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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지에서 왔어요
아침이슬 6 677 2005-10-17 11:27:27
누구나 자기가 나서 자라 탯줄을 묻은 고향을 사랑합니다
저도 여기 남한사람들이 아오지라면 지옥을 상상케하는 고향 아오지를 사랑합니다
냇가에 흐르는 맑은 물과 산골짝들마다 흐르는 계곡의 노래소리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높은 산봉우리와 수려한 산림 기이한 절벽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내고향이였습니다
북한의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여러 공장 기업소들로 조화를 이루어 앞을 다투어 솟아 있는 굴뚝들을 자랑스럽게 생각 하군 하였습니다
하지만 때론 저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탄광의 노동자들의 주검으로 내뿜는 검은 타래처럼 느껴질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의 고향은 모두 강원도인데 저만이 아오지가 고향이 되였습니다
지난 6.25 때 아버지의 형제 분들이 남하하신 관계로 저희는 북한 말로 말하면 "혁명의 배신자이고 조선 노동당에 위험분자이니 군사 분계선 가까운 근처에서 살 자격이 없다는것입니다
그때부터 저희 온가족은 함경도 아오지탄광에서 검은 석탄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게 되엿습니다
저희가 살던 마을에도 국군 포로와 포로 교환병 그리고 의용군 등 남한과 연관이 있는 그런분들이 살고 계셨지만 탄광에 배치되여 보니 그런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분들도 저희 가족과 같이 사회적으로 매장되여 아무리 싹아 빠지게 일을 하여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용 후레쉬에 의지하여 한치 앞도 안보이는 갱안에서 코구멍이 꽉 메이는 석탄 먼지를 뒤집어 쓰고 발파소리와 콘베아를 비롯한 각종 기계들의 청각을 째는듯한 소음은 그야말로 지하의 벌둥지라 할가 아니면 지옥이라고 표현할가 ... 여하튼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거기에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고로 (굴이 무너지고 기계고장과 그로한 인명피해 등등.. )들려오는 소식은 간담을 싸늘하게 합니다
어떤땐 금방까지 함께 일하던 사람이 저의 눈앞에서 팔다리가 절단되여 쓰러져있습니다
금방까지 웃으면서 갱 막장으로 들어 간 사람이 굴이 무너져 행적을 못찾는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할때가 많았습니다
왜 아버지 형제 분들이 남하 하시는것을 막지 못하셨냐구요 그리고 반동의 딸로 낳을것이였으면 자식들을 낳지나 마셨어야지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울리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남자라면 무조건 당에 입당하여야 사람값에 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오빠들은 당에 들수도 없었고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에 맞는 일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추방자의집 자식이 어찌 넘겨다나 보겠습니까
저희 뿐만아니라 국군 포로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기에서 조금 나은부류는 포로 교환병으로 아오지에 오신 분 들이고 그보다 더 나은 분들은 의용군으로 북에 떨어져 사시는 분들이였습니다
저의 집에 토대가 않좋으니 형제 들이 시집 장가도 역시 그와 비슷한 집 자식들을 선택하여 중매가 들어오고 결혼하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눈감고 귀 기울이면 저의 형부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미여 집니다
아버지가 6.25때 실종되였다고 형부는 평생을 인정 받지 못하고사셨 습니다
자기로서는 그래도 입당 하여 보려고 밤낮을 이어가며 야근하고 갱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집에서 보내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에우고 오소리굴 같은 갱안의 한쪽 구석에서 쪽잠으로 피곤을 달래며 일을 하여 입당 심의가 차례지면 꼭 보류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애타도록 노력해도 안되여 끝내는 포기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였고 그때 마다 술에 취해 울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나의 한생에 고이 간직할 귀중한것 그무엇인가
값진 재부도 높은 명예도 그모두 아니라네
아 그언제나 나에겐 오직 하나
어머니 당의 믿음있으면 더바랄것 없어라

이렇게 노래를 부르시는 형부의 모습은 가엾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평등을 갈망하고 땀과 기름을 지하 520M에서 헤아릴수 없이 바쳐 왔건만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무리 "석탄은 공업의 식량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고 손톱 밑이 새까맣게 되고 석탄먼지를 뒤집어써서 눈과 치아만 반짝 거려 가며 일을 하여도 우리의꼬리에 붙어있는 "추방" 이라는 단어는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뿐 만이 아닙니다
수백메터 되는 막장에서 김일성 부자의 수많은 피해자들이 저와 같은 삶을 살아 왔습니다
김일성부자는 군사 독재 통치 제도를 만들어 놓았고 자기들의 지휘봉대로 좌로 우로 잘돌아가는 충견들을 앞세워 사회 통채로를 자기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북한사회와 백성들은 그야말로 김일성부자의 기름진 먹이 그릇이였습니다
그들 부자에게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천국이고 지상 낙원이였습니다
김일성이 부자들과 그의 충견들이 북한이라는 사회를 자기들의 야욕을 실현하는 야망의 무대로 만들었고 그자들이 힘없이 약한 우리들을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게 하였고 저들의 군사 독재의 희생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보입니다 언젠가는 김정일의 충견들도 주인의 버림을 받을것이라는것을...
