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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연예인 마영애씨 미국에 '정치망명' 신청
손충무 1 569 2006-04-09 08:30:31
 
 
탈북 연예인 마영애씨 미국에 '정치망명' 신청

(뉴욕 - 손충무 독점취재)


-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관련 비밀 증언, 개 망신살 노무현 정권? -

노무현 정권은 미국으로 여행가는 탈북자들에게

(1)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열리는 북한 문제 청문회에 참석 해서는 안되며

(2) 북한 인권문제를 규탄하는 NGO 단체의 행사에 참석 해서도 안 된다.

(3) 교회 행사나 간증 시간에 북한 인권문제를 이야기 하거나 중국 탈북자들 문제와 진상을 말 해서도 안되며

(4)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절대로 해서 안 된다는 협박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탈북자 단체원들이 미국을 여행 하는 동안 안내원으로 가장한 국정원(국가정보원) 정보원이나 혹은 통일부 직원들이 함께 동행 하여 감시 하고 있으며 국정원과 통일부에서 교육 시킨 대로 행동 하지 않으면 안내원들이 호텔방에서 구타 까지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에 도착하면 감시원이 여권을 회수 하여 보관 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교육 시킨 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서울에 돌아 간 후 여권을 압수 하고 다시는 해외 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탄압 행위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 미국에 '정치 망명'을 신청한 마영애씨가 망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설명했다.


그 같은 사실은 한국 정부에 의해 여권을 무효화 당하고 주민 등록 까지 말소 당한 연예인 탈북자 마영애(馬英愛)씨가 지난 1월 25일 미국에 '정치 망명'을 신청 하면서 국토안보부에 제출한 서류에 자신이 한국 정부로부터 탄압 받고 있는 인권 유린 상태를 자세히 비밀 증언 함으로써 밝혀 졌다.

마영애씨는 '정치 망명' 신청 이유를 통해 "노무현 정권이 여권을 무효화 시키고 서울에 있는 주민 등록까지 말소 시켰다. 노무현 정권은 내가 서울에 돌아오면 처벌 하겠다고 위협 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정치 망명'을 신청 한다."고 호소 했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 한국에서 생활 하다가 합법적으로 미국에 도착 NGO 단체와 교회에서 북한 인권 실정과 김정일 정권 제거를 호소 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로부터 여권을 무효화 당하고 정치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다.

미 국토안보부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산하 이민국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은 마영애씨의 정치 망명 신청을 접수 하고 그 진상 조사에 착수 했다.

한국 정부의 정보 기관원이 민간인으로 신분을 가장, 합법적으로 미국 입국 비자를 받고 미국을 여행 하는 탈북자들을 감시 하고 여권을 뺐고 구타 한 사건은 미국 법 위반 이며 인권 탄압 행위 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토안보부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연방 하원에서도 관심을 갖고 이 사건의 진상 조사를 지켜 보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청문회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국은 마영애씨와 그 가족들의 신변 안정을 위해 해당 거주지 FBI(연방 수사국)와 경찰에 신변보호 협조를 요청 하는 한편 특별 케이스로 결정 조속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공작원으로 선발 되어 중국에 파견

남한 여행자 감시, 납치, 위조 달러 교환 공작


마영애씨는 평양 예술단에서 아코디온과 양금 연주자로 큰 인기를 받았으며 1980년 17살 때 인민군 연예단에 징집 당해 8년 동안 근무 하다가 상사로 제대 했다.

1988년에 제대한 그녀는 1990년 국가보위부 근무 명령을 받고 공작원(정보원)으로 선발 되어 특수 교육을 마치고 중국에 파견 근무 했다. 중국에 있을 때 남한에서 오는 여행객들을 납치 하거나 정보 입수 외화 벌이에 열중 했다.

당시 북한 공작원들은 평양에서 보내는 가짜 위조 달러 100불짜리(슈퍼-K)를 생활비 및 공작금으로 받아 사용 했으며 진짜 달러로 교환한 달러는 평양으로 보냈다.

