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그 여자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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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탈북자야?“ 물티슈로 마구 손을 씻던 나는 그 말에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테이블 앞 상대를 보았다. 수업 발표 조원인 여 학우가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호기심도, 그렇다고 해서 통상적인 놀라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으~ 응 !” 나이가 몇인지, 학번이 몇 학번인지도 모르는 상태라 그가 나에게 형이라 불렀던 것을 떠올리며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솔직히 이제는 캠퍼스 안에서 잘 쓰지 않는 여자가 선배 남자학우에게 부르는 “형” 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부터가 달갑지 않았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굴을 아는 사이도 더욱 아니다. 사실 나는 그동안 orientation(오리엔테이션)을 꾸준히 한 덕분에 북한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학우들은 내가 탈북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뜸 탈북자냐고 묻는 말에 내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날 아느냐고 되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형 고향이 어디야?” 아직 상황파악도 읽지 못한 나에게 그녀가 재차 물었다. “펴 평양시~” “아?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도 평양이 고향인데요, 6.25때 월남하셨거든요” 내가 말을 끊기도 전에 날아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반가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제야 둘만의 말에 귀를 기울리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말을 물어왔다. 사실 나는 내가 탈북자인 것이 싫다. 아니 북한이 과거 조국이라는 것이 싫을 것이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친구들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북한 얘기를 하고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탈북자 소리도 간간히 할 때 나는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해버린다. 싸구려 고기 집에 둘러앉게 된 오늘의 모임을 말하자면 과수업 발표를 같이 하게 될 친구들과의 첫 만남자리이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조 프로젝트를 진행할거라는 교수님 말씀에 조교가 임의로 조 편성을 했는데 이상하게 도 우리 조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과가 아닌 다른 과 학생들이 이중전공이나 부전공으로 우리학과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학번이 나보다 높은 친구도 있는 데 한사코 전공수업 학과 생이 조장을 해야 한다는 말도 안 돼는 억지에 시답지 않는 조장의 직위까지 억지로 떠안는 내 심정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처음 조원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그것도 본적 없는 여자가 느닷없이 내가 북한 사람인 것을 떠벌렸으니 심기가 더욱 불편함을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까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뿐이다. 고기가 구워지고 술이 나오자 슬금슬금 허리띠를 풀던 학우들이 들거니, 건하거니 하며 빈병들을 쌓고 있었다. 모두 처음 알아가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취기가 오르자 음담패설이 나오고 남녀 할 것 없이 시시덕거리며 본성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오히려 여 학우들 쪽에서 더욱 적극적이다. 늘 봐왔던 대학문화이다. 처음에는 개혁이며, 혁명이며 등록금 투쟁이며 사회 재분배이며 등 진취적이고 투쟁적인 문제를 거론하다가도 돌아서면 현실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남한의 청춘문화이다. 앞에 앉은 풍만이도(아까 나에게 질문하던 여 학우는 가슴이 풍만했다. 그래서 혼자서 풍만이라고 부르려고 작심했다.) 나에게는 곁눈질도 하지 않은 채 대화에 끼어들어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담배를 어찌나 잘 피우는지 앞의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져 있었고 담배를 쥐고 있는 손으로 음식위에서 손짓을 하는 데 담뱃재가 음식에 떨어질까 봐 마음마저 조마조마 했다. 시간이 지나고 마치 오래알고 지냈던 친구들처럼 서로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cyworld(싸이월드)주소를 교환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오빠야, 형이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라질 남한문화에 쓴 웃음이 나왔다. 저러다가도 서로의 인과관계에서 득이 없다 싶으면 언제 봤냐 싶게 인연을 싹둑 잘라버리는 것이 요즘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고기 집에서 1차로 먹고 맥주 집에 2차로 옮겨 술을 퍼마실 때까지도 풍만이와는 대화 한번 나누지 못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신경을 끄고(사실 그전까지 그녀 입에서 북한 말이 또 나오면 어쩌랴 싶게 은근히 신경 썼던 것만은 사실이다.)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놀기 좋아하고 입담까지 적절하게 내뱉을 줄 알았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 친구사귀거나 생소한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도 자신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다. 