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들의 “이판사판” 생활 |
---|
자유북한방송 2008-05-06 [북주민들 국제전화로 외국의 친척들에게 “도와달라!”는 공공연한 요청 이례적인 일] 1990년대부터 근 십여 년이 넘도록 생활난에 시달린 북한 주민들은 인젠 죽음도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본 오사카의 한 재일동포는 북한에 있는 친척이 “힘든 생활을 애써 도와 달라!”며 “작년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한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친척들의 이와 같은 전화는 최근 들어 이례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30년간 수십 차례의 전화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살기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주민들, 탈북자들도 알고 있듯이 외국의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비밀서신이나 우회적인 방법을 적용했다. 북한에서 외국으로 통하는 전화는 모두 도청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외국의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는 “김정일=조국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죄아닌 죄를 쓰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식을 전하며 북한에도 언론의 자유가 생긴 것 인지, 아니면 정말 더 이상 살 길이 없어 당국도 어쩔 수 없는지 매우 궁금하다고 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전에는 일본의 친척들과의 전화나 편지에 살기 힘들다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북송을 선전하던 시기도 그랬고 또 그 다음에도 북한은 살기 좋은 지상낙원으로 선전해 왔으므로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이 조국이라 불리는 고통의 실체를 알게 되면, 자연히 김정일 독제체제 비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보위부는 이를 엄격히 통제했다. 재일동포들이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유린, 가난과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북송된 사람들도 일본의 친척들과 연계를 해도 단 한 번도 북한내부의 현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만약 그것을 말하면 또 정치적으로 분석되어 정치범 수용소나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심지어는 고향방문단으로 조총련계 친척들이 북한에 친척방문을 왔을 때도 옆에 보위부 성원들이 따라 다녔으므로 하고 싶은 말들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북한에서 국제 전화를 하려면 각 도 소재지에 있는 체신소(우체국)에 신청을 하고 전화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야 도청과 감시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이나 북송교포들도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북송교포들은 일본의 친척들과 통화를 할 때도 조심스럽게 하면서 가능한 북한사회의 실태를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말을 한다 해도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정 내의 사건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며 뜻을 전한다. 그 수법은 다양하다. 가족의 결혼식이 있는데 돈이 부족하다든가 아니면 교통사고로 입원해서 고급 약이 필요해서라든가 등등... 하여튼 이러한 구실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전화로 노골적으로 생활난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는 것은 “나 죽여라!”라는 말과 같다. 북한 주민들의 이 마음을 잘 깨닫지 못한 외국의 친척들은 북송된 친척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생활이 무척 어려운 조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북한당국도 기존의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입장인 것같다. 북한사회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주성, 자유가 없는 나라이다. 그가 북송된 친척의 거짓 없는 도움 요청을 언론의 자유로 해석하면 오해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북한주민들의 삶은 이판사판이다. 개인 장사를 하는 주민들이 장사를 단속하면 책임비서에게 항의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그 사례가 남한 언론에 보도된 청진시의 가두 아줌마들의 집단적인 항의 등이 반영해주고 있다. 이것은 국민들의 생활은 보장해 주지 않고서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김정일 독재정권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반항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근거이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이 흔히 하는 말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엔 무서울 것 없다”이다. 박미영 기자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좋은 글 이네요.
북한사람들 넘 불쌍해요~
하루빨리 백성들을 해방하고 자유를 느리면서 인간답게 살도록 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