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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2 - 홍은영

빛을 찾아 만리 (추방)

홍 은 영

어떤일이 있어도 살아만다오!

그때 전 그 길로 잡혀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더 울었는지 몰라요.

호송차 안에서 제가 자꾸 울자 옆에 앉았던 나이든 보위원이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지방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위안해 주더군요.

그리고는 슬그머니 창쪽으로 얼굴을 돌렸어요.

그때야 전 우리가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방에 쫓겨 날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던지...... 보위원들은 절 집에다 실어주고 돌아갔어요.

절대로 이튿날 아침까지 자리를 마음대로 떠나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고서.

집에 올라가니 언니가 벌써 와 있더군요.

그런데 집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아침에 아버지네 직장 사람들이 와서 꾸려주었다고 하는데 되는대로 묶어 놓은 짐짝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고 장판은 온통 구두 발자국 천지였어요.

언니가 대충 청소한 뒤끝이라고 하는데도 그 꼴이니 처음에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더군요.

문득 그 집에 이사오던 생각이 났어요.

아버지는 그 집을 받으려고 통일거리 건설장에 나가 3년이나 일했어요.

그리고도 마지막에는 층 호수 배정문제로 간부들에게 뇌물까지 바치고서야 겨우 받은 집이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집을 받았는데 힘든 기억이 잊혀질 만큼 집은 너무 훌륭했어요. 그 집을 받았을 때 아버지보다도 어머니가 더 기뻐했어요.

그 집에 처음 이사오던 날 어머니는 우리들을 보고 문밖에서 잠깐 기다리라 하고는 짐 보따리 속에서 술 한 병을 꺼내들고 먼저 집안에 들어갔어요.

아버지조차 못 들어오게 하고 말이에요. 아버지가 의아해 하며 “뭘 하려고 그러는가” 물으니 어머니는 대답 대신 그저 잠깐이면 된다고 했어요. 잠시 후 어머니가 들어오라고 하여 들어갔는데 집안 곳곳에서 술 냄새가 났어요.

“여보 당신 도대체 뭘 한거야. 왜 사방에서 술 냄새가 나는거야?”

아버지가 묻자

“호호.. 다 좋으라고 하는 일이에요. 제 친구언니가 그러는데 새집에 이사 들 때에는 꼭 이렇게 액막이를 해야 한데요”

어머니가 생글거리며 하는 말이었어요.

“뭐, 액막이? 허허, 그래 그 놀음을 하느라고 방마다 술을 뿌렸단 말이요?”

“아이, 방구석마다 조금씩 뿌렸는걸요”

어머니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들어간 우리 집은 정말 너무 좋았어요.

방만해도 네 개씩이나 되고 부엌 따로 화장실도 따로 있었어요.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어 목욕탕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얼마든지 목욕할 수 있었어요.

더구나 방 하나 부엌 하나뿐인 집에서 살다 이사왔으니 꼭 흥부네 박 탄 기분이었어요.

어머니는 집을 정말 기름기 돌게 거두었어요.

그래서 와보는 사람들마다 우리 집은 어느 다른 나라 기자들이 와 본다해도 정말 흠 잡힐게 없겠다고 칭찬했지요.

그러던 우리 집이 불과 몇 년만에 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하고 아버지는 잡혀가고 우리들까지 지방으로 쫓겨가게 되었으니 그때 액막이를 잘못했던 모양이지요.

아무튼 우리 집은 꼭 도적 맞은 집 같았어요.

“은영아. 너도 빨리 네 책이랑 꾸려라. 촌에 쫓겨간다고 공부까지 그만둘 수야 없잖니”

언니는 역시 언니였어요.

우리 언니는 원래 설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시 설계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진일마른일 가리지 않고 가사일 전부를 돌보던 언니에요.

역시 언니는 오늘 같은 일을 당하고서도 촌에 가서 사는데 필요한 것들을 따로 꾸리고 미처 가지고 가지 못할 가구들은 식량 등과 바꾸며 분주하고 돌아다녔어요.

