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 가족들에게 당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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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위부 가족 내가 살고 있는 주택(역주:한국에서는 하모니카 주택이라 함)에서 바로 옆 주택에 보위부 가족이 살고 있었다. 애비가 악랄하니 그 네편네와 자식들이 너무 포악하여 동네 사람들이 숨조차 쉬는 것을 포기할 때가 많았다.그만큼 죽기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나의 집은 출신성분이 아주 나쁜데다 지지리도 못살아 식량이 모자라 배고픔과 헐벗음에 시달렸다. 그런데 보위부 가족들은 무엇을 먹었는지 항상 살이 통통하고 보위부 그 놈은 배불뚝이로 우리와 보위부 가족들 사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매 주에 2-3번씩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 무슨 보따리를 싸들고 들어가고 승리58자동차로 명태를 가득 실어 집 앞에 부리기까지 했다. 그러면 어디서 사람들이 오는지 많이 와서는 명태를 씻어주고 지붕에 말리기 위해 올려놓고는 돌아가 버린다.며칠 후 김장배추를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이 동원된다. 나와 동네 사람들은 모두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옆집 아기가 배가 고파 울건 안 울건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집에선 항상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고기볶는 냄새,맛있는 밥 냄새까지 멀리 퍼진다. 그렇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한 알의 쌀도 한 마리의 명태도 갖다 준 적이 없다.우리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왜냐구요? 더럽고 치사하기 때문입니다.보위부 가족은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쓴 적이 한번도 없으며 그렇다고 좋은 인상도 아니었다. 괜히 그것을 받아 먹었다가는 코에 꿰어 어떤 노예 생활을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주운 명태 어느날 남동생은 중학교에서 늦은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조금 못미쳐 길가에서 무슨 하얀 것이 떨어져 있어 가보니 젖은 명태 2마리였다.방금 차에서 떨어졌는지 싱싱했다.다른 사람 보았으면 분명히 가져갔을 것이다. 얼른 그것을 들고 집으로 달려왔고 물에 깨끗이 씻은 후 국을 끓였다.그 냄새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우리 옆집과 뒷집에까지 멀리 퍼져나갔다.나머지 한 마리는 아까워 말리기 위해 남겨 놓았다. 이미 식량이 끊긴지 오래 되어 집에서 밥을 끓이거나 국을 끓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봄이면 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캐고 가을이면 가을대로 산에서 닥치는 대로 식량이 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나무 껍질이던 무엇이든 가져와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이다. 동네 사람들도 학교 선생들도 식량이 없어 모두 죽을날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그런데 보위부 가족들은 어디서 식량을 구하는지 매일같이 하얀 입팝에 고기를 먹고 있었다.동네방네 어느 집 숟가락 몇 개 있고 밥은 어떻게 먹고 하는 것은 빤한 이야기였다.하기야 매주 2-3차례 많은 사람들이 뇌물을 들고 드나드는데 무엇이든 부족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날 오랜만에 포식을 하는 것 같이 뼈다기가 흐물흐물 해 질때까지 물을 많이 넣고 끓이고 또 끓여 죽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한 사발 가득 물과 함께 먹었는데 정말이지 게슴츠레 하던 눈이 금방 밝아지며 기분이 너무 좋았다. 도적(도둑)놈 취급 나와 부모는 공장에 출근하고 난 뒤 집에서 엄청난 큰 일이 일어났다. 아침 8시경 갑자기 문이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동생이 미처 문도 열리기 전에 문이 부서지며 보위부 네편네와 가족들이 눈을 부릅뜨며 구둣발로 들어와 다짜고짜로 여동생과 남동생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여동생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울고 있었고 남동생도 보위부 네편네에게 맞아 머리에서 피가 질질 흘리는데 네편네가 남동생의 귀를 잡아끌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보위부 자식중 딸도 나의 여동생의 머리카락을 잡고 자기 엄마 따라 밖으로 나왔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여동생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는가고 따지자 보위부 네편네는 가지고 있던 방망이로 사정없이 때리고 발로 차고 하면서 내 뱉는 말이 “네 이년,쪼끄만게.어디서 남의 명태를 훔쳐.”