주제가 돌고 돌아서 남자들은 즉흥적인 말들을 다 쏟고 재충전하는 지 침묵했고 여자들의 위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남자들이 들으라는 식의 페미니즘이나 젠더에 대한 논쟁과 사회에서의 여성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 대화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풍만이가 제일 열을 올렸다.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의 중심이고 학문의 장인 캠퍼스 안에서 교수들의 언어 성폭력부터 근절해야 한다는 시끄러운 그의 말을 외면하다가 다시 그녀를 찬찬히 눈여겨 살펴보았다. 아주 낮이 익었다. 아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올해 1학기 학생회 선거 때 학교 어느 학과 과회장 후보로 나선 여자였다. 그때 교양과목을 많이 들어서 주로 심리학과가 있는 건물에서 공부를 했는데 하루에도 대 여섯 번 강의실에 들어와서 자기에게 투표해 달라고 유세하던 학생 후보자 중 한사람이 풍만이었던 것이다. 그를 그나마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풍만한 가슴 때문일 것이다. 얼굴도 예쁜 축이였지만 풍만한 가슴 때문에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와 그녀 뒤에서 평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재가 투표에서 당선되면 분명히 가슴 덕 일거라는 걸쭉한 농담을 곁들여서 ... 어찌되었건 그는 당선되었다. 가슴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벽마다 유명한 미국가수들의 사진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맥주 집은 그나마 아늑한데 가 있었다. 녹음기 CD에서 흘러나오는 제시카의 ‘goodby’ 알 켈리의 ‘ i beilve i can fly’ 웨스트라이프의 ‘ my love’ 등을 함께 흥얼거리며 스카이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이라는 암묵적인 동질성을 과시하던 친구들은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다가 오자 하나 둘 자리를 비웠다. 물론 자기가 먹은 술값들은 지레짐작으로 계산하여(확실히 남한 친구들은 자기가 몇 잔 마셨고 안주 값은 얼마라는 철저한 계산을 머릿속에 두고 있다)다 마신 맥주잔 밑에 놓고 갔다. 먹자골목거리가 한산할 무렵 맥주 집을 나섰을 때 나와 풍만이 그리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철학과 친구뿐 이였다. 집에 갈려고 인사말을 남기려는 데 풍만이는 나를 보고 딱 한잔만 더 하고 가자고 입을 열었다. 간곡해 보이지는 않으나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그의 위압이 느껴지는 말에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철학과 친구를 억지로 이끌고 근처 홍대클럽 맥주 바에 3차로 갔다. 가는 도중 풍만이는 나를 보고 담배 한 갑 사달라고 부탁했다. 지갑에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아차 한 생각, 잘못하면 3차 술값은 내가 내야 할 것 같은 예감에 비로소 빨리 자리를 뜨지 못한 실책에 후회가 찾아 들었다. 그런 내 의중을 읽은 듯 풍만이는 후에 이자까지 쳐서 담뱃값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뒤늦은 후회를 뒤로 하고 맥주 바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은 나오는 음악에 몸을 흔들었다. 배꼽과 코뿐만 아니라 눈썹 밑까지 피어 싱을 한 여자애들이 나와서 몸을 흔들더니 교태 섞인 눈웃음을 날린다. 풍만이는 그런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싶다.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는 듯 철학가 친구는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하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나와 풍만이는 구태여 만류하지 않았다. 그 친구도 자기 가 먹은 맥주가 7천원을 테이블에 놓고 뱀이 허물을 벗 듯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형, 이 사회 실망이지?” 광란적인 음악소리를 헤집고 그녀의 말이 울려왔다. 내가 대꾸하기도 전에 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도 실망이야!” 나오는 음악에 맞추며 한번 정도 같이 리듬에 몸을 맡겼던 우리는 바 테이블이 꽉 차 사람들이 발길을 돌릴 때 자리를 내어주고 나왔다. 계산은 더치페이가 아닌, 그녀가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그로서 그가 내게 빚졌던 담뱃값을 훨씬 많은 이자를 쳐서 지불한 셈이다. 이미 막차는 끊기고 택시 할증이 붙는 늦은 밤이지만 나의 지갑에도 그녀 지갑에도 돈이 없었다. 나는 학교 옆에 원룸에서 친구랑 자취를 해서 괜찮지만 분당이 집인 그녀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웬걸... 아무 걱정도 없는 태연 작작한 얼굴도 그녀가 내게 물었다. “형 근처 어디에서 산다며? 하룻밤 재워주라” “글세~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친구랑 같이 살고 있어.” 단답형으로 말할 수 없어 구태의연한 설명을 가미하려는 순간 풍만이가 말했다. “So what?”그래서 뭐 어때, 좁은 대로 같이 자면 되지, 이성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될 거 아냐? 친구에게 양해를 좀 구해, 집세는 나누어 낼 거야냐? 다음 달에 좀 더 내겠다고 해.” 하도 어이가 없어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걸음을 떼였고 나는 두 발자국쯤 뒤에서 그녀를 따랐다. 문을 닫은 가게며, 노래방 전광판에 비추어진 그녀의 그림자는 실루엣과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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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다 읽었는데 마지막 문장...
그녀의 그림자는 실루엣과 같아 보였다. ㅋㅋㅋ 묘한 암시네?
2부가 준비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풍만이 요 표현도 좋았고...
남자들은 그런 것들을 유독 여자들에게서 발견해내죠.
소설가랍시고 글쓰는 남자들도 여성들에 대해선 아주 적나라하게 캐치 잘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유심히 분석하는 여자들은 일단 이쁘장하고 성적매력도 있죠. 못생기고 평범한 여자들에 대해선 저런 분석 나오지도 않아요 ㅎㅎㅎ
이 모순은 웃깁니다.
