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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과 김대중-4
Korea, Republic o 서기장 0 235 2009-11-26 13:19:19
남북 화해에 속지말라 à 김대중 시대(時代) 높아지는 반미친북(反美親北) Series-4

한국사회각계층(韓國社會各階層) 에 확산(擴散)되는 주체사상(主體思想)
나는 그때 취재에서 운동권 학생을 만났다.지하의 Leader 는 만나지 못했지만 서울대학에서 운동권에 참가하고 있는 일선 운동권은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전반은 운동권 학생들은 대학을 중퇴해서 노동자가 되어 노동현장에 들어가는 것이
바라는 코-스였다. 혁명이라는것은 노동자가 이르킨다는 Lenin 이 쓴책에 있는 대로이다.
주요(主要)한 적(敵)은 자본가로 되어 있섰다. 그러나 1985년 이후 주체사상이 확산되어와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됐다.

주요한 적은 국내 자본가가 어니고 미 제국주의다. 그런니 먼저 반미혁명을 이르켜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내의 건전한 Bourgeoigie 와 연대할수 있다. Inteligentsia 도 좋고 예술가 나 언론인 이라도 민족의식 이 탄탄 하다면 문제 아니다. 노동자만이 혁명주체가 아니다.라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민족의식을 뚜렷이 지닌 양심적인 사람들은 전부 우리편이다.그래서 운동권 대학생들은 학업을 중퇴 하지말고 각각 자기능력에 맞는 직장을 구해 운동을 계속하면 좋을것이다. 고급 공무원 이 되어도 좋고 금융가관에 들어가도 좋고 Mass-com 에 들어가도 좋다. 변호사가 되어도 좋다 예술가 와 출판계 등 여러방면에서 반미 운동을 하면 되는것이다.

번역자(飜譯者註)
교활하기 끝이 없고 물,불을 불문하는 공산 주의자들의 진면목이 노출되는 순간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오월동주(吳越同舟)도 할수 있는 자들이기에 주변에 있는 유형 무형 의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 시켜놓고 보겠다는 것이 그들이다. 그런데 지나간 옛얘기 같으나 다음이 문제다.

Lenin이 1917년 10월 혁명 완수 기념 축하 Party 석상에서 혁명에 동참한 협력자 들을
격려 하는한편 혁명에 동참한 동반자 일부를 무자비하게 제거 하는 의리배반 행위를 그것도
공개 석상에서 유감 없이 발휘했다.

두뇌가 명석하기로 비할대상 없슬정도의 로시야 정교의 승려 ”라스푸친” 을 독살하려고 술에 독을 혼합 하여 Lenin 이 연거푸 권하는 잔을 받아 마셔도 죽지 아니함으로 이에 기겁을한 Lenin 은 바로 권총을 빼들고 라스푸친 을 향하여 쏘았다. 라스푸친 은 여러발의 총탄을 맞고도 죽지 않고 내장을 줄줄 끌면서 도망 갔다한다.

그다음이 “트로츠키” 차례인데 이 공산 Inteligentsia 는 눈치가 빨라 재빨리 망명길에 올라 ‘멕시코” 로 도피 했다. 그후 자객을 보내 “트로츠키” 에게 자연스레 접근해서 친분을 두텁게 쌓고 신뢰를 얻는데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그 자객은 도끼를 가지고 “트로츠키” 를 타살 했다는 10월 혁명야화(革命野話) 가 전해저 오고 있섰다.

독자 여러분! 로시야 혁명을 배운 김일성, 김일성 으로부터 남조선 무력 적화통일 을 배운 김정일! 그이상 말할 필요가 없서 김,부자 헐뜯기는 생략 하겠습니다.

당시 주요대학학생회는 주체사상파 의 Sect가 관장하고 있섰스나 그학생회가 서울 대학 과
연세대학,고려대학 등의 일류대학으로 재학생을 대상으로 취직강좌 를 개설하고 있섰다.

재벌계 기업에 들어가기위한 면접시험에는 어떤준비를 할것인가 사법사험을 위한 강좌,등
Mass-com 계 에들어가는 강좌도 있섰다.

선배로서 학생운동을 하다 그러한 업계에 파고들어간 경험자가 왔다. 은행이면 노조 위원장이 와서 취직시험은 이렇게 하면 좋다던가 면접은 이렇게 응답하는 것이 좋다고 지도한다.

그렇게 하니 그들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전원 합격하여 각계각층에 주체사상을 터득한 붉은
독충(毒蟲)들이 겉잡을수 없이 확산돼 나갔다.

특히 언론 기관에는 상당히 많이 파고들었다. 또 학교교사로도 들어갔다. 그결과 일본 의
일교조(日敎組) 와 같은 좌경 교원조합이 조직되어 초등학교에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
이였다고 가르치는 교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어 10년쯤지난 지금 사회전체로 상당한 분위기가 확산 되었던것이다.이에따른 북조선에 대한 경계심이 저하된 주된 배경은 북조선 경제가
파탄되었다는 정보가 확산되어 알려지고 이제는 북조선은 무섭지 않다는 사고풍조가 조성되었다.

역으로 전쟁을 이르킨다해도 미국이 이르키는것이며 북조선은 전쟁능력이 없다는 시각이다.
북조선은 약화되었다는것과 순수하다는 양시론(兩是論) 나와서 지금 한국의 일반적인 북조선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풀려가고 있다.

그것이 민주화 라는 미명(美名)하에 점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태양정책 을 주장 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 북조선측 경제사정은 악화일로였지만 한국속의 반미감정을 부풀리는 전쟁준비의 중요한 하나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에 김정일 은 자신(自信)만만한 상황에 있게 된다.