하는 것이었다. “제가 언제 훔쳤습니까?”라고 항의하자 “이년이.”하더니 다시 사정없이 구타를 하는데 그날 여동생은 너무 맞아서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뚱뚱한 보위부 네편네가 얼마나 처먹었던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약하고 파리해 바람이 불면 넘어질 지경으로 빼빼 말랐는데 힘까지 얼마나 센지 남자들도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보위부 네편네와 아들 딸이 합동하여 나의 동생들을 구타하고 집안 옷장을 부시고 이불을 더러운 신발로 밟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 두었던 명태 한 마리를 찾아낸 딸은 “엄마 여기 있어요.”하더니 그것을 소중히 들고 자기 집쪽으로 달려 가더니 앞 마당에 매여있는 개에게 던져주자 개는 그것을 게걸스럽게 처먹기 시작했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그 가족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때리고 발로 차고 문짝을 부수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보위부 네편네가 하는 말이 자기 집에 어제 저녁 명태 한 트럭 싣고 왔는데 오던 길에 미끄러 명태 수십여 마리 흘렸는데 멀리 있는 것은 모두 주웠다고 한다.그런데 나머지 2마리를 집 앞에서 분명 보았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그날밤 명태를 싣고온 운전수와 사람들이 그것을 찾기 위해 동네방네 찾아다니다 못찾아 지쳐 쉴겸 길 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우리집에서 명태국을 끓이는 냄새가 나더라는 것이다. 동생이 전날밤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지만 막무가내로 자기 것을 훔쳐갔다가고 돼지멲따는 소리를 질러대며 얼마나 길길이 날뛰는지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이 감히 그 앞에 나서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말리고 싶었지만 보위부 가족이라 감히 말을 못하고 측은한 눈으로 나의 동생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구타가 거의 12시까지 되어서야 지쳐서 제풀에 죽어 돌아갔다.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어 정신을 잃은 여동생을 업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 김칫독에 고여있는 김치물을 먹여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남동생도 피투성이로 동네 사람들이 빨래를 해주어 목욕도 하고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나머지는 문짝을 달아주고 방을 깨끗이 청소까지 해 주었다. 비록 우리 가족은 출신성분이 나쁘게 태어났지만 동네 어른들이나 학교에서도 항상 친절하고 웃으며 도와주곤 하여 인심은 아주 좋았다.할머니나 어린 학생이 무거운 바께쯔를 들고 가면 내가 나가서 도와 주던지 아니면 동생이나 부모님이 도와 주어 사람들은 모두 우리 가족을 좋아했다. 저녁에 퇴근한 나는 이 엄청난 사건에 분노를 이길 수 없어 식칼을 들고 밖에 나가려고 하였다.그럴때마다 나를 말리는 부모나 동생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날밤 보위부 가족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어머님은 동생들을 끌러안고 쓰다듬으며 계속 눈물만 흘리는 것이었다.아버님도 담배만 벅벅 태우며 벽만 쳐다보고 한숨만 지으며 동생들을 위로해 주는 것이 최선의 일이었다. 그후 동생을 치료하는 데 무려 2개월하고 13일이나 걸렸다.아직도 나의 동생은 그때 맞은 자리에 상처가 크게 나 얼굴에 또렷이 자국이 보인다.여동생도 얼굴에 깊은 상처가 패어 두고두고 그 일을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도 그 다음날에도 나의 동생을 폭행한 보위부 네편네와 아이들은 오히려 얼마나 당당하던지 출신성분 나쁜놈은 모두 죽어야 해 하면서 이를 박박 갈면서 우리를 어떻게 하면 트집을 잡아 수용소로 보낼까 궁리만 하고 있었다. 동네에서도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우리 가족이 평소에 그렇게 밉게 보였는지도 모른다.보위부 가족들을 모든 동네 사람들이 외면하고 쳐다보기 싫어 피하기까지 하자 그에 앙심을 품고 화풀이로 나의 동생이 타격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보위부원과 그 네편네 아들 딸들이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눈은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쏘아보거나 이를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출신성분 나쁜 놈” “출신성분 나쁜 새끼”였다. 이런 시련은 우리 가족들에게 시작에 불과했다.내가 탈출하기 전까지 우리 가족들에 대한 보위부원과 가족들의 핍박과 폭행은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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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성분이라.... 이거 완전히 봉건 계급시대로군....양반 평민 천민 하듯이....
