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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는 탈북자였다4
Korea, Republic o 강호 1 1357 2010-02-16 18:40:26
두 번째 시도

2004년 9월 중순, 교회 전도사님으로부터 탈북자들을 한국에 보내주는 정확한 단체를 알게 되였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한국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들이 꾸린 단체로서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수많은 탈북자들을 영사관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한 조직이라나, 한국 영사님의 말만 믿고,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인정받고 가슴 펴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나는 다시 한 번 더 와이프를 한국에 보내보기로 하였다.

이번엔 정확한 루트이니 믿어도 좋다는 전도사님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나는 4살 난 아들애까지 딸려서 보내기로 생각하고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심양으로 갔고,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전도사님에게 그들을 인계하고는 급하게 연길에 돌아왔다.

당시 러시아 출장 일정이 잡혀있던 나는 다음날, 흙용 강성 수분 하를 거쳐서 러시아로 들어갔다. 수분하--우쑤리스크 행 열차는 국제열차여서 그런지 거의 기어가는 수준 이였다.

저녁 늦게야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호텔에 도착하여 행장을 풀고 하루의 긴 여독을 풀려고 자리에 누웠으나 몇 달 전 몽고 공안에서 있었던 일들이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며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번엔 아들애까지 딸려서 보냈으니 꼭 무사히 영사관 진입에 성공해야 할터인데....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고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갔지만 역시 마음이 불안하여 도무지 밥술을 뜰 수가 없다. 속 시원히 전화라도 해봐야지 안 되겠다. 긴 신호음에 이어 놀라지 말고 침착하라며 거의 저음상태로 들려오는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오히려 나를 긴장시킨다.

북경하고 전화연결이 안 되여 속을 태우던 전도사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늘아침 KBS 뉴스를 보다가 북경 시교의 아파트에 은신 중이던 탈북자 60여명이 중국 공안에 단속 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며, 아마 이번에도 일이 잘못된 것 같다며 미안 해 한다. 순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전도사님과 어떻게 전화를 끓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공안에 붙들렸다면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뿐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불안한 마음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중국에 있는 둘째 형님에게 전화를 하여 승훈이 엄마한테서 무슨 소식 온 것이 없냐고 물으니, 형님은 단통 {어떻게 바보처럼 그렇게 위험한 일에 아이까지 딸려 보낼 수 있었냐며 제정신이었냐}고 화부터 내신다. 사연인즉, 승훈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북경에서 단속된 60 여 명의 탈북자들은 당일 밤중으로 단동 변방부대에 호송 되였고, 아이가 딸렸거나, 연세가 많은 노인네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이 다음날 바로 북송 되였단다, 승훈이 엄마는 승훈이가 중국국적 소유자라서 가족에서 아이 데리러 오면 그때 북송한다며 3일내에 들어와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아이까지 딸려서 북송시킨다고 하더란다. 네 살 밖에 안 되는 승훈이가 엄마와 함께 북송될 경우 중국 씨종자를 데리고 나왔다고 북한 보위부나 구류장에서 이간 이하의 천대를 받아야할 승훈이 엄마나. 승훈이에게 있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타국에 있는 관계로 손 한번 못 써보고 그녀가 북송되는 것을 현실로 인정해야만 하는 내가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나는 형님에게 수고스러운 대로 전도사님과 같이 단동에 가서 승훈이 만이라도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며 혹시라도 승훈이 엄마와 면담이 된다면 북송 후 그 어떤 경우에도 한국행을 시도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말고 여차여차 해서 잡혔다고 말하라고 일러주고는 전화를 끓었다.

그 후, 8일간의 체류기간을 거의 8년 만 큼이나 길게 보내고 러시아를 떠나 연길 기차역을 나오니 둘째 형님이 승훈이를 데리고 마중 나와 있었다. 아빠를 만나서 반갑다며 뛰여 오던 승훈이가 순간 멈춰서더니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인다. 아들애의 돌발적인 행동에 의아해 하는 나를 보던 형님이 아빠 엄마를 잘 만난 덕분에 애가 변방부대에서 참 좋은걸 배웠더라며 단동에서 애를 데리고 나오는데 {이젠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이 자기는 어떻게 사냐며}승훈이가 많이도 울더란다. 4살 난 아들한테 내가 너무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그날 집에 간 나는 승훈이를 재워놓고 참으로 많이도 울었다. 와이프하나 안전하게 한국에 못 보내고 북송 당하게 만든 무능한 나를 원망하며 울었고, 엄마와 떨어진 4살 난 아들한테 미안해서 울고, 울고 또 울고 . . . . .