우리는 늦게까지 일을 했어요 일을 다 해 놓고도 왜 그러는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어요.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이어서 그랬는지 몰라요.

언니가 휑덩그렁한 부엌에 앉아 무엇이가 골몰히 생각하더니 슬그머니 일어나서 어디론가 나가더군요 저만 혼자 남았어요.

갑자기 너무 조용하니 집이 마치 무덤 속 같이 생각되었어요 저도 일어나 밖으로 나갔어요

아버지가 있을 때 늘 함께 거닐곤 하던 공원으로 갔어요.

그 밤 따라 별이 유난히도 많더군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걷던 보도를 걷다가 돌 의자에 앉아 보았어요.

그리고 가만히 아버지가 즐겨 읊으시던 시조를 읊어 보았어요.



『이 몸이 죽어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락락장송 되였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 시조였는데 전 그저 듣기만 했어요.

돌 의자에 앉고 보니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나더군요. 아버지가 잡혀가기 전날 밤이였어요.

그날도 저녁 식사 후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그곳 돌 의자 있는 곳으로 나갔는데 암만해도 전부터뭘 예감하고 있는 기색이었어요.

그날 저녁 아버지는 홀로 앉아 술을 마시면서도 그랬지만 밖에 나왔어도 내내 말씀이 없었어요.

그 돌 의자에 앉아서도 멍하니 무슨 생각만 깊이 할뿐 말이 없었어요.

전 그때 아버지한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철없이 또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어요.

정말 저의 아버지는 옛 이야기를 아주 재미나게 할 줄 아는 분이었어요.

소년장군 관창데 대한 이야기, 계백장군에 대한 이야기, 때때로 중국 수호전이며 삼국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어요.

그런데 그날만은 오래도록 무슨 깊은 생각을 하시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은영아.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날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냐?”

평소 아버지 같지 않았어요.

“네. 그런데요?”

저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어요.

“이제 우리 집에 엄청난 시련이 닥쳐올 것 같구나. 실로 이제까지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시련말이다.”

“호호.. 아이 무슨 시련말이예요. 정말 그런 시련 좀 격어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않아도 전 늘 책이랑 영화랑 보면서 저도 주인공들처럼 해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가하고 늘 생각했던걸요”

저는 여전히 아버지 심중을 모르고 즐거운 그밤이 좋아 가볍게 웃기만 했어요.

“농이 아니다. 이건 이제 곧 닥치게 될 일이다. 그런데 내가 너희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만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좋은 날을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저의 가벼운 대답을 못마땅해하면서도 꾸짖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때 아버지와 앉아있던 그 돌 의자에 앉았어요. 왜 그런지 그때 생각을 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멀지 않은 곳에서 발자취 소리가 들렸어요 점점 제가 앉아 있는 쪽으로 가까워 졌어요

전 혹시 누가 볼까 얼른 외 홀로 있는 다복솔 뒤에 숨었어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가까이 걸어오는걸 보니 뜻밖에도 언니와 철준오빠 아니겠어요. 휘미한 달빛이지만 철준오빠와 언니라는 것이 제꺽 알이였어요
아무튼 그렇게 둘이 산책하는걸 맞닥뜨려보기는 정말 처음이였어요. 저는 제 처지도 잊은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앉아있었어요.

둘은 좀 전에 제가 앉아 있었던 돌 의자에 와서 앉았어요.

“...혜영이 말 좀 해보라구요. 거짓말이지. 나를 생각해서 헤어지려고 거짓말을 하는거지?”

철준 오빠가 무엇 때문인지 몹시 격해 말했어요.

“말 좀 해보라니까? 아니야.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단 말이야”

언니는 깊이 머리 숙인채 대답이 없었어요.

사실 우리 언니는 정말로 너무 이쁘게 생겼어요. 얼굴도 고왔지만 몸매까지 예뻐 난 왜 언니처럼 생기지 못했을까 한 두 번 시샘 한 게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언닌 고등중학교 1학년 때에 벌써 에 뽑혔어요.

