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씨와 전두환씨가 정말 독재를 하였나요? |
---|
탈북자로써 이해가 안되네요 보통 북한에서는 파업이나 데모를 하면 전부를 사형을 하고 가족들은 전부 정치범수용소에 감금시켜 평생동안 나올수 없는데... 박정희때나 전두환때의 화면자료를 보니까 수만명의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파업과 데모를 하는것이 보여서...그때도..그들을 전부 다 죽이고 그가족들도 수용소에 보냈나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려면 무조건 보위부의와 안전부에서 허가해준 허가증을 가져야 이동할수 있는데.. 박정희때나 전두한때도 지방같은데 갈려면 자유롭게 갈수 있었다고..하더라구요..?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그게 민주주의 정통성이라는것이지요. 즉 정통성을 이어받은 정권은 국민이 직접 선출했기에 권위가 있는것입니다. 그 권위가 있기에 지지율이 바닥인
노무현 대통령도 권위가 있는것입니다.하지만 저 두사람은 군인 신분으로
구테타라는 행위로 집권했습니다. 즉 정통성이 없다는것이지요.
박정희씨는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세운 좋은점도 있었지만 어두운점도 있었습니다. 거의 18년가량 집권을 하며 반대세력 즉 야당과 언론 그리고 민주인사및 학생들을 감옥에 넣고 고문했으며 정경유착이라는 고리를 만든것도 사실입니다. 전두환씨역시 그런점에서 자유로울순없겟지요.
하지만 다행스러운것은 한국 국민들은 그런독재에 저항했고 그 저항을 한 국민들을 북 김일성이나 그 하수인처럼 무자비하게 할순없었겟지요. 그런점에서 북의 국민들도 독재에 맞서 싸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을 비난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게시할수있는것도 그들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겟지요. 그리고 당시 아무리 독재사회여도 북처럼 지방까지 자유롭게 이동하는것까진 막진 않았지요.
지금와서 저들 두분대통령을 잘했니 못했니 하는것보다 잘된점과 잘못되었점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잘못된점이 있었다면 다시는 그런일이 일어나지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겁니다.
물론 80년대만 해도 뒤지게 패면 말이 쏙 들어 갔는데
요즘은 경찰에 신고합니다.말은 같은데 정확한 기준없이
쓰고 있습니다.서로 인식차이가 틀려서 북에서 오신 분들은
이해를 못하실 수도 있겠죠.남한에서 조금만 자유를 억압해도
무조건 독재니 탄압이니.막 합니다.
북한을 미화하는 겁니다.아니면 북한에 대한 위기의식이
좀 부족하거나.그냥 김일성김정일이 한 60넘 넘게 했고
박정희가 18년 했으니까.남한의 독재는 북한의 60분의 18수준이
최악의 독재였다고 보면 됩니다.혼자 해먹는게 독재니까요.
남한은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사회로 출발해 거주,이전,집회, 결사, 종교, 정치적 자유가 최고법인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정권교체는 정해진 대통령선거에 의해서 하게 되어있는데, 625이후 돌아가는게 답답하다고 본 박정희 장군 등 군인들이 당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멋대로 다시 대통령선거를 해서 박정희장군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엇습니다. 이건 군사쿠데타라 해서 엄연히 불법입니다. 그땐 대통령 임기가 5년씩 2번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박통은 이미 궤도에 오른 경제발전을 차질없이 완성시킬 자는 당신 뿐이라고 판단하고, 다시 헌법을 위반하고 3번째, 4번째 대통령선거를 치뤄 당선되었습니다. 자연히 지성인들인 대학생들 중심으로 반발하고 서울에선 데모대와 경찰이 곧잘 충돌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주요 반항하는 핵심 정치가, 대학생들을 잡아다 구타하고 형을 가했습니다. 당시 남한도 좀 낙후되어서 경찰에 끌려가면 약간의 구타가 곧잘 가해지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반정부활동을 하다, 또는 정부비판하다 경찰에 가 몇 대씩 줘맞은 사람들 좀 있습니다(아마 한 1-2천 명?). 거기다 당시는 냉전시대라 반정부활동가들 중에는 통일과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실제 반역자들도 있었겠지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과장되게 혐의가 씌어져 사형당한 사람들도 있는데, 좌우간 박통시절 반정부활동으로 사형당하거나 억을하게 죽은 사람들 다 합치면 최대한 2,30명이 고작입니다. 형받은 사람들 잘해야 수백명? 그게 다입니다. 죄목은 간첩죄 아니면 반정부활동. 