또 한 번의 구출작전

이번엔 중국이 아닌 북한을 상대로 또다시 그녀의 구출 작전을 세워야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가까스로 북한에 있는 그녀 형제들에게 그녀의 북송 소식을 전해주고 신의주에서 무산에 이송 되는대로 될수록 빨리 손을 쓰라며 돈까지 보내주고는 이젠 구출할 수 있을 거라며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형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나를 놀래게 하였다. 평소 미국의 R FA 방송을 즐겨듣던 형님은 북한에서 이번에 북송된 60여명의 탈북자들을 생화무기 실험대상으로 한다는 소식을 어제 밤들었다며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안타까워한다.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내 몸이 땅으로 잦아드는 느낌이다. 만약, 형님이 들은 방송이 사실일 경우 그녀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승훈이는 영영 엄마 없는 아이가 된다는 말이다. 나중에 어느 정도 자란 아들이 {다른 집 탈북자 엄마들은 잘만 한국에 가서 가족을 데려다가 행복하게 사는데 아빠는 왜 엄마의 북송을 막지 못하고 죽게 내버려 두었냐?}고 물으면 그때는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그 생각을 하니 불현듯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까무러칠 것만 같다. 아이에게 하루라도 빨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당당한 엄마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내 조급함이 결국 그녀를 이 지경에 몰아넣은 것 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북송 되였다는 사실 외에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는 만큼 맥을 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아들애에게 덜 미안하려면 당장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형편인 나는 또다시 유치원에 아들애를 맡기고는 두만강 연선에 나갔고, 며칠 동안 친구 집에 머물면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북한 경비대 군인과 사업한 끝에 두만강 가에서 그녀의 언니를 만나는데 성공 하였다. 언니는 내가 보낸 소식을 받고 동생이 무산에 이송 되여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나 아직도 소식이 없어 속이타서 죽겠다며, 와이프하나 제대로 못 건사하는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본다. 나는 준비했던 돈을 건네주며 동생이 그 어떤 경우에도 한국행을 시도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말아야 살아날 수 있으니 내 말을 꼭 동생에게 전해주라고 다시 한 번 부탁하였다.

그로부터 십여 일 뒤, 북한에 있는 그녀의 언니한테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동생이 무산에 이송 되였으니 밥을 나르라}는 군 보위부의 통지를 받고 동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다 행이도 그녀가 한국 기도를 견결히 부인하여 정치범 수용소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앞으로 노동단련 대에 나온 후 사람을 찾아서 뒷돈을 쓰면 구출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휴우~~ 또다시 긴 한숨, 그녀를 구출할 수 있다는 언니의 그 말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미국의 RFA의 방송소식에 불안하던 마음에 어느 정도 평온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 후, 간신히 보위부에서 풀려나고, 노동단련 대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그녀는 형제들이 불철주야 노력한 끝에 다행이도 풀려났다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잘 있슴까? . . . .승훈이가 보고 싶어 죽겠슴다"며 시작된 그녀의 전화는 끝날 줄 모른다. 돈을 주기로 하고 힘들게 전화기를 빌려가지고 산에 올라와서 전화한다는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강을 넘어오고 싶으나 노동단련 대에서 풀려 난지 얼마 안 되다보니 주변의 감시가 엄청 심하다며 당분간은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단다. 아무려면 어쩌랴, 그녀를 조금 늦게 만나야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아쉽지만 그래도 살아서 승훈이 옆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나는 그녀에게 절대로 서뿔리 움직이느라 하지 말고 최대한 침착하라고 일러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뜻하지 않은 시련

그렇게 몇 개월간 두만강을 건널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가끔씩 전화하던 그녀는 2005년 7월에 드디어 무사히 강을 넘어서 연길에 들어왔고, 갈라졌던 우리가족은 10개월 만에야 다시 모일수가 있었다. 연길에서 승훈이를 끌어안고 슬피도 울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북송당한 후 북한에서 아마 평생의 고생을 다 겪은 것 같다는 그녀는 다시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며 정색한다. 나도 더는 그런 모험을 시키면서까지 또다시 아내에게 한국행을 시도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수시로 들이 닥치는 공안의 탈북자 단속은 중국 땅에서 우리를 시름 놓고 살수 없게 하였다.