(김정일의 기쁨조 등에 뽑을 대상은 고등중학교 1-2학년때 벌써 책정해둔다. 그것을 5과대상이라 한다.)

그런데 ㄱ런 우리 언니가우 고등 중학교 4학년 때에 뜻밖에도 그때 평양시내에 널리 유행되었던 유행성간염에 걸려 떨어지고 말았던 거예요.

이 때문에 어머니는 몹시 실망하였는데 웬일인지 아버지는 오히려 기쁜 빛까지 보였어요.

그 소식을 듣던 날은 오히려 그렇게 자주 들지도 않던 술까지 한잔하시고 큰 시름은 덜었다고 혼자 말처럼 하는 것이었어요,

아무튼 우리 언니는 학교를 졸업하기 바쁘게 따라 다니는 남자들이 많이 생겨 어머니가 여간만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장에서 좀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비오는 날이고 눈오는 날이고 어머니는 버스 정류소에까지 나가 들어올 줄 몰랐어요.

마침내 여기저기서 청혼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어요.

높은 간부네 아들, 호위사령부군관, 국가보위부 보위원까지 안나섰던 직종 계층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이상하신 건 우리 아버지예요. 그 많은 높은 간부가족, 대단한 집안출신들에는 관계없이 평 농사군네 집안출신인 철준오빠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지요.

글쎄 철준 오빠도 좋은 오빠인것만은 사실이예요. 하지만 부모님들이 모두 함경남도 함주인가 어덴가에서 농사하는 분들이라는데 왜 좋아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언니도 처음엔 좀 주저하는 기색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워낙 고집이 세신 데다가 어머니까지 몇 번 만나보고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하여 언니는 마침내 수그러들고 말았어요.

아니 그냥 수그러만 들고 만게 아니라 얼마간 지내더니 이번엔 언니쪽에서 오히려 더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전 속으로 언니는 지조도 없다고 얼마나 나무랐는지 몰라요.

그런서 원래 그 가을에 결혼식을 하자고 했는데 3월에는 뜻밖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쩔 수 없어 한해 미루었더니 또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혜영이 말해보라니까? 아까 말한 것 말이야 거짓말이지? 거짓말인거 나 알아. 말해보라구.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거야?”

철준오빠 울분에 차 말했어요.

도대체 언니가 뭘 거짓말했다고 저럴가 제가 안타까울 지경이였어요.

“..저짓말이 아니예요. 떠나는 순간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서 사실을 말했을 뿐이예요.”

언니 목소리가 나직히 들렸어요.

“뭐 정말이라구? 그러니 혜영이 정말 형욱이 그놈한테 몸까지 버렸단 말이오?”

전 그만 깜짝 놀라 까무라치고 마는줄 알았어요. 형욱이가 누군지 아세요. 아버지가 국가보위부 당위원회 무슨 조직부장인가 하는 사람이에요.

아버지 덕에 군대에 나갔다가도 3년이 못돼서 제대하고 또 제대된 다음에는 그 길로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간 사람이에요.

인물도 훤칠한 게 이만저만 미남이 아니에요 또 그 뿐도 아니에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매번 요란스러운 선물을 사 가지고 오곤 하였던 사람이에. 저는 난생 보지도 못했던 쵸콜렛이며 또 아버지에게는 따로 깡통 맥주까지 상자 채 가지고 오군했어요. 한마디로 그 집에는 《딸라 돈》이 철철 넘쳐나는 것 같았어요.

아마 그래서 제가 우리 집에서 그 사람과 하지 않고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철준 오빠와 하기로 한걸 더 싫어했는지도 몰라요 .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면 언니는 애초부터 그 사람을 싫어했어요 자기 아버지 등을 믿고 너무 오만무례하게 행동한다든가

그런데 그 형욱이란 사람한테 언니가 몸까지 어떻게 했다구요.
정말 어처구니 없었어요.

달려나가 언니보고 따지고 싶었어요.

