 2백50여만명이 관람했다는 최초의 혁명가극.
원제목은 김일성이 1936년 8월 만주 만강부락에서 만들었다는 이며 김일성의 이른바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혁명적인 가극건설에 관한 방침을 그대로 구현한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로부터 다른 혁명가극 창작의 모델이 됐고 「피바다식 혁명가극」이란 말이 생겨나게 됐는데 내용은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을남어머니」(순녀)가 일제에 의해 겪는 고통을 통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활동을 찬양하고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
◀ : 김일성이 만주 오가자 일대의 농촌에서 혁명화사업을 벌이던 시기에 만들었다는 연극을 1972년 재창작한 혁명가극.
초연 이후 국내외서 1천1백여회 공연됐고 외국인 32만명을 포함, 연인원 2백20만명이 관람했다는 이 가극은 역시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꽃분이」일가가 겪는 생활고를 반일·반봉건의 계급투쟁으로 연결시키고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을 미화하고 있다.
◀ : 1971년 첫 공연을 가졌으며 「인민상 계관작품」 칭호를 받은 작품으로 6·25동란 당시 북한군 간호원인 「강연옥」이 수차례에 걸친 미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중환자들을 후방으로 후송하는 임무를 완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서는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창조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 1973년 4월 김일성의 61회생일을 기념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일제때 가난 때문에 생이별했던 「황석민」 일가가 북한 공산체제하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을 줄거리로 한 북한체제 찬양물이다.
◀ : 1972년 평양예술단에서 창작·공연한 작품으로 일제시대에 구장을 지냈던 주인공 「최병훈」의 항일정신과 그에 따른 행동을 김일성 찬양과 결부시킨 내용. 김일성에 의해 육성된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투철한 혁명정신과 영웅적 투쟁을 부각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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