한국행을 아예 포기하고 연길에서 살아갈 생각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집 장식을 하던 어느 날, 예전에 한국 삼촌을 찾을 때 나의 도움을 받았던 순철이라는 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삼촌하고 연계가 안 되여 혼자 힘으로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수소문 하며 용정, 왕청, 연길 등지를 헤매며 다녔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라며, 있을 데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처량했다. 사실 심양에서 사업하는 한국 삼촌은 몇 번의 도움에도 자립을 못하고 계속해서 자기만 바라보는 북한 친척에게 질린 나머지 더 이상 도움을 주고 싶지 않다며 연락처를 바꿔버렸던 것이다. 사장의 부탁으로 새 전화번호를 가르쳐줄 수 없었던 나는 노천에서 고생할 그 애에게 미안했고, 그런 마음에 여관방이라도 안배해 줄 생각으로 약속장소에 나갔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보아도 벌써 나와 있어야할 그 순철 이는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해보니 몇 분만 기다리면 도착한다며 부근의 상점에 들어가서 기다려 달란다. 그 애에 대해 아무 의심도 없었던 나는 8월의 무더위를 식힐 생각으로 옆에 있는 개인 상점에서 음료수 한 병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후 그 애는 몇 명의 건장한 사내들을 달고 들어왔다. 미처 손을 써볼 새도 없이 상점 안에서 공안들에 의해 붙들린 나는 곧바로 주공안국 형사경찰대에 호송 되였다. 어떻게 자기를 도와 한국의 삼촌까지 찾아준 사람한테 이런 비굴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순철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한참 후 형사경찰대 심문 실 철제의자에 강제로 앉혀진 내 손목과 발목엔 서슬 푸른 수갑이 채워졌고, 몇 명의 경찰들이 심문 석에 앉는다. 그중 한 경찰이 말한다." 당신이 지금 앉아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는가? 전문적으로 살인범만 앉는 곳이란 말이야. " {뭔가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순간,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공안에서 아무리 잘못짚은 것이라도 살인에 관계된 일이라면 풀려나기까지는 엄청난 시련을 각오해야 될 듯싶었다.}

몇 번 정도 상냥한 말투로 왜 사람을 죽였냐며 물어보던 경찰들은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한결같은 내말에 구타를 시작한다. 구두 발에 채워서 철제 의자가 넘어지면 또다시 일으켜 세우고는 때린다. 주먹에 맞고 발에 채워서 이리저리 넘어 지다보니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수갑은 더 이상 조여들지도 않는다. 어찌나 맞았던지 여기 저기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바닥에는 핏 자국이 선명하다. 이러다가는 맞아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반 주검이 되도록 얻어터지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한 경찰이 누군지 모를 사회사람 두 명을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한참을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또다시 경찰을 따라서 나간다. {저 사람들의 행동은 무슨 뜻이지?}

그 후 한참동안 심문 실에 혼자 남겨진 나는 방금 전 들어왔던 두 명의 뜻 모를 행동에 대하여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그렇지, 머리를 저었다는 것은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사건현장을 목격한 증인들일 것이다.} 다행이도 풀려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다시 잡혀온 아내

십여 분 뒤, 심문실문이 열리며 경찰관 한명이 나한테로 오더니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수갑을 벗겨준다. 수갑이 떨어져나가는 순간, 꽉 조여 있던 손목과 발목은 피가 통하며 팅팅 부어오른다. 어떤 종류의 살인 안건인지는 모르나 그나마 현장에 증인이 있었다는 것에 오히려 내가 고마운 현실이다. 경찰관은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미안했다고 나를 위로해 준다.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흥안 촌인가 하는 곳에서 순철이를 비롯한 탈북자 세 명이 주민 집에 뛰여 들어 돈을 강탈하다가 이를 거절한 주인을 살해 했는데 두 명은 도주를 하고 순철이만 잡혔단다. 동범 자를 추궁하던 경찰들은 순철이를 심문하던 중, 순철이의 핸드폰을 조회 하다가 내 번호를 알게 되었고, 이들은 내가 탈북자들과 같이 사람을 죽인 것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콧등을 깬다더니 내가 그 꼴이다. 그런데 이때 또다시 심문실 문이 열리더니 생각밖에도 승훈이 엄마가 경찰한테 밀려서 들어온다. 아~~아 미칠 지경이다.

다행이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이건 또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순철이를 통하여 와이프가 탈북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경찰들은 몰수했던 나의 신분증에서 우리 집 주소를 알게 되었고, 내가 살인 사건에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벌금이라도 받아낼 심산으로 와이프를 연행해왔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런 경찰들이 비열해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그날 나는 벌금 만 오천 원을 내고서야 와이프를 데리고 집에 올수가 있었다. 이미 집 주소까지 알게 된 공안에서는 탈북자 단속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서는 눈을 감아주는 대신 벌금을 내라는 일들이 그 후에도 수차례나 있었다.

경찰들한테 이런 형식으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던지 어느 날 와이프는 또다시 한국행을 시도해 보겠단다.

