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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명철 [2화]
Korea, Republic o 림일작가 0 569 2013-09-04 08:24:34

평양태생인 조명철은 북한에서 엘리트였다.

1959년 4월 만경대구역 봉수동에서 부친 조철준 모친 강하옥 사이의 3남 중 둘째로 태어난 그다. 부친은 정무원(내각) 건설부장(남한의 건설교통부장관)을 지냈고 모친은 인민경제대학(행정간부 양성기관) 통계학 교수였다. 조명철은 부친의 덕으로 김정일과 그 형제, 특권층 자제들이 다니는 남산학교를 나와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했다. 경영업무자동화학부 자동조정학과였다. 4년간 박사원에서 기업관리 현대화를 전공한 그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교수)에 올랐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된 것은 자신의 피타는 노력의 결과이다. 또한 제도의 특성상 출신성분이 좋은 이유도 있었다. 당에 대한 부모님의 충성을 그대로 배운 그였기에 김정일의 신임에 의해 지난 1992년 8월 중국 난카이대학으로 ‘외국실습’(유학)을 나왔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본 조명철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중국은 지난 6·25전쟁에 30만의 중국군을 참전시켜 북한을 피로써 지킨 혈맹국가다. 전후 북한의 재건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중국은 지난 1979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맺고 자본주의경제시장을 과감히 받아들였다. 26년 전 철천의 원수라며 피를 물고 싸웠던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가진 중국의 선택은 현명하였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조명철이 중국에 발을 디딘 날, 과거 적대관계였던 국교를 정상화하는 중한수교가 있었다. 중국의 외교부장과 남한의 외무장관이 북경영빈관 조어대에서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한반도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 등을 골자로 한 6개 항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간의 외교관계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교환했다. 미국과의 수교이후 13년 만에 있은 중한수교는 중국의 경제적 자본주의국가 공고화에 획기적인 사변이었다.

사회주의 정치에 자본주의 경제, 이른바 ‘특색 있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이다. 공산당이 비록 독재를 해도 인민들은 굶기지 않는다. 국가소유의 땅도 50년, 100년씩 개인에게 임대해 준다.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쓰는 것이어서 자기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일할 의욕이 생기고 일한 만큼의 충분한 대가가 차려진다. 자본주의에 흠뻑 젓은 중국인민들의 생활은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풍겼다.

조명철이 유학 2년차 김일성이 사망했다. 중국의 CCTV를 통해 보는 김일성의 조문행사는 그를 번뇌하게 만들었다. 황장엽을 비롯한 당과 국가간부들은 물론 2천만 인민이 마치도 자기 아버지가 죽은 마냥 대성통곡한다. 과거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대통령이 서거했어도 북한주민들과 같은 히스테리 모습은 없었다. 저 정도이면 완벽한 김정일의 통치를 의미한다. 그는 부친 김일성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다.

‘지구상에 저런 나라가 또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없고 주거와 이동을 제한 받는다. 평생토록 사상학습과 정치생활 속에 인민들이 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 그곳이 싫다. 하면 그 반대인 자유민주국가인 남조선으로 갈까?’

기숙사 방에서 혼자 쓰디쓴 술을 마시며 수도 없이 고민한 그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도 많았지만 인민의 독재자 김정일에 대한 분노가 더 강했기에 조명철은 마침내 대한민국으로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그리하여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해외유학을 나온 지 2년 뒤인 1994년 7월 홍콩을 경유하여 서울로 왔다.

그를 조사하던 안기부는 당혹했다.

북한최고의 명문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출신의 망명객은 그가 처음이다. 장관급의 간부인 부친의 그늘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가 젊은 나이에 높은 학위를 가진 것도 의심스러웠다. 위장이 아닐까? 혹은 일시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우범일까? 여러 갈래로 무게를 두고 확인했지만 조명철의 귀순은 순수했다. 문제는 그가 가졌던 학위와 직책인 대학교원, 준박사는 한국의 학제에 전혀 없다.

북한에서는 대학교원을 외국에 내보낼 때 ‘외국실습’이라고 한다. 그 대학에 가서 자유롭게 강의하고 듣고 연구한다. 남한에서는 이런 경우를 ‘교환교수’라고 한다. 정보당국은 “김일성종합대학 상급교원이며 준박사인 조명철이 중국 난카이대학 외국실습 중 한국으로 왔다.”고 하면 알아들을 국민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며 난처했다. 물론 그대로 소개해도 되지만 국민들이 의아해하는 문제다.