현대에 이런 봉건사회가 존재하다니.....
북한에선 맨날 남조선 혁명타령하는데... 북이야말로 혁명 해야할 사회다
김정일 폭군과 그를 따르는 당간부와 보위부원등 귀족계급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노동자 농민등 일반 인민들.....
고통받는 인민들이여!!
깨어나라!!
폭군과 귀족들을 몰아내고 민주혁명 이룩하라!!
꽁쥐팥쥐 생각도 들고요.
공포정치의 전형을 보여주네요.
이런 현상이 특수한 경우인지 아니면 일상 다반사인지 모르지만..
널리 세계인에게 알려서 도움의 손길을 구해야겠네요.
진짜 욕나오네요...
아.... 남이고 북이고 좀 어떻게 싹 갈아 치울수 없을까... 미치겠네 이거...
수천년을 한배를 타고온
우리민족이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되엇는지..
ㅠ ㅠ
그 원성을 어찌다 갚으리요.... 미개한 족속들 같으니..그댓가는 자식들이 받으리라!!
다행히 지금은 그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새 곳에 터를 잡고 계시니 그 때를 생각해서라도 더욱 더 남 보란듯이 열심히 사세요.
그리고 보위부요원,보위원(안전원)이라고 하여 인간적으로 봤을 때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요. 그 사람들도 단지 그 사회에서의 자기의 임무에 충실(눈 먼 충신)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 나오는 보위부 사람은 좀 악랄하네요(인간성이라곤 하나도 없네요...정말....저도 읽으면서 막 치가 떨리네요.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저의 친구의 아버님도 예전에 보위부에서 사업하시는 분이였었는데....매우 다정다감하신 분이였습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 되는 보위부일군이 초점이라기보다는 그저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일어 날 수 있는 개인과 개인사이의 트러블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러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김정일이나 그 추종세력들이 나쁜 것이지...
나는 잘못도 없지만 친척까지 모두 잡아서 없는 죄를 대라고 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보위부요원,안전부원이 하루아침에 저희를 끌어다 고문하는 악랄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감방으로 끌려가 저희 앞집에 살던 보위부요원한테 고문과 구타를 엄청 당했습니다.각목으로 무릎끓은 양다리에 끼우고 양손은 뒤로,20여일동안 묶인후 갖은 구타와 고문을 하며 자백하라는 등 죽음 직전의 악랄한 방법은 다 동원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그렇게 친하고 늘 웃으며 잘 도와주고 아버지와 항상 술을 같이 마시며 좋아하던 모습에서 갑자기 살인마가 되어 나를 고문하던 그 보위부요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믿을사람 한 사람 없더군요.너무 자기의 임무에 충실한 나머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끌어다 처형하고 가족들 뿔뿔히 하루아침에 갈라지게 하는 보위부요원의 행위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로부터 2년여 세월이 지난후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보위부요원이 나의 누나의 순결을 빼앗은 후 매일같이 강간과 고문을 자행하다 누나는 결국 이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그것도 아주 친한 보위부요원이 짐승으로 변할줄이야...
누나는 고등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중앙당 심사를 받고 통과된후 평양 만수대 예술단으로 뽑혀가기 2틀전에 이런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저희같은 경우는 보위부 소관이라 안전부에서는 죽지 않을만큼 고문하고 나머지는 보위부에서 엄청 악랄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잘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더 악랄하더군요.
보위부요원,안전부 절대 믿어서는 안됩니다.모두 똑같아요.