1996년 아들과 함께 丹東 지방을 여행 하다가 그곳에 있는 한인 지하 교회를 들어가 예배를 본적이 있었는데 교인들 가운데 밀고자가 있어 평양으로 소환 당해 체포 됐다.

그러나 공작원 생활 때 업적이 많고 남편의 출신 성분이 좋아 자아 비판을 받고 재 교육을 거쳐 국가보위부에 다시 차출당해 대성무역 회사 직원으로 위장, 특수 임무를 받아 다시 중국 동북 3성 지역 간부로 파견 됐다.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북한은 마영애의 예쁜 미모와 연예 활동을 이용 흑룡강 일대에서 큰 사업가로 알려진 중국계 조선족 백성영(白成泳)에 접근 그를 설득 시켜 평양에 투자 하도록 만드는 공작을 벌렸다.

마영애의 공작에 넘어간 백성영은 2년 반 동안 평양에 약 100만 달러 가까운 액수를 투자 했다. 그러나 평양에 투자한 자금에서 이익이 생겨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백성영은 투자한 자금을 회수 하려고 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국가보위부 2국에서 98년 9월 4일 백성영을 간첩 혐의로 체포 조사를 시작 했다. 억울하게 체포된 백성영은 마영애의 권유로 북한에 투자 하였음을 주장 하며 마영애와 면담을 요구 했다.

백성영은 마영애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쓴 편지를 김정일에게 전달 되도록 해 달라고 부탁 하여 편지를 받아 여자의 중요 부분 속에 숨기고 나와 상부에 전달 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보위부 2국에서 마영애를 공범으로 체포 하여 1개월 동안 백성영이와 같은 감방에 넣어 조사 했다. 2국 조사관들은 백성영이 앞에서 마영애의 옷을 발 가 벗기고 고문 하면서 김정일에게 전달 해 달라는 편지의 행방에 대해 심문 했으나 마영애가 끝까지 부인 하는 바람에 석방 되었다.

북한은 백성영이 투자한 돈 100만 달러를 꿀걱 삼켜 버리고 백성영은 그 후 간첩 혐의로 처형 되었다. 백성영이 처형 된 후 마영애의 상관이 그녀를 '노력 영웅'으로 추천 영웅 칭호를 받았다.



조선족 사업가 유혹, 평양에 투자 시킨 후

100만 달러 투자 하자 간첩 혐의로 처형


'노력 영웅' 칭호를 받고 다시 근무를 할 때 남양 세관에 파견된 공작원의 부정 사건을 조사 할 일이 생겨 조사관으로 출장 증명서를 받아 평양을 떠났다.

1999년 1월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 신청을 했으나 거절 당했다. 할 수 없어 옛날에 활동 하던 연변과 도문 지역에 숨어 들어 슈퍼를 경영 하는 친척 아주머니 집에 숨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조선족 동포가 상금을 타기 위해 중국 공안(경찰)에 밀고 하여 체포 되었다. 중국 공안은 마영애가 북한 특수 공작원 신분 증명서를 갖고 있는 것을 알고 경찰서에 유치 시키고 북한측에 연락 인계 하라고 통고 했다.

얼마 후 북한측에서 마영애를 송환 시키기 위해 인수 받으러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슈퍼 아주머니가 5천원의 큰 돈을 경찰서 부서장에게 뇌물을 주고 마영애를 탈출 시켰다.

마영애가 중국 경찰에서 탈출해 나온 40분 후 북한 송환 팀이 도착 했으나 중국 경찰은 마영애가 탈출 했다고 통고 했다. 친척 슈퍼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龍井에 숨어 있다가 큰 돈을 주고 한국 여권을 구입 하알빈으로 가서 1년 동안 있다가 2000년 9월 5일 한국에 도착 했다.


사진 : 교회 집회에서 남편 최은철씨와 찬송가를 열창하는 마영애씨


서울에 도착한 마영애는 정착금을 받아 북한 음식 전문점을 차려 장사를 잘 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평양 예술단'을 창단 한국 전역을 돌면서 북한 연예인들의 활동을 선 보였다. 3개 TV에서도 자주 출연하는 기회가 주어져 그녀는 상당한 인기를 받으며 스타가 되고 있었다. 그 시기 국군 포로의 아들 탈북자 최은철씨와 재혼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 했다.