버리고 잡아먹고 하는것이 김정일의 지략이고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 고향에 대한 아픈추억은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그추억으로 인생 새 충전하여 더 열심히 뛰고 또 뛸것입니다
하여 부모님들과 형제 들이 못다한 삶을 제가 대신하여 꿋꿋이 살아 가는 당당한 모습에서 찾으렵니다
그래야 김정일의 독재가 마지막 비명을 지를때 그리고 김정일이가 저승열차에 올랐을때 그 통쾌하고 짜릿함이 몇천배로 더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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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 2005-10-17 11:37:36
    ^^ 난 아침이슬님의 팬인데
    나와 고향이 같네요^^
    아침이슬님의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팬이 되여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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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7 11:45:22
    "인간의 조건" 이란 책에.. -- 소는 일을 시킬때 배고프면 일을(미동) 하지 않는다.. 먹을 것을 줘야 일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희망만 주면 죽을때까지 일을 한다 인간은 훌륭한 두발 달린 짐승이다.. ---

    이 애기가 생각 나는군요. 소설의 무대는 "아오지 탄광 "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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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5-10-17 12:02:59
    손님님 반갑습니다
    고향분 만나다니...
    계시판에다 글을 올려도 아오지에서 오신분 못찾았는데.. 너무 반가워요
    아오지에서 오신분들은 많지가 않아서.. 저의 메일로 연락이나 주고 받죠
    저의 메일 주소예요
    <a href=mailto:ua1882@yahoo.co.kr>ua1882@yahoo.co.kr</a>

    김님의 말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철학입니다.
    님의 말씀 읽으니 뭔가의 깨달음으로 인간과 희망에 대한 정의를 알게 된것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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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구름9360 2005-10-17 16:33:06
    이슬님 힘내시구요^^ 아 지금 아오지탄광 에서중국9월30일둘어온분있는데요 아직도 장군님이 나라최고인줄알아요 대다수가 그런인식이래요 한심해서 말안나가네요 언제 장군님 도둑늠인걸알꼬 ???
    그럼수고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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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5-10-17 16:46:28
    9월30일이면 금방오셨는데..아직도 악마를 장군님이라 흠모 하다니...
    흑흑..비극이다 ...수치다.. 열받네
    하긴 제가 여기 싸이트에서 알게된 한분의 친척도 최근에 오셨는데 친척분의 말씀이 그분의 고향에 가지말고 아오지 가서 살자고 설득하시더랍니다
    빨리 그들도 자기들의 처지를 알고 자신들의 가장큰 저주 상대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지겠는지
    언제면 난쟁이 배불뚝이 장군님이 자신들의 흡혈귀이고 살인마라는걸 알겠는지..
    불쌍합니다. 고향사람들이...마음착하고 순진한 저 김정일이의 백성들이...