바로 그때 언니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자리를 싫다할 처녀가 몇이나 되겠어요.
철준동무는 그새 저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도 여기 평양에서 사는 다른 수많은 처녀들과 꼭 같은 사람들 중 한사람일 뿐이라는 건만은 알아주세요
벌써 일년이 다 돼가요 언제인가. 형욱동문 제가 다른 처녀들은 거의다 신는 왈레끼(여자 겨울구두)조차 신지 못하고 다닌다면서 그것도 일본제로 제일 좋은 것으로 가져왔더군요.
아니 그게 처음도 아니었지요
그전에도 그는 올 때마다 고급 락타직 외투며 화장품도 일식으로 최고급품들을 가지고 왔지요 하지만 그날은 마침 집에 저 혼자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가 또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저한테 눈물까지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는데 저로서는 차마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어요. 더구나 그때 그의 부모님들까지 저를 좋아했다 건 철준동무도 알지 않아요 그래서 전 그만...”

언니의 목소리는 끊길 듯 끊길 듯 그래도 마지막까지 이었어요
그때에야 전 언니가 처음부터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언니가 그날 끝내 그 왈레끼를 받지 않았다는 건 제가 잘 알고 있었거든
철준오빠가 격분해 부들부들 떠는게 보이는 것 같았어요.

“됐소. 잘 알겠소.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도 한참 잘 못 봤지. 아무튼 어디 가서도 몸 성히 있기를 바라오.”

철준오빠가 벌떡 일어서더니 잔솔밭 저쪽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더군요. .

전 더 참을수 없어 달려나갔어요.

철준오빠를 잡고 언니가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몇 걸음도 떼기 전에 언니가 저를 잡았어요 그리고 말 소리치려는 제 입을 막았어요.

“은영아 가만있어 그래서는 안돼 그래서는 안돼”

언니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어요 .

그때에야 저는 언니 얼굴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는걸 보았어요.

이틑날 아침 우리는 짐 실은 화물차를 타고 서평양 역으로 갔어요.

이 날 따라 굳은 비가 추럭 추럭 내리더군요.

사람들은 비온다고 우산이며 비옷들을 쓰고 총총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런걸 꺼내 쓸 생각을 못했어요.

그렇게 맞는 비도 평양에서는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하니 쓸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참 집을 떠나기 전에 반장 아주머니를 비롯해서 동네 여러분들에게 인사하러 나섰어요.

저희들이 가는 걸 누구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응당 해야할 일이기에 집집이 문을 두드렸어요.

그런데 우리 생각 같지 않더군요.

집집마다 달려나와 뜨겁게 손을 잡아주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누구 네는 옥수수쌀 몇킬로 또 누구네는 콩 몇킬로 돈을 쥐여주는 할머니도 있었어요.

모두들 말은 못하고 뜨거운 눈물로 우리를 배웅해 주더군요.


석동수네 집에 갔을 때였어요.

동수라는 애는 저와 한 학교를 다니는 동무였는데 공부에서는 우리 둘이 항상 일 이등을 다투는 사이였어요.

또 동수 아버지와 저의 아버지도 막역한 친구사이었기에 우리 두 집은 자연히 가까운 사이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동수 어머니가 딸 잔치에 쓰려고 모아두었던 쌀 열 킬로를 내놓으며 저의 두 손을 꼭 잡았어요.

“은영아.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만 말아라.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다 어이구 사람이 살다가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기가 막힌 일이지 어이구.”

목이 메여 말하지 못하고 저의 손만 끝없이 잡아 흔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보위원의 호송을 받으며 서평양 역에 나왔던거에요.

지은지 오래되어 컴컴하게만 보이는 역전 앞 낮은 단층건물들, 분주히 오가는 무궤도 전차들, 그리고 그 점차 굵어지기 시작하는 비속을 뚫고 열심히 달려가고 달려오는 수 많은사람들...

이게 제가 마지막으로 본 서평양 역의 모습이예요.

(다음호에 계속...)

탈북자동지회 회보 2003년 1월[탈북자들] 연재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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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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