그러니 박통체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신문기사, 정치활동, 인쇄출판, 집회의 자유가 제한되었습니다. 기타 헌법에 명시된 자유는 전혀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잘난 박통의 경제실적은 지금와서 존경되는 거지, 박통은 죽을 때까지 경제전문가들의 모진 비판에 시달렸는데, 전혀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당신 정권연장에 대해 반대투쟁을 하면.....박통 암살후 전두환 장군은 불법으로 상관인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사실상 정부를 장악했읍니다. 광주에서 격렬한 반정부데모를 특수부대를 보내 과잉진압하다 시민들과 충돌해 시민들은 예비군무기를 탈취해 반항하고, 특수부대는 시민 수백명을 죽였습니다. 국민의 군대가 국민을 마구 죽였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두환장군은 결국 헌법을 중지시키고 다시 대통령선거를 해 당선되었습니다. 왜 국민들이 당선시켰냐? 분위기를 그 쪽으로 몰아갔고 당시만 해도 남한국민들도 꺼벙했죠. 전두환정부역시 정부를 비판하는 데 대해선 일부 국민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따라서 다시 대학생들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번엔 잠에서 깬 시민들도 대대적으로 합류했고, 나중엔 국군 간부와 주요 장군들도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에 대한 거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명백히 했습니다. 남한국민들도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 서서히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완성시켜나갔던 것입니다. 북한같은 공산주의사회의 독재와는 크게 틀리죠. 강제노동수용소? 오직 공산주의국가에서 있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그러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 그러므로 정치적 자유를 포함해 어떤 불법적인 제한이 가해질 수 없다는 것. 이 점에선 대통령, 재벌회장부터 거지까지 평등하다는 것. 잘 아시겠죵? 마구 함부로 비판자를 처단하고 자유가 없는 북한체제를 얼마나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당시 김대중이 했으면 나라가 어찌되었을까.?
그당시 국민들에게 통했을까.?
남미지역을 상상하면 좋겠지요.
국민들이 의식이 바로 되었다면 노태우는 대통령이 못되었습니다.
난 그점을 지적하는거요.박통과 김대중선거때 전라도사람들 전부
밀가루 받아먹고 박통 찍었어요.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속에
앞서가는 선진의식은 오히려 부조화를 만들 뿐입니다.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독재를 비판하기 시작한건 박정희죽기
몇년 전부터 입니다.그리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국민은 선진적인 의식을 지니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만일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가
포기하고 김대중이 되었을때 김대중은 과연 요즘같은 정치를
할수 있었겠나하는 점입니다.그당시는 왜놈 종살이 하던 놈도
왜놈 금고차지해서 국회의원 해먹던 시절 입니다.
술한잔과 돼지고기 한접시면 서너명이 술사준놈 찍어주던
시절에 난 민주주의는 불가능 한걸로 보고 다만 박정희 말부터
독재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서서히 무지랭이 국민들도 눈을 뜨기
시작 했다는걸 압니다.5,18로 갑자기 번쩍 뜨인게 아니구요.
흑백 TV나온 카터를 보고 그러시더군요.여기저기 건물을
처다보자 아마 커터가 월남에서 엄청 훔처서 건물은 잘
때려지얻구나라고 생각하실거라구요.계란값 오르자 박통이
라디오에서 오르면 국민여러분 먹지 마십시요.안먹으면
계란값은 내립니다라고 했었지요.그당시는 그것이 통했던
시절입니다.요즘은 말도안되는 경제정책이라 비웃지만
오히려 요즘 말이되는 정책을 했으면 안통했을 겁니다.
아무나 양계장하던 시절도 아니였고 언제 기술익혀
언제 생산합니까.
지방에서 고등학교는 나와야 안넘어 갔다.
난 그때 다섯살.
선생님 강좌에 박통과 김정일 독재를 잘 비교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정말 황선생님은 문제의 핵심을 딱 짚어 내는데 고수이십니다.
혼란한 문제일수록 선생님 강좌 들으면 모든 것이 명료해집니다.
선생님 연세가 높으신데.... 저의 간절한 바램이 있다면 선생님이 김정일 보다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독재 무너뜨릴때까지 나침반 역할이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