13세 아들 엄마 기다리다가 평양 탈출

중국-한국-캐나다-멕시코-뉴욕에 도착


한편 평양에서 어머니가 한국으로 탈출 한 사실도 모르고 2년 동안 엄마를 기다리던 아들 최효성군(당시13살)은 중국에 사는 친척들이 비밀 루트를 통해 어머니가 북한을 탈출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효성군은 아버지에게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성분이 좋은 공산당 고급 당원 신분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에게 엄마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평양을 탈출 2주일 만에 중국 연변에 도착, 어머니에게 연락 하는 길을 찾아 방황 하다가 시장 거리에서 탈북자들을 잡아 중국인들에게 팔아먹는 인질범들에게 잡혔다.

한달 이상 인질범들에게 억류 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친척들이 서울의 마영애에게 연락 상당한 돈을 인질범들에게 주고 풀려 났다.

그리고 마영애는 여권 브로커들에게 많은 사례금을 주고 효성의 가짜 여권을 만들어 2002년 10월 서울에 도착 그리던 엄마 품에 안기었다.

한편 한국 경찰이 위조 여권 브로커들을 일제 단속 하는 때에 마영애 아들 효성의 가짜 여권을 만들어 준 브로커도 검거 되어 마영애는 여권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법원은 인도적인 입장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이라는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그리운 모자가 만나서 2년간 행복한 시간이 흘러간 사이 그들 모자를 갈라 놓는 비극이 또 발생 한다. 2004년 4월 미국 LA에 있는 한국 동포들 교회 단체들이 북한 인권 현실과 북핵 문제를 듣기 위해 마영애와 함께 서울 평양예술단 단원 10명을 초청 했다.

그러나 서울 미국 대사관에서 예술단원 3명에게만 비자를 발급하고 7명의 비자는 거절 했다. 그때 국가정보원 탈북자 담당 오태수라는 사람이 비자가 거절된 단원 7명에게 "미국 대사관 앞에 가서 데모하라.마영애는 워싱턴 백악관 앞에 가서 데모 하며 미국 놈 들을 비난 하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

LA에 도착한 마영애와 단원들은 LA, 시카고 등 중요 미국 도시를 순회 하면서 한인 교회와 NGO 단체에서 연주와 신앙 간증을 하면서 북한의 인권실태 김정일 집단에 대해 비판 했다.


사진 : 북한 인권문제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 '김정일을 제거하라'고 외치는 마영애씨 가족들


그런 강연과 증언은 북한에서 영웅 칭호를 받을 정도의 스파이 생활을 해온 마영애의 몴이 었다.

그들을 감시 하던 국정원 감시원 오택수는 처음에는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다가 마영애가 연설 중에 울면서 설음이 복 바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북한 정권의 죄악상, 중국을 떠 도는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 한국 정부의 외면으로 강제 송환 당하는 탈북자들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폭로 했다.

그러니까 어느 날 오택수는 호텔방에서 마영애의 뺨을 때리며 "너 같은 계집년은 두 번 다시 외국을 못나가게 만들 것이다. 서울에 돌아 가면 용서 하지 않는다. 각오하라."고 협박 했다.



탈북자 감시원 오택수 구타 하면서

"서울 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 협박


시카고 지역에서 마지막 행사를 마친 그녀는 남편 최은철씨와 상의 하여 미국에 남기로 결정 했다. 뺨을 때리면서 "한국에 돌아 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감시자의 협박에 그들 부부는 큰 공포감에 떨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 가기를 포기, 시카고에 남아 있다가 워싱턴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 교인들의 도움으로 버지니아 지역으로 옮겨서 몇 개 월 동안 활동 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후 고향 사람들이 있는 뉴욕으로 갔다.