결국 나는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국행에 성공한 한 탈북자와 전화통화를 하여 믿을만한 브로커를 소개 받았고 2006년 가을에 아내가 무사히 몽고국경을 넘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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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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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손02 2010-02-16 19:13:57
    지난 날 있었던 님의 노고에 감사드리오며,
    님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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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박눈 2010-02-16 20:15:28
    참 착한 당신이였기에 오늘이 있을수있다고 봅니다 당신과같은 좋은 분을 만나신 당신의 안해분이 참 부럽네요 힘든일 아픔이다지나갔으니 더이쁘게 서로 더 아껴주며 살아가세요 .님들에 가정에 행복이가득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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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 2010-02-16 20:32:16
    좋은 댓글에 감사드리며, 경인년 새해에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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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님짱 2010-02-16 21:45:04
    지금은 한국에서 무사히 두분이서 잘살로 계신가요?
    지금도 한국생활이 녹록치는 않겠지만 행복하셨으면 좋겠네요.
    조선족도 좋은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이제 중국에 가셔서도
    다시 잡혀갈일은 없으시겠네요. 다행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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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수성가 2010-02-16 23:04:10
    인고의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인내와 끈기의 한민족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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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하다 2010-02-17 03:55:00
    강호님 고맙습니다.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는 태연한 여자들이 있어서 웬일인가 했더니 님 같은 남편들이 옆에 계셨군요. 탈북자들의 고난의 역사를 증명 하는 훌륭한 글입니다. 앞으로 책으로 출간하셔서 역사를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어로 뿐아니라 중국어로 출판하셔서 중국의 탈북자 정책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분과 이제 행복하게 잘 사시는 모습도 우리 탈북자들의 모범이 될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더 많은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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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 2010-02-17 10:10:01
    끝내 성공하셨네요.
    참 심성도 착하고 의지도 강하고 훌륭한 분이세요.
    생사를 걸고 온 한국에서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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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지랭이 2010-02-17 12:14:09
    강호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참다운 한여인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감명깊습니다..남다른 당신의 인간애와 착한 심성과 열정에 머리숙여 존경심을 표합니다..
    아마 지금쯤 연세가 30대 중반으로 추측되는데..분명히 확연코 단정하건데
    당신은 이 세상에서 분명히 성공하고 남으로부터 큰 인정을 받을겁니다.
    그대같은 사람이 있다는 건만으로도 세상이 밝게 보입니다.
    아내를 구출하겠다는 그런 열정으로 성공한 삶을 영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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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 2010-02-17 12:24:22
    뜻깊은 댓글 감사드리며, 아지랭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잘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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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쟈기 2010-02-17 18:19:52
    강호님의 글을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내가 알고 있는 분이 아닐까 싶네요... 내용이 너무 비슷하여...이름만 다를뿐... 2006년도 입국.. 연길아파트.. 아들과 세식구...1년전까지만해도 연락을 했었는데 핸드폰을 바꾸면서 연락이 끊겼어요...행복하게 잘 사시고 있죠? 와이프한데 인사전해주세요... 그런 속사정이 있는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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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 2010-02-17 19:22:35
    안녕하세요? 대략 누구신지짐작이 가긴합니다. 혹시라도 댓글 보시면 lg163888@yahoo.co.kr로 연락주세요.내가 생각하는 분이 맞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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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지랭이 2010-02-18 11:01:55
    강호님께서는 어느분야 어디에 있든 소중한 분이며
    때론 힘들드라도 절대 좌절하지말고 열심히 노력하시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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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 2010-02-18 14:11:54
    염려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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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야 2010-02-18 19:31:52
    내가 니 애비다.

    이놈아 집에 전화도 하고 그려. 이노무 자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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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할놈아 2010-02-18 20:26:49
    삼대가 멸족할 이노므 자슥아, 도대체 어떤 썩을놈인데 아무 망발이나 서슴치 않는거냐? 그러다 크게 다치는 수가 있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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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쟈기 2010-02-18 20:01:43
    강호님! 제 전번은 알고 계실텐데 전화도 없고... 너무하시네용...짐작이 간다면 전화주세요...제 전번은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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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세용 2010-02-18 20:29:36
    제 사연을 잘 알고 있다기에 글에 나오는 전도사 님인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저의 폰 번호를 아신다면 먼저 저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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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쟈기 2010-02-19 22:51:04
    강호님! 작년 10월경에 전화를 잃어버려 전번 모두 날려보냈어요... 그래서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제가 아시는 님 아니신가요?
    님은 2007년도에 여기로 오셨구요. 맞으신가요? 마지막 통화를 작년에 하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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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 2010-02-19 23:52:06
    2007년에 한국에 온건 맞구요. 제가 위에다 메일주소를 남겼는데이곳에서 이러지 마시고 메일로 누구라 말씀주시면 금방알수 있을것 같네요. 만약 글에 나오시는 전도사 님이라면 꼭좀 메일 부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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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g 2010-02-20 01:42:15

    - fag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2-20 01: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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