점점 희박(稀薄)해지는 대북경계심(對北警戒心)
1980년대 후반이되니 북조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많은 사람들도 주체사상화 되어갔다.
전에는 공작원 을 빈번히 보내여 공작에 임하게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주체사상을 받아 들여 “북조선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는 운동권이 속출하였다.

최근 북조선이 한국에 공작원을 보낼 때 한국의 월간지 나 신문에 자주 기고(寄稿)하고있는
운동권의List 도 갖다준다. 잠수함 등으로 한국에 상륙하여 한국인으로 변장 한후 전화를
건다, 다방에서 만나 ”실은 내가 북조선에서 왔시요” 라고 밝힌다.고 한다. 북조선에서 왔다해도 신고 하지 않을것이라고 그들은 안심하는 자신을 가지고 있슬정도다. 라 한다.
북조선 공작원 관련사항은 앞서 기술한 강철통신 을 쓴 사나이에게 1989년 북에서 온 공작원이 “지하당 을 조직해주었스면 좋겠다” 는 요청이 있서 주체사상파 중에서 선발된 운동권에 의해서 전국적인 지하당 “민족 민주혁명당” 이 조직되었다.

그후 그는 북으로 들어 오라고해서 잠수함을 타고 북조선에 갔다. 김일성 을 만나고 김일성 으로부터 직접 “한국내에 주체사상을 더욱 확산 하도록” 지시를 받고 공작금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만든 조직은 6.25 전쟁후 최대의 지하당 이였닷고 하며 이 움직임을 한국의 정보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가지 예를 들면 조선노동당정치국원후보 22위 의 여성 거물간부가 물망에 오른 얘기다.
그녀는 북조선에서 일본 경유로 한국에 들어와 지하당 조직을 위해서 왔다. 그 수법은 먼저
일본정부를 속여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 받는데서 시작된다.

1960년대에 북조선에 귀국한것으로 되어있는 이녀는 실은 가짜로 실물은 나다. 나는 북조선에 돌아 가지 않았다. 라하고 그녀의 친척 가족들은 실제 그렇습니다. 라는 풍으로 입을 맞춰 신청 했스니 서류상 귀국한것으로 되어있는 사람이 가짜로 처리된 결과 일본정부는
거물 간첩 에게 특별 체류허가를 해주게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는 형편이였다.

그사람은 원래 북조선 계 엿스나 전향 했다해서 한국국적으로 바궈 한국의 여권을 가지고
1980년 서울에 들어간다. 일본서 돈을 번 여성실업가 로 되어 한국에서 반체제운동을 하고 있는 운동권에 정치자금을 준다.

그래서 서울대학 학생운동권출신자 에게 시선을돌려 북조선에 데리고 가서 노동당에 입당
시키고, 돌아와서 지하당을 조직케하는 일을 해왔다. 그녀는 10년간 서울에서 활동하며 1990년에 잠수함으로 북으로 돌아 갔다.

이 방면에 한국 정보부가 감지하여 거물간첩이 북으로 돌아간후 인 1992년 지하당 운동권을 체포했다. 또한 예는 최근 1997년 대통령 선거의 Timing 으로 북조선으로부터 부부 공작원이 잠수함으로 침투 해왔다 울산(蔚山) 현대 재벌의 대공장지대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자들과 접촉시도했스나 실패한 사건이다.

그들은 먼저 노동운동자 에게 전화를 걸었다. 북조선이 조사한 명부에 들어 잇섰기 때문에 안심하고 가서 북조선 에서 왔노라고 했다. 그러나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역전된다. 전화를 받은 노동운동가는 당국에 신고해 버렸다. 그것으로 간첩사건으로 밝혀젔다.

왜 그렇게 됬는가? 노동운동가 는주체사상을 너무읽어 깊이 알고 있던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정보부는 간첩 사건을 날조 할것이다. 북조선에 융화적인 김대중은 안된다라는등 국민들에게 각인 시킬것이다. 라고 그 운동가 는 생각을 했다.

1987년 선거때는 대한항공 여객기 공중 폭파 사건이 있섰다. 그것도 그는 날조한것으로 알고 있섰다. 1992년 선거때도 전술한 여성거물간첩 사건이 있섰다. 이번에도 무엇인가 해낼것이다고 생각 했다면 자기에게 북조선에서 왔다하는 인간이 지시를 받고왔다 그것은 가짜
로서 정보부의 인간이다. 정보부의 인간이 북조선에서 왔다고하며 자기를 딴지걸어 신고 하지 않앗스니 체포하여 북조선사람과 접촉한 간첩사건을 날조 하려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신고를 하고 기자회견을하여 정보부가 날조하고있다 괘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묘하게 정보부는 모르고 있섰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알아보니 정말 북조선에서온 공작원이 잇섰다. 그 공작원은 잡혀버렸다.

그들은 서울 대학의 명예교수도 접촉하고 있섰다 그 교수는 1970년대 남북 회담때 한국측 대표로 북조선에 갔다오기도 했스나 실은 간첩이였다. 또 남북 휴전선 가까운 시골출신으로
1950년대 중학생시대부터 간첩이 되어있던 다른 사내도 잡혔다.

그는 지하철공사 에 취직하라는 지시를받고 시키는대로 취직해서 전쟁 발발시 서울 지하철을 세워버리는 방법을 연구하라는데 따라 지하를 침수시키는 방법을 연구를 하고 있섰다.
이렇게 여러명의 간첩이 잡혔스나 이것은 당시 사회분위기로 보아 우연한 해프닝이라 북조선에 대한 경계망이 느슨해저 기능이 취약해진데 따라 사회배경 탓이라고나 할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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