    순한양이 되여 자기의 살점이 다 뜯기어도 반항을 모르는 가엾은 저들을 구원할수있는길은 과연 없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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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언덕넘어 2005-10-17 17:45:00
    말로만 듣던 그 아오지 탄광에서 오셨다 그 말입니까?
    우리 남한에서 자란 세대들은 학창시절 말썽꾼이 있으면 웃으개 말로 '저녀석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자우'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그런데 그 곳이 경치가 좋은 모양이지요?
    원래 사람들이 많이 안 사는 오지를 선택하여 힘든 노역을 시키지만 한편으로는 그런데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으니 자연 경관은 훼손이 안 되었겠지요.
    빨리 통일이 되어 강제노동에서 사달림 받는 사람들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삶을 찾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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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별 2005-10-17 20:35:47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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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야 2005-10-18 00:32:29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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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2005-10-18 01:36:14
    부모님이 고생많으시겠어요..동생들이 남한했다는이유로 그런 차별을 받다니...김정일 진짜 나쁜사람이네요...김정일 부자가 최소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노력으로 부작용이 나타난거라면 벌써 통일이 됐을텐데요...아침이슬님 여기오셔서 친척분들은 만나보셨어요?? 북에서 고생한 만큼 그분들이 님들 따뜻하게 맞아주셨다면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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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5-10-18 12:45:32
    친척분들 한분도 찾을수가 없어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이 물어보게되면 절대 가리켜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는 사실은 아버지의 고향이 어디고 어릴적에 쓰시던 애명이 따로 있었다는것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도 그땐 그저 우리 가족은 반동의 집안이고 나라를 배신한 집안이다 그분들땜에 우린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외면당해도 어쩔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 하였습니다
    부모님들도 자식들한테 아픈과거를 말해 주려고 하지 않으셨고요 혹 저희가 물어 보게되면 아버지는 "그건 알아서 무엇하냐 그때문에 내가 요지경이 되였는데 그것도 친척이라고 알고 싶어 하냐... 그리고 뻥긋 말 잘못하다가 이번엔 무슨일 당할려고 그러냐"고 하시면서 아예 말도 못꺼내게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어쩌면 그분들때문에 격는일들이 마음속에 미움만 싸이게 하였습니다
    때로는 아버지에게 통일이되면 친척을 찾아야 되지 않냐고 말씀드리면 인연을 끊기로 결심하셨으니 허튼생각 하지 말라 하시곤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추방되여 아오지에 오시면서 받았던 충격이 너무 너무 크셨던것이였습니다
    더구나 자식 8남매 낳으셔가지고 누구 하나도 떳떳하게 못내세우셨거든요
    지금만약 저의 아버지가 살가 계신다면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고 싶어요
    말씀은 비록 형제분들 외면 하신다 하셔도 마음이야 어찌 그러셨겠습니까.
    우리 자식들한테 미안하시고 또 우리들의 앞날에 더큰 봉변이 차례질까봐 항상 조심하셨고 그런일이 없기를 바래서 말씀을 못하셨죠
    그렇게도 불쌍하게 사시던 아버지 혈육의 그리운 정을 한평생 자신의 깊고 깊은 마음속 우물에 고이 간직하고 사셨던 저의 아버지는 이미 한많은 세상을 떠나가신 고인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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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 2005-10-18 20:51:55
    그 유명한 아오지 에서 오셨군요....저는 어릴때 말안들으면 아오지 탄광보낸다고 해서 북한 지명은 평양하고 아오지밖에 몰랐어요...힘내세요 아침이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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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8 20:59:36
    김정일집단이 최악인것은 죄없는 가족까지 연좌제로 수용소 보내고 감옥보내고 하는거지요..과거 남한 군사정권도 그러지는 않았어요.,본인만 괴롭히고 가족은 내버려뒀는데...저희 친척할아버지도 과거 50년전 좌익으로 몰려서 억울하게 돌아가셨지만 그 가족은 차별없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잘살고 있어요..저도 아무 이상없고요..하여간 김정일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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