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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식품 사람들 1 [연속기획] [펌]
Korea, Republic o 통일인 2 440 2007-01-31 11:02:57
백두식품 사람들 1 [연속기획]
자유북한 방송

‘탈북자 1만 명 시대, 우리가 그들의 희망이 되어.’

스스로를 주변화, 이등국민으로 생각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탈북자들은 이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여러 분야에서 떳떳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된 탈북자가 있고 당당히 시험을 치루고 서울대에 합격한 사람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성공한 기업인도 있고 예술인도 있으며 남들 보기에는 번뜻한 직업이나 명예가 아니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탈북자는 너무나 많다.



▲느릅 찐빵을 생산하는 백두식품 직원들.

자유북한방송은 탈북자 만 명 시대를 맞아 남한에서 ㈜백두식품을 설립하고 공장을 키워온 백두식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탈북자 자활공동체 ㈜백두식품은 성공한 탈북자들의 정착사례다. 북한에서 느릅나무 가루를 들여와 냉면과 찐빵을 생산하고 있는 백두식품은 6명의탈북자가 1995년‘백두식품’을 창업하면서 차별화 된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사회에 첫 선을 보였다.



▲백두식품에서 생산되는 제품들 .

백두식품의 주재료가 되고 있는 느릅나무는 그때만 하여도 남한에서는 식품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 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느릅에 대한 자료를 찾고 식품 연구를 한 결과 식약청으로부터 식용승인을 받게 되었다. 이들의 첫 상품은 북한산 느릅냉면과 찐빵, 그리고 느릅차다.

남한 사회에서는 생소한 느릅 식료품이지만 질과 맛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이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남한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식품이 되었다. 백두식품의 줄기 찬 성장 뒤에는 백두식품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

[다음은 백두식품 영업이사 정재송(43 탈북자)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질문 : 언제 한국에 왔습니까?

대답 : 1998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온천군 모피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인민군에서 9년을 복무하고 공장에 배치 받아 거기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셈이죠.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 왔습니다.

여느 탈북자들도 그러하겠지만 정재송씨는 어렵게 한국으로 입국하였다고 한다.모피공장에서 외화벌이 사업을 하던 정재송씨가 두만강을 넘은것은 1996년. 두만강을 넘어 북경 대사관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후 배를 타고 홍콩으로 가던 중 공안에 잡혀서 도문으로 끌려나와 6개월 간 감금된 후 호송 도중에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상해를 거쳐 베트남으로 들어 온 정씨는 다시 중국으로 나갔다가 미안마 대사관을 거쳐 오랜 고생을 이기고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질문 : 어떻게 백두식품에서 일을 하게 되었나?

답 : 1999년에 한국사회에 나왔다. 강릉에 임대아파트를 받고 그곳에서 살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건설장에서 노가다도 해보고 중소기업에서도 일을 하고 ...그러다가 탈북자들이 모여 냉면공장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다.

질문 : 처음 시작한 일이라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대답 : 그렇다. 우리 공장의 주재료가 느릅인데 느릅은 약재로 등록이 되어 식품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식약청의 말 이였다. 남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했지만 사실 우리 북한 사람들에게는 느릅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북한에서는 느릅은 좋은 약재로 쓸 뿐만 아니라 귀한 음식재료로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을 책임져 왔다. 식약청에서 느릅을 식품으로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식료품으로 쓰인 선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느릅을 식료품으로 쓰면 전멸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 모르고 한 소리이다. 느릅나무는 번식이 빠르고 또 재배방법이 있다. 우리가 느릅으로 식품을 만들 수 있고 또 느릅나무를 번식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찾아냈더니 식약청에서 마침 내 허가해주었다. 지금은 북한에서 집적 들여온 느릅나무로 상품을 생산한다.

질문 :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가?

대답 : 처음 해 본 일이라 의욕은 많았지만 무엇부터 할지 갈팡질팡 할 때가 많았다. 좋은 식품을 개발하려고 몇 개월 동안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린 적도 있었고 계속되는 실패로 좌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난다면 실패자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악스럽게 달라붙었다. 그렇게 해서 첫 제품이 나왔을 때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생산만 하면 팔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확실한 품질 보증뿐만 아니라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거래처가 있어야 했고 홍보나 마케팅 전략도 필요했다. 백두식품에서 우리는 모두가 사장 이였고 직원이였다. 처음에는 수입이 없어서 월급도 없었다.

그러나 공장을 세운지 2년 만에 자리가 잡히기 시작하여 그 후 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만든 느릅냉면을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하게 계속 찾는다. 이제는 소문도 많이 나고 영업실적이 좋아져서 웬만한 중소기업 부럽지 않다.

백두식품 공장장으로 있다가 최근 영업 이사를 맡고 있는 정재송씨에게는 말 못하는 아픔이 있었다. 한국에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북한에 있는 가족 (안해와 아들, 딸)을 브로커를 통해 데리고 오다가 중국에서 그만 공안에 발각이 되어 모두 북송된 것이다. 일부러 그 일을 잊으려 밤낮으로 공장 일에 매달린다는 정씨는 주말이면 북한이 보이는 임진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정재송 : 나에게 있어서 백두식품은 내 집이고 공장사람들은 형제나 마찬가지이다.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으로 일어났던 것처럼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제품으로 계속 승부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온 많은 탈북자들에게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본보기를 주기 위해서라도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백두식품의 지사와 대리점만 해도 전국에 14개가 있고 올해는 더 많은 지사와 대리점이 생겨날 것이라고 정씨는 말했다. 그러면 영업이사로 있는 정재송씨가 더 바빠진다. 정재송씨만이 아니라 백두식품 사람들도 더 큰 목표를 찾아 뛰어다닐 것이다.

이동진 기자 whrnrxhddlf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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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서 2007-01-31 11:54:15
    성공한 탈북자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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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2007-02-01 17:06:34
    꼭 성공하세요. 우리 새터민님들이 처음으로 창업하신 사업인데 사업이 잘되셔서 꼭 부자되시기 바랍니다...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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