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련 북측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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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은 1990년 8월 15일 개최된 제1차 범민족대회시 남측대표의 자격으로 참석한 황석영이 기조보고를 통해 범민족대회를 계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상설기구 설치를 제안한데 이어 해외측 대표인 곽동희(한통련 의장)가 상설기구의 명칭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으로 구체화하고 북측대표인 윤기복이 이를 지지하는 형식으로 기구결성에 합의함으로써 발족됐다. 이어 제1차 범민족대회가 끝난 직후인 같은해 8월 19일 이대회 참가대표를 이 「공동위원회」명의로 기자회견을 갖고 범민련 조직구성에 대해 발표했다. 남북측 각4명과 해외측6명(미주, 구주, 일, 소, 중, 조총련 각1명) 등 14명으로된 공동의장단을 정점으로 그 아래에 남북 및 해외측 각 30명씩 90명으로된 중앙위원회(의결기관)를 두기로 했다. 또 중앙위원회 밑에 남북측 각 10명 및 해외측 20명 등 40명으로된 상임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베를린에 해외본부와 사무국을 설치, 이곳에서 구체적인 업무를 관장케 했다. 이같은 범민련의 구체적인 구성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남북 및 해외측 추진본부 대표들은 1990년 11월 19일∼20일 베를린에서 실무회담을 가졌으며 여기서 남·북·해외본부 결성에 합의를 본 것이다. 이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보면 범민련 조직구성에 있어 당초 8월 19일 발표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남북한과 해외에서 공동의장 각1명, 부의장 각12명이하, 중앙위원 각 40명을 선출, 구성하고 공동사무국은 의장단에 의해 결정될 때까지 베를린에 두기로 했으며 1991년 2월 제1차의장단 회의를 소집키로 했다. 또한 1990년말까지 범민련 해외본부를, 1991년 1월말까지 범민련 남측 및 북측 본부를 결성하며 「아시아·한반도의 평화와 비핵지대화를 위한 국제회의」 (1991. 6. 25)와 제2차 범민족대회1991. 8. 15)를 서울에서 각각 개최할 것을 합의했다. 이에따라 같은해 12월 17일 범민련 해외본부가 결성됐는데 의장에는 재독음악가 윤이상(95년 11월 5일 사망)이 선출됐다. 그리고 북한은 1991년 1월 25일 당비서 겸 조평통 부위원장인 윤기복을 의장으로, 백인준(문예총위원장), 여연구(조국전선의장), 김영호(사민당부위원장), 전금철(조평통부위원장), 한시해(조평통서기국장), 백남준(조국전선서기국장) 등 12명을 부위원장으로, 그리고 강영섭(기독교도연맹위원장) 등 40명을 중앙위원으로 선출, 범민련 북측본부를 구성했다. 한편 북한은 1993년 1월 26일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 총회를 개최, 의장에 부의장인 백인준(문예총위원장)을 선출했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결성5주년을 맞은 96년 1월 25일 평양에서 중앙위원회 총회를 열고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등 96년도 5대 투쟁과업을 제시하고 일부 의장단과 중앙위원을 보선했다. 북한이 의장을 윤기복에서 백인준으로 교체한 것은 대남담당 당비서였던 윤기복이 교육담당으로 전보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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