남자로 태어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위선적인 기질부터 성찰해보시길.
그렇다고 불미스럽고 난잡한 일 같은건 단 한건도 발생한 적 없었죠.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잘때가 없었던 선배는 여학생들이 자취하는 집에 와서 자고 가기도 했었고. 역시 사람들이 지레짐작할 만한 통속적인 일 같은건 발생하지 않았음.
대학생 시절에 누릴 수 있었던 추억들인것 같네요.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저런 순수는 누릴 수도 없고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보기때문에 서로 조심하면서 저런 행동 할 수 조차 없어요.
글 쓰신 분은 여학생이 가슴이 어쩌고 타령하는 걸로 봐서
본인부터 벌써 세상 때가 많이 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글쓴이에게선 아주 이중적인 기질이 느껴지는데
타인을 향해 냉소와 조소를 보내고 있는 글 내용을 보니
대학생이 아니라 나이 한 서른 먹은 닳고 닳은 남자같은 느낌이네요.
제가 대학 다닐때만해도 남녀 학생들의 관계가 저렇진 않았거든요.
사귀는 이성과... 같이 공부하는 동료로서의 이성관계는 구분할 줄 알았으니깐요.
이쁘장한 얼굴의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학우가 그냥 학우로 보였다면
저런 글은 쓰지 조차 않았을터이니.
모든 것은 당신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러면 원글님은, 역시 남한 신세대는 계산적이고 속물이라고 하겠죠? 후후
솔직히 원글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을까 소름끼칩니다. 아니, 이런 사람이라면, 은연 중에 느낌을 받을 테니 제가 가까이 하지 않을테죠. 인터넷이니까 이 정도라도 얘기를 하지, 만약 실제로 만난다면 상대하지 않을 타입이네요. 원글님 글에 나온 "풍만이"라는 분도, 원글님을 조금만 더 접하면, 과연 같이 어울리려고 할까요?
일반적으로 탈북자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미지에 대해 홀로 정당화하면서 남한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면서 그런 마음은 주변의 같이 생활하는 남한사람들은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데... 참 어리석은 생각이죠.
저도 남한생활(12년) 초기, 중기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제가 다른 점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을 공개하는 오픈형으로 살아왔고 그 오픈된 것 때문에 남한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에 대한 오기로 살아오다보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특히 남한 사회의 모습과 사람들의 개성과 관계를 편견없이 백지에 그리듯 담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살다보면 자신을 숨길 필요도 있지만 모두 숨기다보면 사회성이 떨어져서 결코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위에 <하얀 돗배> 님의 글의 전반에 편견과 열등감적인 경멸(?) 비슷한 것이 흐르는데 이런 방식의 폐쇄성 사고를 개방하지 않고 또 남한 사회와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회라는 울타리 밖에서 홀로이 외로움과 고독, 불안에 떠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위에 풍만이의 행동들이 사실이었다면 아마 그 풍만이는 <하얀 돗배>를 테스트 했을 것입니다. 호기심 1/3, 궁금증 1/3, 자신의 소개 1/3로 말이죠. 마지막에 카드로 계산했다는 것은 <하얀 돗배>의 속 마음을 일찌감치 읽었다는 뜻이겠죠?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다는거죠.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고 전달할 뿐이죠. 그러나 북한사람들은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또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이것은 남북한의 문화의 차이입니다.
세상속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편견없이 이해하는것 이런 훈련이 필요할 겁니다.
글솜씨가 있으십니다.
앞으로 문학전문지에 쓸만큼 수준있는 작가로 발전하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남한에 온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작가라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천부적으로 글을 잘 썼던 사람도 있었고, 처음에는 정열이 넘치는 문학희망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탈북자가 남한에서 공인되는 문학전문지에 자신의 문학작품을 실은 경우는 아마 없는 것 같습니다. 문학잡지도 많고 여러가지여서 <현대문학>처럼 공인되는 잡지가 있는가 하면 이름을 알리고 싶어하는 작가에게서 돈을 받고 책에 글을 실어주는 돈벌이용 마이너 문학잡지도 있습니다.
하얀 돗배님께서 솜씨를 갈고 닦으셔서 참으로 훌륭하고 문단의 작가들이 인정하는 멋진 작품을 쓰시기 바랍니다.
풍만이 한테 작업좀 걸어보시지...
너무 80년대 복학생처럼 하시면 곤란하고...
있는모습 그대로 보여주심이 좋을듯 한데요.ㅎㅎ
솔직한 모습에 호감을 갖는 여자들도 있죠.
정말 예전 캠퍼스시절이 그립군요. 다시 그때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바로 눈앞에 닥쳐온 상황이기에...더 자세히 읽었죠!
저에게 앞으로 큰 도움이 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