하여 안기부는 조명철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한동안 숙고했다. 그의 평양에서 학위와 직함은 굳이 비교하면 한국의 대학교수이고 박사에 해당한다. 따라서 “조명철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며 박사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남북의 다른 학제체제에서 비롯된 문제이니 훗날 있을 수도 있는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결론이 필요다고 결심한 권영해가 직접 이렇게 조명철을 불렀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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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깝 ip1 2013-09-04 08:48:07
    참 문장도 한심하다 문법은 또 틀리는구먼, 국어공부 다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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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쏘기 ip2 2013-09-04 09:50:02
    림일선생님!
    두번에 걸쳐서 글 잘 보았어요.
    미안하지만 ,,,,또,, 아직 소설의 도중이지만 ,,,,독자로서 쓴소리 한마디 할게요.,,,

    림일선생님,,,이게 무슨 소설입니까?
    누구나 다아는 사실에다가,,,, 오직 조명철의원님이 박사라는 것을 인식시키기위해서 깡짜로 조립해놓는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한 인간이 걸오온 길에대한 재설명이며,,,,,,
    또 어떤 인간들에게는 변명이라고 까지 비쳐질 비난받을 그어떤 해명글에 불과합니다.

    소설이라면 아무리 단편이라고 해도 ,,,픽션적으로 그리고 문학예술적으로 잘 꾸며지고 묘사를 시켜야 재미도 있을게 아닙니까.

    미안하지만 님은 아직 붓을 드시기 전에 더많은 책을 읽으시고...그보다도 문학작품에 대한 정규교육을 좀 더 받으셔야 할것 같네요.

    그리고 제발 개인 우상화 비슷한 글 좀 쓰지마세요.
    북한에서 보신 모든 작품들이 개인우상화였던 것이 신물이 막 나지도 않습니까?


    저의 모자란 생각이지만,,,,,,,저글의 제목도,,, 같은 값이면,,,, <조명철>이라고 달지말고,,,,<그도 탈북자였다>> 이런식으로 달고 저런 내용을 전개시켜 나갔다면,,, 탈북자 대중에대한 좋은인식과 함께 정치적 색체도 부각되고 얼마나 좋았겠어요.,

    소설이라고 하면서 개인 이름을 달았으면 <림꺽정> 소설처럼 재미나게 장기적으로 꾸며나갈 무슨 허구라도 있으신가요?


    어쨌든,,좋은글 만들어 보세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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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려줄게 ip1 2013-09-04 18:05:15
    어디가나 뭘 쓰나 작가라는 이사람아 내가 소설 쓰는방법 알려줄게 애야 소설이란 묘사문학이란다 나무라면 풀잎에 매달린 이슬방울, 또 그속에 비쳐지는 하늘 속 새까지 보여야 한단다. 그리고 말이다. 인간을 그린다면 이름석자가 아니라 조명철의 이마주름, 보다는 성격이 보여야한단다 그 성격발전 과정에 갈등과 화합, 내면적인 의지나 슬픔, 행복 이런거말이다. 앞으로 헹님이 가르쳐주는대로 그렇게 써라 잉? 마지막으로 하나 더 훈시할게 내가 작가다! 이게 아니라 저 사람 작가야 이렇게 돼야 해, 알았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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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웃기네 ip3 2013-09-05 14:33:13
    이건 소설이 아니다. 얘야 뭐 소설이라고 글쓴거만 보아도 너무 한심하다 이거다.

    그저 네가 생각하는 글이라고 해라!

    소설이란 기초도 모르는 분 같으신데 부끄부끄러 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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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부장충신 ip4 2013-09-05 18:43:06
    건설부장은 최고의 충신이여야 합니다. 김정일의 '건축예술론'에서 북한의 건축은 사상성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죠. 김일성 충신이 부끄러움도 없이 나서내니 ㅠ 참으로 한심한 구조가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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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으음 ip5 2013-09-05 22:28:51
    이건 실화지 소설은 아니네요. 그냥 한 인간이 걸오온 길을 재조명한것 밖에 없네요.
    글고 림일 선생님 중한수교라 하는것보다 한중수교라 하는것이 올은 것입니다.
    한국인이 자기나라와 딴나라의 문제를 놓고 얘기 할때 한중, 한일, 한미 이렇게 자국을 먼저 놓고 타국을 놓아야 정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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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시민 ip6 2013-09-27 02:35:05
    조비어천가를 쓰신 림일씨. 역시 한국주류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으니 열심히 아부로 연명하시네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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