뉴욕에서 교회 목사들의 도움으로 교회 간증과 강연 연예 활동을 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한편 체류 자격 변경을 위해 영어학원에 등록 학생 비자를 받아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구비 했다.

그 후 1년 기간의 여권 기간을 연장 하기 위해 2005년 6월 27일 뉴욕 총영사관을 찾아가 학생 신분 비자와 증명서를 제시하며 여권 기간 연장을 신청 했다. (노무현 정권은 탈북자들에게 1년 기간 여권을 발급한다.)

여권 기간 연장을 신청 한지 2개월이 지난 8월초 (2005) 총영사관으로부터 여권 기간 연장 거부 통고를 받았다. (이 시기인 2005년 7월 18일 기자도 워싱턴 총영사관으로부터 여권 기간 연장 거부를 당했으며 마영애씨와 기자는 이때부터 무국적자 (無國籍者)가 됐다.)

한편 서울에 남아 있던 아들 효성군은 부모 가 없어 당장 생활의 고통을 받으며 고아 같은 생활을 했다.

그래서 뉴욕의 협조자들의 도움을 받아 초청장을 보내 효성군을 미국으로 초청 했으나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거절 당했다.

효성군은 어느 분의 도움으로 한국인에게 비자가 필요 없는 캐나다로 갔으나 입국을 거절 당했다. 그들은 한국 정부 기관원들이 미리 캐나다 정부에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생각 하고 있다.

그들은 다음 비행기로 멕시코로 갔으며 그 곳에서 안내원들을 따라 텍사스 쪽으로 밀입국 하다가 국경 수비대에 체포 되어 엘파소 불법 입국자 수용소에 수감 되었다.

언론을 통해 그들 모자의 기막힌 사연을 들은 미국 교민들이 미국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 효성군은 6개월 만에 가석방이 되어 엄마의 품에 안겼으며 지금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마영애씨의 몇 차례 탄원에도 불구 여권 발급을 해주지 않고 무조건 귀국 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그런 사실을 현지 언론들이 보도 하자 이번에는 '괘씸죄' 까지 적용 한국의 주민 등록까지 말소 시켰다.


사진 : 뉴욕 총영사관 앞에서 노무현 정권이 유엔에서 '북한인권규탄 결의안'을 반대 한데 대한 규탄 데모를 하는 마영애씨 (오른쪽 여인)


결국 그녀는 돌아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정치 망명'을 신청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얼마 후이면 노무현 정권은 미국인들로부터 "김정일 정권과 내통하는 믿을 수 없는 정권" 이라는 큰 비웃음을 받는 개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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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사람 2006-04-09 08:50:29
    오랜만에속시원한장면봤습니다.마영애씨힘내시고굿굿이 이겨내십시요.
    한국에있는우리탈북자들도 마영애씨를지지합니다.저런 데모 아무사람 하는거아니지요.목숨걸고 싸우시는 마영애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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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1.4인 2006-04-09 10:07:49
    손충무씨, 마영애씨의 정치망명 신청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국을 멀리하는 심정 오즉 하겠습니까. 손선생
    이나 마선생 두분 다 누구보다도 더욱 고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하시리
    라고 믿습니다. 태극기 날리며 통일되는 그날 내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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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2006-04-09 12:15:56
    아 그런일이...
    미터 몰랏습니다.
    우리븍한인민의 비참한 참상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고 김정일의 더럽고 메스꺼운 정치를 반대하여 투쟁햇던분이시였는데 하바트면...
    미안합니다.
    김정일에게 원칙없이 타협만 하는 노무현 정권 좀 민망하고요..,
    무엇보다도 우리 탈북자들이 비록 잘나지는 못해서도 김정일 독재정권을 집적적인 피해자들이고 북과 남의 국민들을 각성시키는데서 선구자들인데....
    더구나 김정일의 추악한 인간성과 반인권적비리를 폭로하는 탈북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행동입니다.
    잘 믿기지는 않지만 사실이라면 저역시 탈북자로써 이나라 국민으로써 인권유린행위에 대하여 강력히 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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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국외교관 우리도 할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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