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창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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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김정일 부자와 그 가계를 형상하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우상화 영화 전문창작집단이다. 이 창작단은 67년 박금철 일파와의 반종파투쟁과 유일사상체계 수립이라는 상호 연관성을 가지는 사건의 틈바구니 속에서 탄생했다. 67년 5월에 진행된 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는 「유일지도성에 대한 훼손」을 이유로 박금철, 이효순 등을 종파주의자로 몰아 숙청을 했다. 이어 6월 당 제4기 16차 전원회의에서는 를 의제로 채택, 유일사상체계의 확립문제를 노동당의 핵심사업으로 내세웠다. 이 속에서 김정일은 문예부문에 대한 지도를 통해 권력기반을 구축해갔으며 역시 이 와중에서 만들어졌다. 이 창작단의 역할은 「수령님의 혁명역사와 혁명적 가정을 형상하며 수령님께서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을 우리 시대의 영화화면에 옮기는 것」(1권, p.397)으로 규정된다. 또한 「백두산창작단은 당의 지도를 직접 받는 기관」(위의 책, p.398)으로 명시, 김정일에 의한 직접적인 지도를 암시하고 있다. 백두산창작단의 초기활동은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이른바 「고전적 명작」들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 집중됐다. (69년)를 필두로 (70년) (72년)가 연이어 이 창작단에의해 제작됐다. (77년), (78년), 전후편으로 제작된 (80년), 10부작으로 만들어진 (80∼87년)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러한 창작단의 성격과 활동은 그 구성원에 있어서도 북한 최고만을 추구토록 했다. 영화문학은 백인준과 이종순이, 연출은 박학 엄길선 정운모가, 촬영은 정익한이, 분장은 박소영이 각각 담당했다. 창작단의 부단장과 단장을 역임한 백인준은 두말할 필요없이 북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현재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창작단의 부단을 역임한 이종순은 90년 김일성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최초로 김일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의 시나리오를 담당했으며 김일성의 혁명활동을 영화로 옮기는데서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박학과 엄길선, 정운모는 연기자에서 연출가로 변신해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박학은 와 최초의 수령형상영화로 선전되는 의 연출을 맡았으며 과 을 연출한 엄길선은 이 창작단의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정우모는 등을 제작해 김정일로부터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 박소영은 분장사로서 드물게 인민예술가 칭호까지 받은 북한 최고의 분장사이며 정익한은 김일성상을 받은 인민예술가로서 「분위기에 맞는 화면구도와 능란한 광(光)처리로 기르밎ㄴ 화면을 얻어내는 촬영가」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최고의 구성원들로 출범한 은 유일사상체계가 전사회적으로 공고화됐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93년 전격적으로 해체됐다. 해체이후 이 창작단의 목적과 기능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와 4·25예술영화촬영소 등 다양한 단체들에 의해 계승·수행되고 그 구성원들은 영화제작 각 분야에 전출해 북한영화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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